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시도하는 마음

배인숙 음악·사운드 작가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동안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라 여겨지던 기술과 매체가 순식간에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전에도 익숙한 풍경이었을 테고, 어떤 이에게는 일상의 확장이기도 했겠지만, 기술과 친숙하게 지내지 못하던 나에게는 혼란스럽고 조바심 나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내가 배인숙 작가를 만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전자음악을 전공한 그는 장치나 기술을 이용하여 소리의 의미나 형태를 재해석하거나 시간성, 공간성에 집중해 보는 사운드아트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워크숍의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워크숍 기간 동안 오랜만에 몰두했던 경험 덕분인지, 그가 시종일관 뿜어내는 유쾌함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도

재료와 음식, 사람과 자연,
연결과 순환

오늘부터 그린⑱ 식탁 위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이치

가만히 살펴보면 요리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도, 후에도 내 삶을 관통했던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팜투테이블’(Farm-to-Table, 농장에서 식탁까지)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논밭에서 오는 먹거리가 우리 가족의 식사가 되었고, 캐나다 요리학교에서는 농가와 와이너리 등 지역에서 먹거리를 만드는 생산자들과 요리사의 협업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 온타리오주의 다양한 식재료와 문화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었다. 경상남도 진주의 외진 숲속 마을에서 사찰요리를 배우던 때에는 난생처음 ‘진짜 채소의 맛’을 만나 요리하는 이와 농사짓는 이의 마음 결에 따라 달라지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40개의 시가 하나의 기도가 될 때

챗GPT를 급진적으로 사용했던 어떤 방식

최근 읽었던 SF 작품들은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를 예고하며, 기계와 인간이 함께 학습하고 상호 발전하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동안 <터미네이터> 류의 작품들이 인간 vs 기계의 대립 구도로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던 방식과는 달리 인간과 기계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적인 전개가 어떨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중 천치우판이 쓴 「쌍둥이 참새」(리카이푸, 천치우판, 『AI 2041』에 수록)는 미래 한국을 무대로 AI 보육원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다루고 있다. ‘금빛 참새’와 ‘은빛 참새’라고 불리는 두 아이는 Vpal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귀를 기울이면 만나게 될 공존의 세계

오늘부터 그린⑰
도시에서 새를 만나는 기쁨

새의 선물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인간사회는 공포에 휩싸였지만,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던 야생동물의 삶은 평화로웠다. 봄 새들의 노랫소리도 그전 해에 비교해 작아졌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를 기점으로 작은 자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파트에서 탐조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대면 심리치료 일을 하던 나는 코로나19로 몇 개월간 상담 일을 못 하게 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집 안에 갇히게 되었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바깥 생활에 제한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이라는 감옥에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예술교육 패러다임 전환

[정책리포트]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

문화체육관광부는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예술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을 지난 2월 27일(월) 발표했다.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은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6조 및 국정과제에 근거해, 향후 5년간 문화예술교육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법정계획이다.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향후 5년 간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방향을 살펴본다.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문화예술교육 윤석열 정부는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아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문화접근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2차 종합계획은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우리는 서로에게 신중한 독자입니까?

인공지능 시대, 문화예술교육의 자리

기술의 변화 과정이 놀랍다. 인간의 창의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너지고 있다. 알파고에서 시작된 충격은 미드저니(Midjourney)나 챗GPT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다. 생각하는 능력을 넘어서 창조력, 심지어 그럴듯하게 거짓말하는 역량까지 인공지능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창조물’을 인간의 것과 구별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이다.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 자리를 찾기 위해 ‘인간’이 상투적으로 집착하는 말이 있다. ‘절대’다. 동물이 ‘절대’ 못하는 것. 인공지능이 ‘절대’ 못하는 것. 심지어 인간은 신이 ‘절대’ 못하는 것을 찾아서

어쩌면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을지 몰라

어쩌다 예술쌤⑲ 아름다움을 질문하는 예술수업 만들기

코로나19 시대에 파국을 맞이하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게 더 어려웠겠지만 학교 수업, 그중에서도 미술 수업은 정말로 망가짐 그 자체였다. 언제든 교실 구성원 모두가 자택에서 격리될 준비를 해야 했다. 원격 수업으로 진행했던 미술 수업은, 그걸 미술 수업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2020년과 2021년의 미술 수업은 색칠 공부와 조립하기로 이루어졌다. 밑그림이 그려있는 도화지를 수채색연필로 채운 그림들은 완성도만 놓고 보면 크게 나쁘지 않았다. 교실 뒤에 걸어둬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동물이나 건축물이 그려져 있는 도안을 오리고 붙여 만든 페이퍼 크래프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 내에 만들어라.”하고

2025년부터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

2023년 3월 문화예술교육 정책동향

1.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교육으로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시대’연다 (‘23.2.23.) 교육부(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지난 2월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여 교육 분야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자신의 역량과 배움의 속도에 맞는 ‘맞춤 교육’을 제공하고 교사들이 학생과의 인간적 연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성,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융합역량 등 디지털 시대의 핵심역량을 키우는 교육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싸우는 예술, 조율하는 힘

정은혜 생태예술가·미술치료사

전염병의 대유행은 삶의 풍경을 바꿨다. 이제는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하지만 실외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마 마스크가 없는 풍경이 현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전염병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관계의 단절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었고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게 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니 예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태예술가이자 미술치료사인 정은혜 작가를 만나

인간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내려올 때

오늘부터 그린⑯ 지구 시간 걷기

내가 몸담은 단체에서는 해마다 ‘야생동물 탐사단(야탐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깊은 산을 사람들과 꼬박 일주일 넘게 걸으며 야생동물 흔적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 이후 잠정 휴업상태로 들어가 좀처럼 참여할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 11월, 행사를 기획하던 동료 활동가의 제안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료 활동가는 평소와 다르게 둘째 날에 ‘딥타임워크(Deep Time Walk, 지구 시간 걷기)’를 넣어보고 싶다고 했다. 딥타임워크는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4.6km의 거리로 환산하여 지구의 탄생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다. 녹색연합 야생동물 탐사단 “글쎄. 두

변화를 읽고 방향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연다

「제1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 : 문화를 통한 자유와 연대,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프리뷰

미래 사회 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모색하고 문화예술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 수립을 계기로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을 개최한다. 그간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왔으나, 미래 사회 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는 처음이다. 더 많은 관계자의 정책 공감대를 형성하고, 담론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제1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은 ‘문화를 통한 자유와 연대,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을 주제로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1일 차] 급변하는 미래,

미래사회 문화예술교육 가치 확산으로 새롭게 발돋움한다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

올해는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이 시행되는 첫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 방향과 비전, 새롭게 발돋움하고자 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의 발전 방향에 관해 들어보았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문화예술경영을 가르치셨고, 문화예술 분야 여러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데 관여해 오셨다. 문화예술교육과도 인연이 깊으신 것으로 안다. 예중·예고를 거쳐 미대 졸업 이후 유학에서도 예술학교에 다녔으니, 평생 예술교육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살아왔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예술경영이라는 게 없었던 시기여서 방송사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인터넷과 IT 기업이 태동하는 시기여서 새로운 사고와 미래를

뭣도 아닌 일상에서 뭐라도 되는 일상으로

니트생활자가 추구하는 느슨한 관계망의 힘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는 무직 상태이면서 직업 훈련도 받지 않고 학교도 다니고 있지 않은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15~34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경제인구로 진입할 나이임에도 비경제인구로 남아있는 청년들을 겨냥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청년 백수다. 니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참 한결같다. 늘어진 츄리닝을 입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낙오자, 집안의 골칫거리,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적 존재. 그들은 연민의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씹히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 누가 뭐래도 니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굳게 믿는 단체가 있다.

기억을 기억해주는 것들

예술가의 감성템⑪ 조각도, 나무작품, 붓

초심(初心)을 기억하기란 참 어렵다. 그동안 빼곡히 쌓아왔던 날들을 가끔 동경할 때가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야 지나간 장면들이 기억되지만 사실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손은 이미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가’의 꿈을 위해 처음 만난 4절 도화지를 시작으로, 입시 미술을 거쳐 ‘공예학’을 전공했을 때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나의 화폭인듯했다. 마치 세상의 ‘연결자(連結者)’가 된 느낌이었다. 다음 전공이었던 ‘서양화’ 또한 그 느낌을 담아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해왔던 것 같다. <LIVE> 작업과정 <LIVE> 갤러리 올, 2020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언제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구름 같은

매일의 순환이 주는 선물

문화예술교육가 5인의 창조적 습관

예술가의 창조성은 어디서 비롯될까? 꾸준히 작업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22 후기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상상만개+ ‘친구가 예술가’에 참여한 5인의 문화예술교육가가 밝히는 소소하고도 개인적인 일상 속 루틴을 들어보고, 우리 자신의 예술적 회복이자 창조성의 근원이 되어줄 ‘창조적 습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정을 준비하는 일상여행자 김원익_연극연출가·작가 눈을 뜬다. 익숙하고 편안한 내 방에 빛이 가득하다. 하루가 시작됐다. 하지만 왜 난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이 폰 위에서 춤추는 걸 보느라 시작이 계속 미뤄진다. 때때로 시작을 미루고 미루다 멀어지는 하루와 작별하고, 또 다른

새내기의 호기심으로 베테랑의 배짱으로

어쩌다 예술쌤⑱ 예술교육가의 배움과 성장

내 예술교육 경력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꽤 오래 하셨네요. 뭐, 이제 베테랑이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때마다 ‘베테랑’이라는 말과 ‘예술교육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예술’에 담긴 의미처럼 ‘예술교육’ 또한 다양하고 늘 새롭기에 베테랑이기보다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벌벌 떠는 새내기였던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15년 경력이 가진 힘은 언제나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지만 베테랑이 아닌 새내기의 위치에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성장과 배움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새내기 예술교육가의 위치로 내몰았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