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에 불어닥친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를 우리 모두가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사실 그래도 괜찮을 정도로 멀리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거리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더니 이제 매일매일 우리의 일상에서 그 위협을 직면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연례행사가 된 극심한 폭염과 기록적인 가뭄과 장마, 숨통을 조여 오는 미세먼지 등등. 또 지난 2년간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던 코로나19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야생동물 서식처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 시작된 큰 범주의 환경문제라는 것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과 생존을 위협해오고 있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모든 국가와 지역, 모든 영역과 분야, 개인의 일상에서 기후 위기를 넘기 위한 실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정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경과 밀접히 관련된 분야인 만큼, 기후 위기와 환경을 고민하는 많은 실천이 정원 분야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개개인이 정원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에서부터 정원을 생태적으로 구현하여 도심 속 녹색 공간의 자연성을 높이는 심도있고 원칙적인 노력까지 그 실천의 내용과 강도도 다양하다. 사실 개인이 정원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 방법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 사용을 최소화하기, 농약 및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기, 정원 부산물을 재활용 재사용하기, 석유처럼 보유량이 유한해서 고갈 위험이 있는 피트모스(수생식물이나 습지식물의 잔재가 연못 등에 퇴적되어 나온 유기물질)가 들어간 제품을 쓰지 않기, 벌, 나비, 새 등 야생동물을 배려한 정원 만들기, 다양한 식물을 심어 생물종 다양성을 높이기 등 좋은 실천 방법을 친절히 안내받을 수 있다.

작게 심어 키우는 노력
이렇듯 환경을 위해서 정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 방법이 있지만, 현업에 종사하며 지금 우리나라 정원에 꼭 필요하다 느끼는 것을 한 가지 꼽는다면 ‘작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 누군가는 ‘애걔, 그게 뭐 대단한 실천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실천보다 꼭 필요하면서도 손쉬운 실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을 만들 때면 정말 유난스럽게도 큰 나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공원이나 심지어 수목원에도 노거수에 버금가는 아름드리나무를 심는다. 그래야 정원이 비싸고 가치 있게 보인다고 생각을 하는지 강박처럼 고집한다. 심지어 요즘은 나무뿐만이 아니라 풀도 작은 모종 형태로 심어 언제 기다리겠느냐며 처음부터 큰 화분으로 심는 경우가 늘어간다.

큰 나무를 심으면 초기에 반짝 웅장해 보이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가 사라진다. 흔히 나무가 몸살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나무가 크면 클수록 옮겨 심은 후 회복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뿌리와 가지가 잘린 나무는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 두세 해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골골하는 나무들로 채워진 정원은 아무런 생동감이나 신비감, 감동을 주지 못하고 지나는 사람마다 이 정원은 왜 해가 지나도 나무들이 저런 모양이냐고 묻게 된다. 그나마 회복을 하면 다행인데 죽는 경우도 많고 죽지 않더라도 수세가 많이 망가진 모양으로 근근이 버티며 사는 흉한 형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나무가 죽으면 다시 심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쉽게 이야기할지도 모르지만 기후 위기와 환경 등을 고려한다면 거기에 드는 에너지와 비용을 반드시 생각해야만 한다. 옮겨 심는 나무가 크면 클수록 나무를 생산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 옮겨 심을 때 드는 수고와 비용, 그 이후 관리까지 모든 부담이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커지게 된다. 잘 살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 결국 거기에 들어간 에너지와 비용은 수포가 된다. 그 비용은 알게 모르게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환경이 지게 되는 것인데 그 책임을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빠르게 일어나면 누구나 ‘이건 문제다’라고 쉽게 인지할 수 있겠지만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쉽게 잊히고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반면에 적절한 크기의 작은 나무를 심으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환경 적응력이 좋은 작은 나무는 생존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금세 생명력을 회복하고 정원에 건강한 활력을 준다. 생산부터 이식, 관리까지 모든 비용이 적게 들고 성공률도 높다. 초반에는 위용이 조금 떨어져 보일지도 모르나 이삼 년만 지나면 힘있게 자라나 자연 숲에 버금가는 풍성함과 싱그러움을 보여 준다. 큰 나무를 어렵게 옮겨 심고 초기 효과는 정말 잠깐이고 그 후 계속 수세가 망가지는 것을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과 비교할 때 작은 나무는 이삼 년만 지나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나라들에서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정 크기 이상의 나무를 옮겨 심거나 가로수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 영국왕립원예협회 하이드홀 가든의 건조 정원
    극심한 가뭄, 물부족 상황에서도 정원을 유지하기 위한 실험 정원
흙과 정성, 기다림에 투자하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큰 나무 식재에 대한 집착과 고집이 쉽게 사라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나무를 심는 실천이 우리나라 정원 문화에 더 효과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세 가지 정도 들 수 있겠다. 우선 나무가 자라기에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나무를 크게 키우고 싶다면 100달러짜리 큰 나무를 심을 것이 아니라, 1달러짜리 나무를 심으며 흙에 99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원 조성 현장에서는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마구 다져진 딱딱한 토양이나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곳에 나무를 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환경에 심어 놓고는 작은 나무를 심어서 도통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문제는 나무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정원은 식물이 사는 집이라 그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세심하게 만들어주고 초대해야 한다.

또한, 수형이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나무를 골라 심어야 한다. 똑같은 식물도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 등 어떤 수형의 것을 어떤 각도로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정성을 들여 잘 심어야 한다. 수형이 좋은 나무와 풀을 적절한 간격으로 정갈하게 잘 디자인해 심어주면 크기에 상관없이 심은 직후에도 보기 좋다. 식물이 아직 키가 작을 뿐 공간은 전혀 허전하거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를 비롯해 우리가 직면한 많은 사회적 문제가 궁극적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것을 좇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다림의 공간이어야 할 정원에서조차 자연이 보여 주는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하고 자꾸 무리한 욕심에 눈이 먼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이것은 실천의 문제이고 기다림을 아는 성숙한 눈높이와 지혜로움의 문제이다. 기후 위기를 고민하며 정원에서 꼭 해야 하는 실천에 하나로 작은 나무 심기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이 기다림의 미덕을 함께 배울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장훈
김장훈
국내외 유수의 식물원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 정원사이자 정원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다. 겨울날의 정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내용을 담은 『겨울정원』이라는 책을 썼다. 현재 수원시청 녹지연구사로 근무하며 수원수목원을 조성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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