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와 장애인 복지시설에 예술강사를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장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장애를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사람의 자리를 인정하는 사회적 감수성, 환대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논의해본다.
좌담 개요
• 일 시 : 2021. 7. 23.(금) 오후 5시 30분
• 장 소 : 온라인 ZOOM 회의
• 패 널 : 권지현 아주특별한예술마을·보편적극단 연출

김인경 밝은방 공동대표, 시각예술가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 사 회 : 김소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제협력팀 팀장
김소연  최근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도 남아있다. 장애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도 있고, 정책적 지원이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오랫동안 장애 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신 세 분의 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함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지수  창단 13년 차 장애인 극단 애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6년째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연극교실을 하고 있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발달장애인이 있는 모습 그대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늘 고민한다. 올해는 극단에서 장애 배우에게 적합한 신체훈련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우리 극단뿐 아니라 많은 장애 배우가 연극을 전공하거나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비장애인 배우 훈련에 같이 참여할 기회도 많지 않고, 참여해도 속도 등의 문제로 적응이 쉽지 않다. 그래도 자신만의 신체 훈련법을 만들고 적용해 온 것 같다.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각 장애 유형별로 큰 맥락은 다르지 않지만 과정 속에 다른 게 있는 것 같다. 그 ‘다름’은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다.
김인경  창작단체 밝은방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 정신장애 창작자들과 함께 예술 워크숍을 운영하고 그 창작물을 가지고 기획해서 전시나 출판물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최근에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라는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권지현  특수교육과 연극을 전공한 후 2012년 권주리 대표와 아주특별한예술마을이라는 공연단체를 시작했다.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공연 중간에 소리 지르거나 움직여도 쫓겨나지 않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부터 목표가 명확했다. 초기에는 ‘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라고 했는데, 몇 년 지나고 ‘릴랙스 퍼포먼스’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부터는 우리의 작업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소연  릴랙스 퍼포먼스는 어떤 형식인가?
권지현  발달장애 어린이를 관객으로 포용할 마음이 있다면 릴랙스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자폐 스펙트럼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타깃을 아주 명확히 하면서 극장 환경, 조명 등에 신경을 썼고, 비언어적인 공연을 만들었다. 공연장도 지하가 아닐 것, 자연채광이 있고 로비가 아주 넓을 것, 공연장을 먼저 탐색해볼 수 있을 것, 소품이나 배우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을 것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서 만들었다. 그런데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이런 세심한 준비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느꼈고, 이곳에 오는 발달장애 관객에게 포용적인 태도만 준비된다면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은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에 만든 작품은 일반적인 어린이극과 유사하다. 물론 소품을 부드러운 재질로 만든다거나 안전상의 문제는 고려했지만, 대사도 있고, 소리도 있고, 노래도 부른다. 거의 10년간 릴랙스 퍼포먼스를 제작하면서 더욱 평범해지고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권지현, 김지수, 김인경, 김소연
삶을 자유롭게 하는 예술

김소연  세 분 모두 발달장애인과 예술, 교육 활동을 하고 계신다. 장애인 당사자에게 예술과 교육 활동은 어떤 의미일지,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궁금하다.
김인경  장애 당사자에게 예술이 어떤 의미일지 답하기는 어렵지만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 전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있다. 대부분 작가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예술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기획자나 부모 등 주변 사람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안정과 기쁨을 느끼는 하나의 강력한 습관이 있고, 그것을 본 외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창작단체, 복지관 혹은 부모의 개입으로 바뀌거나 덧칠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부모님과의 대화와 소통이었다. 부모님의 시선에서 멋지게 보이는 그림이 아닌, 창작자가 즐거워서 하는 본래의 작업을 버리지 않고 보관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도 창작자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오산이 있었던 것 같다. 장애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창작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계적·공간적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느꼈다.
김지수  예전에 근무했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발달장애인 연극교실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인에 관해 아무것도 몰라서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책을 읽으며 커리큘럼을 짰다. 연극을 통한 교육적 효과에 관해서는 제가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프로그램을 하면 할수록 참여자분들이 너무나 좋아하신다. 연극을 하면서 TV드라마나 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벌써 6년 차인데도 발달장애인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 늘 고민하게 된다.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각자 가진 것을 극대화해서 더 잘 표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대본, 어떤 형식이어야 할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발달장애인이 대사를 어떻게 외우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사실 정말 잘 외운다. 그게 아니라 그들에게 맞는 연극공연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다.
권지현  발달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연출 등 스태프에게도, 교육이라면 연극강사까지, 각자에게 예술의 의미는 모두 다르다. 저에게는 극단의 일원으로서 협업하며 만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연극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각자가 경험한 예술의 경험치에 따라서, 혹은 참여하고 있는 포지션에 따라서 개개인이 가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 역시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작업에서 종종 느낀 현실적인 어려움은 표현이나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일정을 스스로 결정하고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를 결정하는 것부터 출결, 일정 조정, 추가 연습, 공연 등의 의사 결정에서 부모나 보호자의 허락 등 여러 복합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김인경  앞서 말씀드린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달장애, 정신장애 창작자들이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 광주에 있는 정신요양시설인 소화누리에서 좋은 의미로 많이 놀랐다. 창작자들이 스스로 시각표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시간과 공간을 열어놓았을 뿐인데, 그곳에서 고유한 작업을 하는 작가와 작업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창작환경과 아카이빙 지원만으로도 좋은 작업이 많아지는 것을 목격했다.
김지수  저도 비슷한 생각이다. 미술도, 음악도 치료를 위해서 하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다. 그냥 연극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면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꼭 장애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예술은 삶에 굉장히 큰 즐거움이고, 그래서 장애인들이 예술 활동을 더 활발히 하면 좋겠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예술.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이 예술에 대한 자유로움, 자유롭게 그 예술을 할 수 있게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연극을 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생각의 자유로움’에서 시작해야 한다.
낯섦이 두려움이 되지 않도록

김소연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권지현  복지관 수업이 배정되었다거나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장애인 참여자를 만나면, 실제로 진행해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게 되는 것 같다. 그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프로그램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닌데 시도하기도 전에 낯설어서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무언가, 우리가 지금 하는 활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잘못되지 않았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서로 간의 확신과 지지를 심어줄 방법이 필요하다.
김지수  경험이 없어 생기는 두려움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본인이 가진 커리큘럼과 교육 방식이 장애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획된 프로그램이라서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술은 모두 다 함께 만나서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리 다 계획한 채로 만나면 거기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김인경  어떤 때는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는 순간은 비장애인을 만나더라도 당연히 있다. 늘 잘될 수는 없는데, 부모님이나 모니터링 온 분들은 늘 잘되기를 바란다. 실패하는 시간의 필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6~7년째 만나는 창작자가 있는데 그분에게 맞는 작업 재료와 방식을 찾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작가 본인뿐 아니라 그 주변의 환경, 시간까지 모두 이해해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지현  ‘장애’는 한 단어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발달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을 수 없다. 예술도 예술로 뭉뚱그려 놓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르가 있다. 너무 다양한 두 가지가 뭉쳐서 경우의 수를 따지면 너무나 넓은 범위가 된다. 내 경험이 장애 예술이라는 넓은 범위에 모두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똑같은 발달장애인을 만나더라도 내가 만난 A 씨와 B 씨는 너무 성향이 다르다.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내 경험치는 결국 나에게 국한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김인경  저 역시 같은 생각이다. 경험이 오히려 나를 가로막는다. 스스로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웃음) 내 경험이 다 옳지 않은데, 예전에 경험했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권지현  저도 어느 순간 특수교육을 전공한 것이 오히려 매우 좁은 시각을 갖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배운 것이 나를 가두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에 예술강사를 시작했을 때는, 참여자를 만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장애에 관한 여러 유형화된 지식으로 미리 무언가를 결정해 버리곤 했다. 어느덧 그 점을 깨닫고 조심하고 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다 통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요즘 다양성에 관한 담론이 많은데, 성별, 지역, 교육 수준 등으로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관점의 확장에 있지 않나 싶다.
넓고 깊어질 시간이 필요하다

김소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 더욱 활발해지기 위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인경  저는 특별히 장애나 특수교육을 공부한 적도 없고 관련 정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오랫동안 발달장애인 창작자들과 예술작업을 같이 한 경험으로 말한다면,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창작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작업을 진행해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그 기간이 너무나 짧다. 2년을 넘어가는 창작은 결국 민간 예술단체나 사교육 쪽으로 넘어가는데 이는 단체의 헌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열정에 주로 의존한다. 공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쌓아나갈 수 있는 창작환경을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권지현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물론 장단점이 있고, 모든 프로그램을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한해만 하고 끝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종종 또 언제 만나냐고 묻는데,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확답할 수가 없다. 그런 부분이 어떻게든 해결되면 좋겠다. 실제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 간의 경험치가 넓어지고 확장되기에는 1년, 6개월은 너무 짧다.
김인경  문화예술교육의 문제는 태도와 시선의 문제이지, 프로그램이나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준비해야 하는 환경, 예술교육이 아니라 장애·비장애 상관없이 우리 모두 지지받아야 마땅한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쾌적하고 배려된 형태의 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배려받는 환경 안에서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권지현  정말 공감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어쩔 수 없이 교육받는 대상자와 교육자가 있는데, 이때 장애 예술교육자가 어떤 태도와 시선으로 수업 혹은 수업 대상자를 대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프로그램과 수업 내용을 어떻게 짜느냐도 중요하고 어렵지만, 기술적인 부분이고 배우면 된다. 예술교육 매개자, 혹은 예술교육자의 전문성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양성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김인경  예술강사, 기획자는 지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더라도 혼자 겪고, 혼자 일어나야 한다. ‘매개자’라고 불리는 이러한 예술강사, 기획자도 돌봄과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데,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권지현, 김지수, 김인경, 김소연
연결되고 어우러지는 경험

김소연  장애·비장애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장애를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인정하는 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권지현  사회에서 소수자 그룹의 권리나 개별성, 정체성은 부각되고 분리되는 단계를 거쳐 이것이 더 보편화 되면 다양성으로 통합되는 것 같다. 장애도 그렇고 젠더도 그렇다. 결국, 장애도 통합이라는 지향점이 있다. 실제로 문화예술교육에서도 통합수업이 많지는 않지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 문화예술교육이 장애라는 감각을 비장애인에게 소개하고 이해하고 발견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냥 누구나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이고, 다양한 참여자들이 함께 수업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이 갖춰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김인경  예전에 한 대안학교에서 비장애인 중학생 3명, 발달장애인 창작자 4명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 워크숍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공동작업을 하거나 서로 도와주는 건 아니었고, 그냥 각자 작업하면서 필요할 때 이야기 나누거나 서로의 작업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정도였는데, 강사와 참여자 모두에게 굉장히 자연스럽고 강력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워크숍을 하고 싶다.
권지현  비슷한 연령대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예술교육 수업을 하는데, 비장애인 참여자가 자꾸 발달장애인 참여자의 보조자 역할을 자처하더라. 20대 초반의 성인 발달장애인이 동료 비장애인 수강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봤다. 물론 아니라고 정정하고 각자 작업할 수 있게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장애인 참여자도 나이를 떠나서 매개자가 있고, 강사가 있고, 동료가 있다는 것을 서로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실제 수업에서 느꼈다. 어쩌면 단순히 수업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살아온 비장애인이 많다. 길 가다가 스치듯 만났을 수는 있지만, 서로 어우러지고 놀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없는 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공간, 같은 생활권 안에서 관계를 맺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게 해결되면 교육 현장이든 어디에서든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김지수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을 선생님 아니면 지도자의 역할로 만나는 게 대부분이다. 엄마 아빠 혹은 비장애 형제 등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러한 위계에 너무 익숙하다. 동등한 입장이 되어 본 경험이 없으니까 계속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자신은 학생이 되는 거다. 동등해져야 하고 교육을 받기만 할 게 아니라 교육을 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 발달장애인 연극교실에서 제일 먼저 변화를 준 것이 호칭이었다. 나이를 떠나서 ‘○○님’이라고 호칭을 정했다.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정도가 되면 정말 좋은 워크숍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 역시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연극을 계속하고 있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지만, 스스로 부족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웃음)
김인경  이번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전시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시선을 가진 관객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장애인 작가의 그림이 너무 어린아이 같고, 긍정적인 것만 보여준다는 등 오해(?)가 섞인 관람평 마저도 반가웠다.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견과는 다르지만, 그분 나름으로 솔직하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에 그 지점을 시작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김지수  서로 만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저희 연습실은 구로구에 있다. 지역에 평생교육원이 있어서 다양한 사업을 하는데, 제일 좋은 것은 지역 내에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센터들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만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만나고 같이 예술 활동을 하면서 서로 익숙해지고, 조금 더 확장되면 더욱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발달장애인은 혼자서 외출하기가 어렵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발달장애인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데도 외출할 때는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할 정도로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관점을 전환해서 어떻게 하면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문화예술 사업을 매개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센터를 만들고 그런 일을 하는 훌륭한 매개자도 있어야 한다. 제 희망이다.
좋은 일? 좋아서 하는 일!

김소연  마지막으로, 장애 예술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김인경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장애 예술 또는 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가 드러나는 시각적 표현을 천천히 제대로 보려고 하는 일이자, 관계적 실험과 새로운 배움이 가능한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 무척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일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나 스스로 지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예술뿐 아니라 모든 활동이 불안정해지고, 온라인으로 대폭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내가 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권지현  여전히 장애 관련 분야에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일 하네’라는 반응이 있다.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고 ‘돕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좋은 일’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이익도 없이 희생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으로 장애 예술을 시작한 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원하는 일인가, 내가 흥미로워하는 일인가 하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장애 예술교육이 어렵고 뜻깊은 일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이 일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장애 예술교육을 하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더 풍성하고 건강하게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김지수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좋은 일 한다는 말은 못 듣고 안 듣는다. (웃음) 저야말로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저의 고민이자 질문은 ‘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가’이다. 수입이 생기고 뭔가 만들어내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사실 그 과정이 좋아서 한다. 내가 가진 편견이 깨지는 것이 재미있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가 하는 일이 발달장애인 참여자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작년에 이런 회의에 빠져 슬럼프였다가 올해 조금 회복되기는 했다. 장애 예술이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장애 예술의 가치조차 확실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담론이 함께 성장해야만 장애 예술가, 매개자, 문화예술교육 등 활동의 영역이 더 자유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예술을 보는 관점,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인경 밝은방 운영자, 시각예술가
김인경 밝은방 운영자, 시각예술가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1:1아트링크> <동그란 작업실> 등 다수의 예술 워크숍과 《너무 아름다운 도시》 《*이 설정은 픽션입니다》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 등 다수의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였다.
권지현 아주특별한예술마을, 보편적극단 연출
권지현 아주특별한예술마을, 보편적극단 연출

장애 유무를 떠나 모두가 접근 가능한 문화·예술환경을 지향하는 단체 아주특별한예술마을과 보편적극단의 연출. <기억의 자리>, <느릿느릿 엉긍엉금 거북이> 등을 연출했다.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 남은정, 주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