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작게 더 작게. 가까이 더 가까이’
요즘 문화의집의 방향을 이야기하면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더 가까이 일상적 삶의 장소에서’라는 주제를 보고 또 보며, 이 표현이 먼저 떠올랐다. ‘작게 작게 더 작게’는 그동안 ‘공동체’라는 덩어리로만 바라보던 지역주민을 이제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들여다보고 만나자는 의미다. 공동체는 각자의 삶을 가진 개인이 모인 집합체인데, 공동체를 말하기 전에 그 속의 개인을 먼저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인지 그 안의 개별성, 다양성, 관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다시 말하면 이제는 ‘공동체’라는 말로 퉁치지 말자는 것이다.
‘가까이 더 가까이’는 동네로 나가 지역주민의 일상과 직접 맞닿아 보자는 의미이다. 아니, 문화의집이란 멀쩡한 공간을 놔두고 왜 동네로 나가냐고 하겠지만 공간 안에서 프로그램 돌리는 것만이 문화시설의 역할은 아니다. 문화시설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설 밖으로, 동네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과정은 동네에서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주민의 삶, 지역사회의 고민과 문화시설 운영 방향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지역을 만나는 태도
‘더 가까이 일상적 삶의 장소’에서 말하는 장소는 물리적인 문화시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삶의 공간과 장소인 동네, 지역도 포함하는 것이다. 소위 ‘지역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늘 삶이 있었고 그 삶을 토대로 한 문화가 있었다. 지역화되지 않은 것이 어떤 것인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굳이 ‘지역화’란 표현을 쓰는 것은 ‘작게 더 작게’와 ‘가까이 더 가까이’와 같이 지역을 만나고 고민하는 태도와 방향성을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의미일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삶과 문화를 만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삶과 문화를 만나는 데 인색하다. 그것은 이미 있었던 것이어서, 원래 그랬던 것이어서,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 소소한 것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고 굳이 애써서 의미를 찾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아이템, 콘텐츠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만 가르치고 배우자는 것이다. 도대체 지역주민은 언제까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 가르침이 아닌 배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가르침이 먼저인 것도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그런데 말입니다’를 외치고 싶다. 사람에게서, 골목에서, 동네에서 만난 삶 속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에서 문화적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이지 않을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지역에서 이미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활동과 현장의 문화예술교육적 의미를 읽어주고 그 효과를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을 마주하기
2019년에 아르떼 아카데미와 함께 문화의집 운영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협력 연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총 세 번의 연수 중 마지막 연수는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었다. 남양주시문화의집의 주민 활동가가, 남양주 지역주민과 직접 만남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해보는 과정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자료를 찾으며 머리 싸매고 하는 기획이 아닌 지역주민이 사는 집으로, 일터로 찾아가 만나고 이야기하며 그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했다.
총 14명의 지역주민 인터뷰이는 문화의집을 통해 문화 활동을 하거나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분들이었다. 멜론 농사를 짓는 틈틈이 하우스에서 기타 치는 농부, 훌라댄스로 삶의 활력을 만들어가는 직장인, 벌을 기르고 꿀을 따며 노래 부르는 용자 씨, 사할린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재외동포,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아빠 등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 잠시나마 그 일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이 과정에 문화의집 주민 활동가가 매니저로서 교육참여자와 함께 남양주를 누비며 짧은 만남의 간극을 메워주고 맥락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삶 속의 다양한 이야기와 내력을 보고 들으며 한 사람의 삶과 오롯이 마주한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였다. 삶에 대해 성공과 실패를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은 다 의미 있고 존중받아 마땅하며 더없이 특별하다. 그 시간을 마주하며 한 사람의 삶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를 경험하는 이 과정 자체가 문화예술교육 자체임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인지가 출발지점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획의 시작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삶과 마주하는 과정을 만들어낼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또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마주하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원래 있던 것을 굳이 ‘지역화’란 표현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즉,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획인 듯 기획 아닌 기획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이 과정 전반에 녹아든 문제의식이었다. 기획자와 매니저로 참여한 주민이 함께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실천하는 과정, 곧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연수 과정이자 문화예술교육이었다.
어떻게 관계 맺을까
관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생활문화와 같은 말이다. 사실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생활문화는 다르지 않다. 정책이 구분 짓는다고 삶이 구분 지어지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체화되는 것이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떤 콘텐츠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도 좋겠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말이다. 무엇을 삶의 가치로 삼을지, 공동의 가치로 만들어갈지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삶의 주체로,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국 나의,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생활문화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 그리하여 자존감을 갖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삶의 태도를 내면화하는 것, 적당한 거리의 관계를 만드는 것, 서로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바탕 위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일상적 삶의 장소인 ‘지역’에서 ‘동네’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배워가는 것, 프로그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떻게 서로의 삶과 만날 것인지, 어떻게 발견한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각자들이 어떻게 관계 맺고 협력할 것인지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일상적 삶의 장소인 ‘문화시설’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역화 과정을 통해 ‘삶에서 배우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의미가 전면에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우지연
우지연
생활 속 문화체험공간 문화의집과 더불어 동네에서, 골목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고 함께 노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공간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자 삶과 예술이 부딪히는 현장이 되었다. 한국문화의집협회에서 일하며 문화적인 삶 그리고 삶의 문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문화의집과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생활문화, 문화다양성, 문화예술교육, 문화도시 등 지역문화 관련 일에도 살짝 연루되었다.
pianowj@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