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시끌벅적한 목소리, 자동차 경적 등 여기저기서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볼륨을 높인다. 경쟁하듯 끝도 없이 커지는 바깥소리에 정신없이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우리 안에도 어떤 소리가 있다는 것을 잊는다. 가령 목소리를 낼 때 미세하게 공명하는 몸의 소리라든지, 힘들 때 신음하듯 흘러나오는 소리라든지, 마스크 안에서 작은 호흡으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 말이다. 이 작고 미세한 소리는 쉽게 지나쳐버리지만 그 어느 소리보다 중요하다. 나의 몸과 세상이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몸맘소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소리를 발견하고 감각하게 해준다.
몸의 진동이 촉발하는 감정을 따라
“제가 다루는 보이스라는 것이 사실은 소리내기 전에 진동이에요. 몸의 진동. 그런데 신기하게 어떤 소리를 계속 내면 진동이 울리는 몸의 지점에 집중하게 되고, 그다음에 진동이 촉발하는 어떤 감정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 김진영 몸MOM소리 대표, 연출
때론 소리를 통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마음을 꺼내 보기도 했다. 몸 안의 공명이 이끄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지하지 못했던 몸의 상태가 소리를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언젠가 유학 시절, 가슴 뒤쪽을 계속 울리면서 소리를 내보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나왔던 경험을 떠올리며 소리라는 것이 ‘공명의 여러 변화일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억압돼 있던 마음이 훅 나올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김진영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이 경험했던 소리의 치유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만났던 대상은 대학의 연극영화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호흡과 발성 수업이었다. 수업은 그가 나누고 싶었던 경험과는 조금 달랐다. 대다수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한 훈련을 목적으로 수업을 참여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소리를 낼 준비는 되어있었지만, 그 소리를 왜 내게 되었는지, 그 소리가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살피는 시간을 갖기는 어려웠다. 갈증을 느끼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보이스 테라피’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전문가와 달리 일반인들은 소리를 내게 하는 것부터 어려웠지만, 한 번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 소리가 자기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굉장히 섬세히 보는 경향이 있었다.
“소리를 낼 때 처음에 호흡이 있고, 호흡 전에는 충동이라는 게 있어요. (소리를 내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호흡 패턴이 변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공명이 나오거든요.”
몸MOM소리에서는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이전,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충동에 집중한다. 이러한 충동이 목소리가 나오는 촉발점이자 소리의 공명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흔히 우리는 목소리를 낼 때 단순히 성대가 울려 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소리가 꼭 목만 울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소리는 몸 전체를 울리기도 한다. 사람에게 어떤 큰 경험과 충동이 오면, 가슴과 목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하고 큰 공명들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아픔이나 상실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온몸을 사용해서 ‘짐승 소리’ 같은 무언가를 내뱉기도 한다. 그 소리는 몸을 울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기도 하다. ‘몸MOM소리’라는 이름이 지어진 이유다.
존재를 표현하는 목소리
목소리는 사실 어떤 정보,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의 표현’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살아온 환경에 의해서 내 목소리가 제한되거나 차단되는 경험이 많았던 사람들이 있어요. 목소리들이 표현되지 못하고 웅크려 있을 때 그것이 굉장히 뒤틀린 방식으로 나의 삶을 부패하게 하는 것 같아요. 명확한 언어로 나의 뜻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나의 뜻이나 감정이 얹혀 있는 어떤 소리를 냄으로써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이스 테라피 워크숍 참여자들은 소리를 내뱉고, 호흡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감정, 정서를 들여다보고 목소리와 함께 꺼내 본다. 잠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게 목소리를 내보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극 내향인인 나는 언제나 낯선 곳에 가면 가장 먼저 목소리가 작아지고, 몸짓도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용기를 내어 말을 던졌는데 너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못 듣고 지나가 버리는 민망한 상황도 꽤 있었다. 생각해보면 큰 소리로 목소리를 내보는 경험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감정이 격해졌을 때도, 부당함이나 불편함을 토로할 때도 서로에게 언성 높이지 말라며 주의를 주는 사회 아닌가. 목소리를 내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목소리로 연결되는 즉흥과 몰입의 시간
보이스 테라피 워크숍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누구나 처음부터 쉽게 소리를 내뱉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들은 세션 안에서 소리를 함께 나누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간다. 참여자들의 몰입을 도와주는 주요한 방식은 ‘즉흥’이다. 즉흥 안에서는 짜여진 것이 없기에 더욱 편하게 소리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노래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대부분은 음정과 박자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리가 노래가 될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하고 따라가야 하는 형식도 없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모여 노래가 된다. 이처럼 세션 안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그물처럼 공간을 안전하게 받쳐주고 있고, 참여자들은 그 안에 얹고 싶은 소리를 하나씩 얹어보며 각자 소리 내고 싶은 순간을 발견한다.
즉흥은 소리내기에만 집중한다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공간 안에서 울리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어울려 자신의 소리를 내보는 교류의 과정이다. 서로 눈치를 보거나, 혹은 내가 내는 소리에만 집중한다면 이 흐름은 뚝뚝 끊기기도 한다. 그러나 즉흥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이 과정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리가 왔을 때 소리를 내보고 싶었다, 다음번엔 듣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뭔가 내려고 하는 충동이 내 안에 있었는데 뚫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피드백을 즉흥 후에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흐름이 조금 원활하지 않았던 즉흥이었다 하더라도 “참여자들 안에 하고 싶은 충동만 생긴다면 그건 굉장히 성공한 즉흥”이라고 말한다. 한 번 그런 경험이 공유되고 쌓이기 시작하면 참여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연결감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내가 소리를 냈을 때 소리에 실린 내 마음을 이해하고 듣고 따라와 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쌓이기 때문에 더 많은 다양한 즉흥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순간들이 김진영 대표가 워크숍에서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즉흥을 가능하게 만드는 또 다른 툴은 ‘동조 현상’이다. 공연장에서 박수를 칠 때 처음엔 산발적이던 박수 소리가 어느 순간 모이는 경험을 한 적 있을 것이다. 동조현상이란 이처럼 서로가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발생하는 동기화 과정이다. 워크숍 안에서도 서로 마주 보고 장시간 소리를 내다 보면 소리가 하나로 연결이 되며 같은 주파수로 울리는 지점이 있다. 그때 참여자들은 각자의 개체로서 가지고 있던 막이 허물어지면서 하나가 되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소리를 내다 보면, 어떤 소리를 내기 위해 무리하기보다 공유하는 소리의 울림 안에서 나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피어나게 된다.
이처럼 몸MOM소리에서 소리를 다루는 방식은 결코 일방향적이지 않다. 공연자로 설 때도 마찬가지이다. 즉각적인 감흥으로 몰입감을 유지하기도 하면서 교류되는 감정들을 세심하게 살핀다. 공연 시작 전엔 관객들에게 나눠줄 엽서를 제작한다던가, 필요한 도구를 정리하는 등 준비과정들을 수행하며 일종의 명상 상태로 들어간다. 그렇게 충분히 공연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몰입감을 가져간다.
참여자들과 워크숍을 하면서 공연에 임하는 자세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전에는 공연 안에서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요즘엔 더 소소하고 우리가 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경험, 감각을 공유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공연에서는 일상을 벗어나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가장 최근의 공연 <숨, 자장가>에서 관객은 해먹에 누워 햇빛을 느끼기도 하고,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섞인 자장가를 듣기도 하면서 따뜻하고 안온한 자신의 경험으로 들어가게 된다. 각자 얻는 것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가 하는 것은 여럿이 모여 온전히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 <숨, 자장가> – 온온사편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소리들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쉼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팬데믹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고자 온몸의 기력을 소진한 탓일 테다. 여러 불안정한 상황을 겪으며 코로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변화가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기술과의 융합이다.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며 예술, 예술교육 안에서도 기술과 융합하려는 시도가 급증했다. 이런 시기에 온전히 내가 가진 신체로, 어떠한 기술적 도움 없이 날 것의 소리를 내는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소리가 몸을 울리는 진동이라고 생각했을 때 매체를 통한 소리는 진동이 사라지고 소리 정보만 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소리(sound)는 매체를 통해 복제가 가능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소리는 호흡이고, 호흡은 유한하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유한하고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몸이 계속 변하고, 늙고, 소멸하듯이 호흡도 그렇게 소멸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한 호흡이 너무 소중한거죠.”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착용했던 마스크가 어느덧 신체 일부가 되면서, 호흡과 소리는 자연스레 제한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꺼려지게 되었고, 화상 회의나 영상 등 매체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매체 안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통해 메시지 전달과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서로의 숨결을 느끼거나 목소리에 실린 정서를 느낄 순 없었다. 소리의 어떤 부분들은 절대 복제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근 몇 년간 제한되어있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회복해야 할까. 김진영 대표는 아플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음처럼 아름답지 않아도 우리가 생명체로서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소리를 편하게 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잘 훈련된 목소리는 안정되고 편안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 안에 담길 수 없는 목소리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연결되는 순간, 우리가 정말 기쁨의 호흡을 뿜어내야 할 때 그것을 어디서 뿜어내야 할까요?”
그는 “호흡이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관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며, 내가 먼저 편안하게 호흡을 풀어놓으면 상대방도 자신의 소리를 내어준다고 말했다. 인터뷰 시간 동안 그와 호흡을 주고받으며 소리가 가진 힘과 치유성이 내게도 느껴졌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소리 내보려고 한다.
박다현
박다현
작곡가, 티칭아티스트.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악을 만드는 동시에 음악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방법을 고민하며 살고 있다.
bornfre9@naver.com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