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대구에서 열린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주최·주관하는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태안신문 신문웅 국장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그는 분연하게 말했다.
“제가 신문사 하면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해왔지만,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모든 곁다리 사업 다 접고 저널리즘에 더 천착하자, 콘텐츠로 승부를 걸자는 생각이 더 확연하게 들더군요. 1인 미디어 유튜브 등 뉴미디어가 창궐하고 지역이 소멸하는 것처럼 종이신문 또한 곧 없어질 거란 이야기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나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에서 종이신문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역에선 여전히 신문 구독을 하고 있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지역신문은 반드시 살아남을 거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업과 바뀌어야 하는 제도 이야기가 한창 나올 때, 이 말은 단연 빛이 났다. 그렇다. 지역에 살아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필요를 읽기 때문이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갈구하고 있다. 생활을 좀 먹는 부패와 부조리에 민감하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어줄 공론장을 누구보다도 원한다. 건강한 풀뿌리 언론은 사이비 언론의 과열된 각축장과 뉴스 결핍의 사막에서 한줄기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이를 단지 언론의 분류체계로 보면 곤란하다. 이는 기성 언론과 다르게 주민과 밀착되어 있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잘 성장한 풀뿌리 언론은 지역 주민이 같이 만드는 커뮤니티 아트다.


  • 옥천신문은 매주 금요일 포장작업을 한다.
풀뿌리 신문이란 무엇인가
보통 풀뿌리 신문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지역 주간신문’이 보편적이다. 재정과 인력 상황 때문에 지면으로 못 내보내고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신문사도 있고, 격주간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지면 신문이 나오는 곳이 있다. 하지만 시군단위 풀뿌리 언론과 광역거점 단위 지방일간지는 지역을 대하는 방식이 정서적, 체계적으로 다르다. 지방일간지는 보통 광역거점에 본사를 두고, 시군 기초단위 지역에 주재 기자를 두는 방식으로 지역을 커버한다. 서울과 지방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지방 안에서도 광역거점과 기초단위 지역의 위계는 그만큼 존재한다. 거점이 중심이고 그 외 지역은 변방인 셈이다.
반면, 지역 주간지는 사는 지역이 중심이기 때문에 보도자료보다는 생활 속 발굴 기사를 더 챙기게 된다. 물론 지역 주간지도 면보다는 읍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지방일간지와 규모 말고 뭐가 다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시군단위 기초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안다. 자동차로 30분 이내의 지역은 그야말로 초밀접 생활권이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훌쩍 갈 수 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밀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형성된 유구한 전통과 지속된 관계를 아무리 날고 기는 뉴미디어라도, 그리고 서울이나 광역거점 도시에서 온 이름있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오래된 전통적인 언론)라도 넘지 못하는 선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
지역신문은 취재기자 하나하나가 일당백이고 힘이다. 보통 옥천, 보은, 영동군 세 지역을 연합뉴스 기자 한 명이 담당한다. 그런데 옥천 한 지역을 옥천신문 기자 10명이 커버한다. 저인망으로 아래로부터 훑기 때문에 기사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특종’과 ‘단독’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제보와 민원이 이미 몰리고 있고 밑바닥 기사를 깡그리 훑고 지내기 때문에 다 특종이고 단독이다. 기성 언론이 외면하는 특종은 사실 풀뿌리 신문에 즐비하다. 눈 밝은 지방일간지나 방송사 기자, 작가들은 그래서 지역신문을 구독한다. 특종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대충 매주 훑어도, 그냥 그대로 써도, 아니면 조금만 발전시켜서 써도 좋은 기사가 나올 것이 분명한데, 주재 기자는 보도자료 챙기고 광고 관리하는 데 여념이 없고 거기서 나오는 소식 챙기기도 버거우니 지역에 오지 않는다. 사실 지역은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저널리즘 방임지역이다. 그 틈새를 수십 년 동안 주민 속에서 뿌리내린 풀뿌리 언론이 담당하고 있다.
주민의 생활 속 민원을 바닥에서 끌어 올리고, 지역 변방 소수자의 삶에 감수성의 더듬이를 들이밀면서 지역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역에 살아야 한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알게 되는 것, 직접 주민이 되어 일상의 언어를 듣고 체득함으로써 바닥부터 언론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신문사가 바로 지척에 있고, 언제든 기자를 만날 수 있고, 언제든 제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쏟아져 내리는 서울의 이슈에 매몰되지 않고 뉴스의 사막에서 지하수를 파는 심정으로 관정을 꽂아 물을 길어 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갑질, 부조리, 부패, 예산 낭비 사례를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주민이 주인인 생활 정치, 풀뿌리가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비로소 구현되는 것이다. 치우침 없는 모두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올려놓기 위한 노력, 기울어진 공론장을 재건하여 무너지려는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일은 사실 풀뿌리 언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지역의 삶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그 자체로 ‘지역 역사’이기 때문이다.
보도자료에 나오지 않을 소식들, 풀뿌리K
사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미 전북 민주언론시민연합(약칭 민언련)과 무주신문, 완주신문, 부안독립신문, 김제시민의소리, 고창 주간해피데이, 열린순창, 진안신문 등은 매주 KBS 전주방송총국과 함께 <풀뿌리K>라는 코너를 운영하며 각 지역의 특종을 훑어내고 있다. 매우 현명한 방책이다. 레거시 미디어 입장에서 직접 변방의 지역 뉴스를 뽑아낼 능력이 부재하거나 의지가 없으면 이미 지역에서 뿌리내린 풀뿌리 언론과 연계하는 것은 사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품과 곁을 내어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니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11월 3일 <풀뿌리K>를 보자. 부안독립신문에서는 ‘캠핑트레일러 보관소로 전락한 공영주차장’ 소식을, 열린순창은 ‘특정 영농조합의 지자체 예산 특혜 논란’, 완주신문에서는 ‘완주군, 분양 자격없이 농공단지 매입추진 논란’, 진안신문에서는 ‘사라져 가는 토종 씨앗 보존사업 대책 필요’ 등의 보도가 나왔다. 제목만 봐도 굵직한 뉴스들이다. 공영방송에서 풀뿌리 언론의 힘을 빌려 제대로 된 지역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이 밑바탕에는 전북 민언련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지역신문이 없었던 무주나 완주에 지역신문이 나올 수 있도록 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고, 힘겹게 나온 지역신문을 연결하여 근육을 키우고 지역 공영방송과 연결했던 것도 지역 민언련이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더해 매월 ‘전북 방송 3사 시군의제 실태보고서’를 작성해 각 방송사의 지역 의제 보도량에 관한 양적 질적 비교를 감행한다. 이런 모니터링이 공영방송을 풀뿌리로 이끌어내는 것이며, 지역신문발전위원회도 못하는 일을 전북 민언련이 하고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전북 민언련의 활동은 수직적인 방식보다 수평적인 방식, 그리고 보충성의 논리에 충실하다. 왜 광역이 존재하는지, 그 역할에 대해 제대로 보여준다. 광역은 기초가 잘 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기층을 눌러 성장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 아랫돌을 빼앗아 윗돌을 괴는 방식으로 밑바닥을 짙눌러 왔다. 달걀을 가만히 수평으로 눕혀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밑바닥을 깨서 수직으로 세우는 방식에 중독되어 있다. 기초가 잘 설 수 있도록 보완해주는 일, 풀뿌리가 살아있는 기초단위의 연대가 바로 광역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초를 살릴 생각 없이 광역의 이름만 빨리 탐하고 싶은 성장, 발전 위주의 이런 허세와 허위의식이 많은 풀뿌리를 여전히 잡아먹고 있다.
골리앗 예산과 맞짱 뜨는 은평시민신문
풀뿌리 지역신문의 건강성은 포털에 종속되어 낚시질하는 것에 익숙해진 중앙언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른지역언론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50여 개 언론사가 각 지역에서 구부러진 권력과 자본에 일침을 가하고자 펜을 벼리고 있는 한편, 일간지 중심의 지원체계에 대해서도 꾸준히 투쟁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이미 상당수 폐지된 원시적인 항목의 예산, 계도지(주민 홍보지, 주민 구독용 신문) 예산이라는 골리앗과 맞장 뜨고 있는 은평시민신문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아직도 서울시 각 구청 예산으로 계도지 예산이 편성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후진 데가 있나 싶었다. 계도지 예산을 서울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 진보언론조차 나눠 먹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지역신문은 오래전에 일찌감치 계도지 예산을 반납하고 계도지 예산 철폐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서 은평시민신문은 은평구의 계도지 예산에 대해 꾸준히 비판했고, 짜증 난 은평구는 은평시민신문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이미 선정된 마을기업 예산까지 무산시키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옥죄고 있다. 은평시민신문은 1면 백지 광고를 통해 지자체 탄압에 맞섰고 다시 의지를 모아 고군분투 중이다.
이처럼 지역에서는 소리 없는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감히 생각한다. 풀뿌리 신문 없는 지방자치란 정말 삶터를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게다가 그런 언론마저 지자체 권력과 야합한다면 정말 ‘이끼’ 같은 마을이 곳곳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삶의 정치, 주민이 주인인 정치를 꿈꾸고 있다면, 정말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대하고 바란다면, 지금 당장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지역 언론, 마을신문을 시도해보길 적극적으로 권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로 장착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황민호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대전에서 나고 자라 20대 후반 청년기부터 옥천 사람이 되었다. 반생은 옥천에서 살고 있고 그 파이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옥천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도시와 농촌, 물과 환경,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작은 코뮌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그것을 체감케 해주었다. 작은 코뮌들이 연대할 때 우리의 일상은 탄탄해지고 차별과 소외는 불식될 것이라 믿는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라고 생각하는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minho@o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