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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힘 _구승회 건축가③

가족들이 잠든 늦은 밤, 혼자 거실의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포털의 뉴스를 뒤적이다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번갈아 보며 그 속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몇몇에게는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고, 유용한 정보는 관심글로 체크하고, 누군가 던진 무거운 이야기에 생각을 이어가다가 우스운 사진과 설명글에 빵 터져 웃는다. 내 웃음 소리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고개를 드니 나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많은 이들과 어디엔가 같이 있는 듯 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 내가 지금 있는 장소, 공간은 이 곳이다.

선을 긋다 _구승회 건축가②

건축 설계가 시작된다. 무언가를 짓고 싶어 하는 건축주가 있고, 그/그녀가 들고 온 땅이 있다. 건축주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듣고 대지의 위치를 확인하고 계약을 한다. 처음 할 일은 땅의 모양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땅의 모양”이란 말은 조금 이상하다. 땅이란 끝없이 이어져 지구를 덮고 있는 존재이니 그 울퉁불퉁함의 정도, 기울기 등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의 땅은 네모입니다. 또는 세모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땅의 모양을 말하면서 ‘20미터 곱하기 50미터 정도 되는 군요.’ 또는 ‘이 땅은 매우 길고 좁은 모양이라서

햇빛 전쟁_건축가 구승회①

겨울이 물러나고 있다. 여전히 추운 기운은 입김이 나게 하지만 조금씩 봄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은 그림자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시 안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있다 보면 이런 그림자의 길이는 눈에 띄게 느껴진다. 햇살이 닿지 않던 곳에 어느 날 갑자기 반가운 따스함이 손을 뻗치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작은 공터에 선다. 높은 아파트의 그림자가 조금 물러난 곳에 햇살이 닿는다. 바닥을 덮은 벽돌도 제 색을 띠기 시작한다. 잠깐 담배를 피우는 동안 얼굴 가득 햇빛을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