11월의 비 내리는 토요일, 2013년 창단되어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안산문화재단 청소년 극단 ‘고등어’를 만나러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다녀왔다. 대중적으로는 아직 생소하게 여겨지고 있는 청소년극의 장르적 여건 속에서, 굳건히 10주년을 맞이한 지역 청소년 극단의 존재는 현장의 창작자들과 예술교육자들에게 큰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
극단 고등어는 매해 안산 지역 청소년을 위한 창작극 레퍼토리를 개발해 쌓아나가며, 안산을 대표하는 청소년 극단이 되었다. 나아가 청소년 창작극 레퍼토리와 뮤지컬 악보 등을 출판·배포하는 형태로 청소년극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연극계 현장에서도, ‘안산’이라는 도시를 말할 때 ‘청소년극’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B성년 페스티벌, 청소년 극단 고등어, 그리고 ‘키움티켓’ 사업 등이 좋은 시너지를 내면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안산문화재단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청년 대상 오픈클래스 ‘청어’를 운영하며 고등어와의 연속성을 꾀하기도 했다. 고등어는 2013년 마임극 <소나기>, 뮤지컬 <윈터호러하우스>를 시작으로 매년 새로운 공연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으며, 일본 오키나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 돗토리 새의극장, 춘천마임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 국내외 유명 공연장과 예술축제에 참가하며 청소년 단원들에게 특별한 추억과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 비대면으로 진행한 연극 <모놀로그 우리들>(2020)
너의 언어로 신나게 헤엄쳐라
청소년극을 쓰는 극작가로서, 극단 고등어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듣고 생생한 노하우를 듣고자 2013년 고등어를 처음 기획하고 담당했던 강동하 안산문화재단 대리, 현재 고등어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유다인 대리, 그리고 뮤지컬 작·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서다영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단원들에게 최고의 예술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는 안산문화재단 임직원들과 작업자 어른들의 진지하고 뜨거운 열정이, 청소년 ‘고등어’가 신나게 헤엄칠 수 있는 바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10년간 지속한 청소년 극단의 존재, 매해 새로운 창작극 작품을 제작해낸 놀라운 성취의 시작에는, ‘(당연하게도) 결국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이 먼저 있었구나’ 새삼 다시 깨닫게 됐다.
안산문화재단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재단이 보유한 극장의 ‘좋은 하드웨어’를 최대한 활용해, 청소년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에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서는 경험을 선물하겠다는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창단 당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창작극 대본이 너무나도 드물었기 때문에, 꼭 청소년을 위한 창작극을 만들어내자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강동하 대리가 작명한 ‘고등어’라는 극단명도 고등학생의 언어(言語)를 뜻하는 이름이다.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연극 경험, 경쟁 없는 연극 경험을 주자. 조명‧음향 등 시설 면에서도 연극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마음이었어요. 작품도 청소년들이 기존 희곡에 있는 성인의 배역을 맡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그 자체를 연기하기를 바라며 청소년에게 맞춰 쓴 대본을 공연하는 것이 고등어 창단 초기부터의 꾸준한 목표였어요.”
– 강동하 안산문화재단 기획홍보부 대리
현재 고등어 단원들과 함께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서다영 연출은 실제로 공연에 출연하는 청소년들을 염두에 두고 극본을 쓰고, 그들만이 해낼 수 있는 캐릭터를 창작하고 있다. 서다영 연출은 청소년 뮤지컬 교육과 창작 과정에서 참여 청소년과의 “공감대 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과의 교류와 공감을 바탕으로 안산 지역만의 특성을 극에 녹여내고 있다고 한다. 이미 있는 대본에 배우들이 맞춰가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매우 특별했다. 안산 지역에 사는 참여 청소년 개개인의 실제 모습과 도시 풍경을 극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작·연출 되고 있다는 것, 오직 이 아이들만이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창작진의 놀라운 애정에서 비롯된 일이며, 이것이 고등어 공연만의 차별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오디션 과정에서 주연/조연에 대한 ‘경쟁’을 없애자는 창단 초기 목표를 유지하며, 더블 캐스팅 등을 활용해 경쟁 구도를 완화하고 있다. 또한 창단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재단 담당자와 단원들이 스스럼없이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했다. 무대 위에 선 청소년들과 판을 까는 어른들 사이에서 발생한 상호신뢰가 ‘고등어’라는 예술교육·창작 현장의 내외부적 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 뮤지컬 <드로잉: 언덕에서> 연습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우리 고등어’
지역 청소년들의 진로나 꿈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예술교육의 가능성이 담당자나 참여 예술가들이 고등어를 지속하게 하는데 큰 동력이 되고 있다. 고등어 이후 연기, 음향, 조명 등 공연예술 분야로 아이들의 희망 진로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라며 진로 상담하듯 부모와 통화한 경우도 적지 않다.
“안산 시민들도 고등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제 안산에 고등어가 자리를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안산문화재단에서도 고등어는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운영 예산은 외부 지원사업을 통해서든 자체 예산을 편성해서든 안산문화재단과 ‘고등어’는 계속 함께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유다인 안산문화재단 지역문화부 대리
고등어는 담당자들이 지원사업을 선택해 바꿔 나가면서 참여 청소년들에게 더 좋은 교육 경험과 환경을 마련해왔다는 점이 놀라웠다. 창단 초기에는 문예회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한국문예회관연합회)에 참여했고, 경기꿈의학교(경기도교육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2021년부터는 체계적으로 마련된 뮤지컬 교육에 집중하여 참여할 수 있는 경기틴즈뮤지컬(경기문화재단) 사업과 함께하고 있다. 담당자들은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매우 부족한 청소년 뮤지컬 레퍼토리를 아카이빙하고 확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 큰 의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지원사업과 담당자가 변동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이들이 창단 초기의 목표나 정체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큰 책임감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고등어의 지속을 가능하게 한 비결은 아닐까.
  • 뮤지컬 <드로잉: 꿈을그리다> (2021)
고등어들, 함께 뮤지컬을 만들다
극단 고등어가 연기, 음악, 무용 등이 모두 결합된 뮤지컬을 주로 공연하게 된 것은, 아이들이 뮤지컬의 역동성 자체에 끌리는 면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공연예술교육의 측면에서도 연기부터 무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뮤지컬만큼 다양한 분야·장르에 대한 워크숍과 경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연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과 ‘뮤지컬’을 해내기 위한 워크숍 노하우를 물었다.
“연기 워크숍은 연극놀이로, 음악 부분에서는 합창 수업을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소름 돋는 화음을 한번 냈다, 우리 좀 잘했다’하는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매주 모여 함께 연기하고 노래하며 ‘공연 만들기’라는 공동 목표를 수행하다 보니, 확실히 ‘협업’의 방식에 대해 배우는 것 같아요.”
– 서다영 연출
함께 소름 돋는 화음을 만들었다는 사건, 그 사건이 주는 첫 ‘협력’의 기쁨이 청소년을 배우로 변신시키는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인간의 대화와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극’ 장르를 무대화할 때, 타인과의 ‘협력’이나 ‘갈등 조율 과정’은 필수적이다. 또한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하는 뮤지컬 워크숍과 연습, 공연까지의 전 과정을 진행하면서, 참여 청소년들은 ‘자존감이 올라갔다’는 피드백을 많이 남겼다. 특히 자기표현이 점층적으로 늘고 자기 의견을 먼저 제시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남의 의견을 잘 듣게 되었다는 점이 ‘고등어’들의 공통적인 피드백이다.
힘찬 고등어의 꿈과 미래
청소년 극단 고등어의 꿈을 물었다. 10주년 기념으로 어른이 된 고등어들까지, 마치 홈커밍데이처럼 불러 모아 공연을 만든다거나, 그동안 고등어에서 개발된 레퍼토리들을 모두 모은 공연을 해보는 등 다양하고 많은 상상을 전했다. 특히 서다영 연출은 “우리가 청소년극에서 너무 건전한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청소년들이 폐가 체험을 해도 되고,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어야 한다!”라며 문제의식을 던져주기도 했다.
고등어의 뮤지컬 시리즈 <드로잉>은 안산 하면 떠오르는 김홍도와 관련된 주제로 학교 미술부 친구들이 그라피티를 하는 내용이다. 서다영 작·연출의 작품에 대한 원대한 꿈은 미술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3부작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고등어의 청소년 배우들이 장면 연습을 하고 있는 연습실에 잠시 머물렀다. 같은 장면을 다시, 또다시 연습하며 서로 호흡을 맞춰나가는 청소년들과, 같은 디렉션을 끝없이 말해주는 조연출, 연출의 모습을 뭉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청소년 극단 고등어의 뜨겁고 용감한 헤엄이 계속되길, 어른들이 사랑으로 만든 바다가 그들의 헤엄을 아주 오래 감싸 안기를 바란다.
장영
장영
1인극단 눈과빛과영. 극작가, 드라마터그.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공모에서 <G의 영역>이 당선되어 데뷔했다.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구도자의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좋은 괴물> <레인독스> <FAN> <G의 영역>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인스타그램 @snowlighto_o
사진제공_안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