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의 필수 전략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고 지역 총생산 격차도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지방 소멸 사유가 경제·사회 여건뿐 일까. 부산일보와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가 포털 사이트 댓글을 분석한 「2021 지방혐오 리포트」에 따르면 지역 혐오 단어가 확대 재생산되며 지역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공격하고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류와 비주류, 중앙과 주변부의 권력 관계는 생긴다. 문제는 권력 관계가 지속 되면 차별이 문화가 되고 배제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살고 있는 지역에 볼 것이 없다며 대규모 공사만을 도시 발전이라 여기거나 지역 인재를 소홀히 대한다.
서두가 왜 이렇게 거창하냐 싶겠다. 지역 분권과 균형 발전이 도시 정책에 화두다. 하지만 권한과 자원만 이양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을 아끼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갈 시민의 힘이 있어야 한다. ‘지역화’라는 것은 지역적인 것이 지구적인 것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일상을 바꾸는 n명의 생각이 모이고 합의되면 도시가 변화하고 n개의 생각이 지구적 가치와 연결되면 도시는 발전 한다. 문화예술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지역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는 시민이 만든다. 문화예술은 지역의 유·무형 문화 자산을 새롭게 해석하고, 시민이 각자의 삶을 기획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중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자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지역화를 위한 ‘필수 전략’이 문화예술교육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앙 방식에 길들어져 태세 전환이 쉽지 않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사업 방식은 대개 ‘프로젝트 공모’다. 자격 기준이 중요해 경험 있는 강사들이 선정되고, 프로그램을 공간과 매칭 하면 정보력 빠른 시민이 신청해 수요를 채웠다. 그렇다 보니 자원이 풍부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에 격차가 발생했다. 공모는 아동, 성인, 장애인 등 대상에 따라 달라졌고 교육 목적은 주로 ‘향유’로, 지역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디 사례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나 역시 부산 영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주민자치, 복지,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문화적 대응을 요청하는데 함께 할 예술강사는 턱없이 부족하고,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교육환경 개선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기존 방식대로 교육 사업을 하자니 시민은 직접 기획하고 나눌 때 더 큰 재미를 느껴 학습자-피학습자 간 관계 변화가 필요했다.
삶-마을-주민자치를 이어야
이 점에서 지난 8월 25일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한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따른 포럼-품격있는 시민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의 내용은 내 고민과 맞닿았다. 강정지 춘천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발표에는 수차례 ‘주민자치’라는 말이 등장한다. 실제 춘천에서는 탈락한 주민자치 의제 중 되살림이 가능한 것을 통합 문화 활동으로 기획하거나, 삶-마을-주민자치를 잇는 사업을 선정했고, 문화다양성과 돌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이슈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이어가는 ‘동네 지식인’이 중요한 주체로 등장한다. 시민과 함께 기획한다는 것은 학습-피 학습자의 관계에서 누구나 가르치고 배우는 상호 학습으로 변화를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교육 강사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된다. 그래서인지 포럼 발제자들 이력과 내용이 독특하다. 강사인지 활동가인지, 예술교육인지, 시민교육인지 아리송한 분들로 기존 중앙 발 공모 사업에 응모했다면 죄다 탈락할 분들이 모였다. 그 흔한 단체명도 없이 제로웨이스트 춘천 활동가로 본인을 소개하는 발제자 송현섭의 이야기가 재밌다. 송현섭 활동가는 ‘활동’을 돈 버는 직업과 친구나 가족을 만나는 사적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으로 명명한다. 그리고 자발적인 동기로 혼자보다 같이 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을 활동가로 칭했다. 강정지 팀장이 이야기한 대표적인 동네 지식인이 송현섭 활동가다. 동기, 기회, 연결을 통해 시민 스스로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되는 장이 꾸준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송현섭 활동가와 같은 시민이 많아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문화예술교육의 경계가 확장된다. 환경운동이나 도시 의제를 문화예술로 잇고, 일상과 예술을 이을 것이다. 프로그램으로만 시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근거리 이웃으로 서로 만나며 작당할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활동이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역동성 있게 바꾼다.
김윤정 ㈜나비소셜컴퍼니 부설 CSV디자인연구소장은 ‘연결’의 가치를 더욱 집중 있게 전한다. 서로를 돌볼 줄 아는 도시로 ‘살핌’의 중요성을 소개했다. 발제를 듣다 보니 경제적 쓸모 잣대로 능력과 서열을 매기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도시가 특별하듯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는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떠올린다. 김윤정 소장이 제안하는 살핌의 꿀팁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관찰하며, 헤아리고, 지속가능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특히 ‘시간은행’을 소개했는데 시간을 거래 요인으로 자원을 매개한다면 서로 간 격차뿐 아니라 돌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살리고 피우며 함께 가는 여정이 이어준 적당한 관계망이 작동하는 도시가 돌봄 도시다.
동네 지식인이 성장하는 것
마지막으로 정은경 문화파출소 춘천 총괄 기획자의 발제가 있었다. 흥미로운 고민을 꺼냈는데 ‘문화파출소가 문화센터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였다. 나 역시 대형 마트 프로그램과 거점 공간 프로그램 차이를 고민한다. 문화재단에 근무할 때도 많은 시민이 ‘문화센터’라고 불렀는데 문화도시센터로 옮기니 열 명 중 다섯이 그렇게 부른다. 정은경 기획자는 문화파출소를 배움과 나눔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차별성을 찾았다고 한다. 참여자를 관찰했더니 프로그램뿐 아니라 새로운 관계에 의미를 느끼더라고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체 문제 해결에 동참했다. 장르 예술 기능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자발적 활동으로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었다.
운영의 방식도 크게 작동했다. 많은 문화재단이 생활문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나눔을 의무화하고 있다. 재미에서 시작한 활동이 의무가 되었을 때 자발성을 잃게 되는데 문화파출소 춘천에서는 참여자 각자가 가진 삶의 고민에서 출발해 자연스럽게 나눔 활동으로 이어지게 했다. <딸들을 위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시민이 재봉틀 기술이 있든 없든 만나서 면생리대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활용 계획을 짜고 과정을 기록했다. 이렇게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공간이 된 것은 6년 동안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정 토론자들의 태도도 이번 포럼에서 인상적이었다. 통상 토론자의 과업인 발제에 반론과 품평을 한다거나 전문 지식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발제자들을 응원하거나 발제의 의미를 읽어주는 리딩가로 면모들을 발휘했다. 강원재 영등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곁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존재의 가치를,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는 발제자들의 활동을 ‘감동’이라는 말로 화답하며 발제자들의 활동이 춘천의 보편적인 사례로 확산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했다. 좌장이자 ‘동네 지식인’ 단어를 처음 만든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정책의 지역화를 세속화, 일상화로 보자며 지역의 토양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은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인지 도시의 지역화 논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깊었다. 리뷰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동네 지식인이 많아지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가 아닌가 싶다. 동네 지식인들의 가치와 실천을 공유하고 확산시켜 지역 고유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나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역할이고.
  •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따른 포럼 ‘품격있는 시민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출처] 춘천문화재단 유튜브

고윤정
고윤정
어쩌다 보니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교육·복지·마을 활동 10년, 문화와 문화재단에 10년 일했다. 국민연금 20년 납부 차에 1차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을 하게 됐다. 매일 질문하고 반성하는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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