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20.11.16.
더 깊어지고 진해지는 감정의 교류
마당극패 우금치의 비대면 시대 생존기
명칭의 힘이었을까? 무거운 이름값은 그들이 섣불리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우금치’, 우리나라 연극, 마당극 계의 결코 작은 이름이 아니다.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친일 관군이 최대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곳이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죽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로 꽃을 피우자는 그 사명과 가치는 마당극패 ‘우금치’를 여전히 충청도에 묶어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30년, 적지 않은 세월이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기’ 딱 좋은 시간이다. 서울의 ‘자장’이 예술판에도 강력하게 작동되었을 테고,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지역에서 무언가를 일군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