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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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제도가 현장의 주체를 부를 때

뭔가를 ‘부른다’는 것은 그저 소리를 내고 외치는 것과는 다르다. 부르는 말이 닿는 대상에게 어떤 응답이나 작동을 일으킨다. 제도가 누군가를 부른다고 할 때, 그들은 해당 제도를 낳은 정책의 대상이자 그 제도를 발판으로 현장을 만들어가는 주체이다. 제도는 이 주체의 반응을 기대한다. 호응하면 좋고, 순응하거나 저항하더라도 무응답보다는 낫다. 제도에 현장이 잘 호응하면 그 분야가 진흥하고, 저항하면 제도 개혁으로 전환과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말은 제도와 주체의 상호작용이 해당 분야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제도 자체의 변화도 이끈다는 얘기이다. 제도와 주체는 서로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얽혀서 생성하는 관계란 거다. 그런 면에서 제도란 사실 주체의 편이고, 주체 역시 제도의 모습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런 얘기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여전히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설계하는 건 이쪽―현장이 아닌, 저쪽―관료나 행정이다. 제도가 운용되는 방식도 저쪽이 몸소 이쪽 현장을 찾아 같이 땀 흘려 호흡하진 않으니, 책상머리에서 노고 없이 서류나 몇 장 굴려 만든 것으로 여긴다. 서류가 최종적으로 결재되기까지 몇 번이나 ‘빠꾸’를 당했는지, 그 사이에 누가 얼마나 개입해서 어떤 문구들이 사라지고 등장했는지 따위는 감춰진다. 거기에는 현장 주체와의 만남도 포함된다. 제도는 정작 대상 주체에 닿기도 전에 이미 어떤 영향력들로 굴절하고 변형된 모습을 띠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궁색하게 설명하는 것을 포기한다. 이런 제도를 만났을 때,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현장 주체는 불평으로 반응하고, 서로 관여하고 얽혀들 대목과 언어를 찾지 못한 채 동떨어져 평행선을 달린다. 분야 간 협력이 많은 문화예술교육은 특히나 사회 변화, 주변 환경이나 관련 제도에 더 크게 휘둘리면서 정작 현장으로부터 받아야 할 영향력을 줄인다.

9월 [아르떼365]는 이 ‘제도’에 대한 이해와 영향력을 넓혀보려는 시도다. 제도가 주체를 부를 때, 주체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또 제도는 주체를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불러야 할까. 지난 20년 문화예술교육 역사 안에서 제도는 주체를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호명했는지, 그것의 반작용으로 주체는 또 어떻게 응답하며 지금 같은 모습으로 길을 내었는지 더듬어본다. 아울러 제도와 주체 사이에서 상호 간 작용을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광역과 기초 행정의 분투도 전한다. 이런 이해가 쌓일 때 제도를 우리 너머에 있는,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향력 안에, 책임 아래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생성하는 관계로 제도와 주체의 만남이 새롭게 열리길 바라면서.

백현주 4기 편집위원장·death&us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