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양천민중의집이 위치한 곳은 예상과는 달랐다. ‘공장이 밀집한 곳의 허름한 건물’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8차선 대로변 깔끔한 외관의 건물 2층은 낯설었다. 인터뷰를 위해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관계로 먼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문방구, 분식집, 작은 카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고 작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여럿 보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 나온 ‘등촌동 골목’이 인근이었다. 하지만 강서양천민중의집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입지가 그리 좋지는 않은데’라는, 불과 30분 만에 내린 섣부른 판단을 스스로 경계하며 강서양천민중의집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민중의집’이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민중의집’은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에서 백여 년 전부터 지속하고 있는 활동 모델을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Casa del Popolo’(민중의 집, 이탈리아), ‘Casa del Pueblo’(민중의 집, 스페인) 등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동네마다 만들어진 지역의 정치, 문화 거점 공간이다. 유럽의 민중의집 활동 모델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대략 2006년 이후부터인데, 노동운동, 농민운동, 진보정당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럽의 민중의집에서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본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에서 몇 년의 준비 끝에 2008년 마포에 1호 민중의집을 열면서 첫발을 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 노동운동, 민중운동이 지역과 시민을 만나는 접점으로써 민중의집 설립운동을 제안한 당사자이기도 했고, 또 ‘민중의집’ 1호를 만든 초기 멤버이기도 했기에 강서양천민중의집에 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전희순 강서양천민중의집 상임대표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도 민중의집의 이름,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강서양천민중의집은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만든 공간이었다. 2013년 준비 단계를 거쳐 2014년 설립하였는데, 처음에는 대부분 회원이 노동조합원이었다고 한다. ‘노동과 지역이 만나는 플랫폼’을 기치로 출발했으나 지역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채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현재도 전체 회원 중 3분의 2 정도는 노동조합원이다. 하지만 점차 지역 기반의 활동, 지역주민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어 현재는 노동조합 기반 사업과 지역 기반 사업이 각각 절반 정도의 비중이다.
경험에서 비롯한 단단한 믿음
전희순 상임대표는 2013년 강서양천민중의집의 준비 단계부터 함께 했고, 상임대표로 활동한 것은 올해부터라고 했다. 본업은 문래동의 철공소 사장. 뜻밖의 이력이었다. 민중의집 대표와 철공소, 왠지 모르게 단단함이 느껴졌다. 1호 마포 민중의집 간판을 만들어줬다는 얘기에서는 민중의집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묻어 나왔다.
다소 공격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민중의집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희순 대표의 대답에는 어떠한 기교도 없었다. “저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내부에 어떤 반대가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서양천민중의집 설립 초기에는 비정규직 노조 파업 지원 등 노동조합 관련 활동이 많았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처럼, 파업 기간에 민중의집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많은 것을 했지만, 파업은 기간이 짧았고 일상적으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했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가능성을 탐색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희순 대표의 문래동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예술인 창작촌이라고 할 수 있는 문래동에서는 전시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고 있고, 그중에는 문래동에 집중적으로 자리 잡은 철공소와의 공동작업도 많다. 전희순 대표 또한 다양한 협업 활동을 했는데, 올해 문을 연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술술센터)에서는 문래동 작가와 함께 수동 3D프린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문래동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보고 겪으며 체득한 것이 ‘문화, 예술의 가능성’과 ‘소규모 프로젝트의 중요성’이었다. 일상적으로, 작지만 꾸준히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것이리라. 전희순 대표의 ‘의지’라 함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해석,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예술로 엮은 작은 기회
강서양천민중의집에서는 많은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회를 마주하는 N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등 기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도 있지만, 노동조합 혹은 지역의 제안이나 내부의 기획으로 진행하는 문화예술 활동 또한 꾸준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2020년부터 시작한 ‘전태일 문화제’는 강서양천민중의집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활동 중의 하나다. 2020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으로 참여한 예술인들의 공연과 전시, 여기에 마임, 낭독극과 지역아동센터 합창단 공연 등이 더해진 문화제로 진행되었다면, 올해는 노동조합과 지역단체가 기획단을 직접 구성하여 <전태일, 일로 만난 사이>라는 제목의 문화제를 준비 중이다. 예술과 일상의 거리, 노동과 일상의 거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노동조합과 지역단체가 기획단을 구성하게 된 것은, 2020년 ‘전태일 문화제’가 공연자-관람객으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는 내부 평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소리소문 음악회>는 제목 그대로 소리소문 크게 내지 않고, 거창한 기획이 아닌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지는 비정기적인 음악회다. 2019년 KBS 관현악단 노동조합원의 공연으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후 오페라 공연, 바이올린 공연 등이 비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문 연주자 공연의 경우 별도의 홍보가 쉽지 않은 점, 비정기적으로 열리다 보니 뭔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크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으나, 전희순 대표는 여기에 뭔가의 ‘기획’을 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 이어지게 놔둘 것이라고 한다. ‘소리소문 음악회’라는 이름 그대로.
실패한, 완성되지 못한 문화예술 활동도 많다. ‘안녕예술인밴드’와 ‘시민극단’은 각각 몇 차례의 모임과 연습, 시민극단의 공연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금은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2월에는 ‘지역 문화예술인모임’을 제안하고 첫 모임을 진행하기 직전이었으나,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실제 모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때문일까? 전희순 대표는 “우리가 애써 기획한 것은 잘 안되는 경우가 많고, 작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때 오히려 활동이 잘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올해는 꾸준한 지역 내 활동의 결과로 ‘강서양천에서 시작하는 문화예술 같이만남-MoMo’라는 문화예술교육 지역 네트워크에도 함께 하고 있다. 강서양천의 시민사회단체, 예술단체, 서서울예술교육센터 등 문화예술 관련 기관이 함께 하는 이 모임에서는 지난 10월 말 온·오프라인에서 <같이만남: 함께 예술하기>라는 지역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노동과 지역이 문화예술을 통해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부딪치고 쌓이고 변한다
인터뷰를 마칠 요량으로 마지막으로 강서양천민중의집 대표 사업이 무언지 물었다.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왔다. “1년에 한 번 하는 ‘김장 나눔’입니다.” 전희순 대표 자신도 ‘김장 나눔’을 대표사업으로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김장 나눔’이 노동조합과 지역을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고, ‘김장 나눔’을 통해 강서양천민중의집의 활동이 지역에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기에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 마포 민중의집 활동이 떠올랐다. 마찬가지였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에 관한 토론과 강좌에 대한 기획을 잔뜩 준비했지만, 정작 지역에 자리 잡게 해준 것은 무료로 진행한 방과후 학교인 ‘토끼똥 공부방’이었다. 노동조합원과 지역주민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 것은 일주일에 한 번 같이 저녁밥을 같이 먹는 ‘수요밥상’ 프로그램이었고, 포털사이트 조회수를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우연한 기회에 민중의집에 오게 된 병아리의 성장일기였다. 이렇게 일상을 나누는, 또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활동을 통해 유대감이 형성되자 자연스럽게 민중의집이 말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강서양천민중의집도 마찬가지다. 설립 과정에서 문화예술 활동은 훨씬 덜 중요하게 인식되었을 수도 있지만, 찰나의 작은 기회를 포착하고 또 그 결과가 쌓이면서 문화예술 활동의 중요성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태일 문화제, 소리소문 음악회, N개의 문화예술교육 등의 활동이 쌓이면서 노동자가 곧 시민이고, 또 지역주민이라는 ‘당연하지만 잘 연결되지 않던’ 인식이 조금씩 부딪치며 함께 변하고 있다.
강서양천민중의집은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쿱생협, 빵과그림책협동조합 등 7개 단체와 함께 진행한 시민자산화 사업을 통해 ‘민중회관’(가칭)이라는 건물을 짓고 12월에 입주를 앞두고 있다. 전희순 대표는 “같이 하는 것이 민중의집 스타일”이라고 강조했는데, 시민자산화 사업을 통한 민중회관 설립은 민중의집 스타일의 끝판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민자치 문화예술 활동의 중요한 사례이자 참조점으로서 민중의집의 실험이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 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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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철들지 않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믿음과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일수록 더 멋있고 폼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잠깐이라며 시작한 문화연대 생활 21년 차. 장래 희망은 목수, 좋은 아빠, 쇼핑몰 운영자이다.
chobari@gmail.com
사진제공_강서양천민중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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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예술 정말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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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양천민중의집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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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양천민중의집
기대만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