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일기 숙제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그림 부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림 칸은 글 칸보다 훨씬 넓은데 어떻게 채워야 할지 늘 막막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도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소풍을 가서 돗자리를 펴고 친구들과 배를 깔고 누워 놀던 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일기에 그린 그림은 내가 봐도 영 어색했다. 엎드린 사람을 어떻게 그린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지우고 단체 사진 찍는 장면으로 바꾸었다. 글도 그에 맞추어 써야 했다. 내가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을 담을 수 없어서 속이 상했다. 글로 쓰면 되는데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독서교실의 한 어린이가 “그림으로 그리면 되는데 왜 써야 돼요?” 하고 물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시를 읽고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시적 상황)’을 산문으로 써보기로 했을 때였다.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린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그림으로 그리면 되잖아요.”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이 시간은 글쓰기 시간이니까 글로 써보고 그다음 그림으로 그리면 어떨까?” 하고 넘어가야 했다.
세상을 배우는 길, 세상에 드러내는 일
글과 그림에 대해, 언어와 비언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독서교실 수업은 언어를 중심으로 진행되게 마련이고, 글쓰기와 말하기가 우리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유용한 도구인 것도 사실이다. 내 역할은 어린이가 그 일을 자기 힘으로 해낼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어로 정리된 내용만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유일한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일기의 ‘글’ 부분을 난감해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을 글쓰기의 전 단계 정도로만 생각해온 것이다.
누구에게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각과 느낌이 있다. 책과 관련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하게 하면 어린이는 각자에게 제일 유리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종이를 오려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광고를 만들고, 뒷이야기를 지어내고, 시를 쓴다. 사실은 비언어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어린이가 더 많다. 교실에 어린이 작품을 붙여 두면 다른 어린이들은 유심히 본다. 서로 수업시간이 달라서 모르는 사이라도 나를 통해 작품의 의도를 묻기도 하고(“이 부분은 뭘 그린 거예요?”), 관람자의 평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제 그림 보고 애들이 뭐라고 해요?”). 어린이는 창작자이기도 하고 감상자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독서 수업이 문화예술교육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책 자체가 언어를 매개로 한, 문화예술의 산물이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문화예술은 세상을 배우는 길인 동시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의 의도를 알고,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감상자를 만나는 것. 어린이 자신이 창작자가 될 때도 그렇게 전달되는 작품을 추구하게 해야 한다. 문화예술은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창의성’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창의적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전의 것들을 배워야 한다. 비윤리적이거나 사회적 합의에 어긋나는 것을 창의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표현의 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작은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창의성이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확장 시키는지 실감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낱말이 ‘시’ 안에서 새롭게 쓰인 것을 볼 때 어린이는 은유와 함축성 등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어린이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새 지평이 열린다. 언어만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만이 보여주는 세계가 있고, 춤만이 자극하는 감각이 있고, 그림만이 전달하는 감정이 있다. 그렇게 어린이들이 각자의 무한한 세계를 만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세대의 교류, 풍요로운 감각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이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코로나19 시대에 개인적인 기회로 전시회나 공연장을 찾고 예술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 수업을 제외한 일체의 활동으로부터 소외된 어린이들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시민 교육이다. 공공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계층 간의 격차뿐 아니라 세대 안에서의 이해와 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학교 바깥에서 도서관이 책을 공공의 자산으로 관리하듯이, 문화예술의 다른 영역에서도 모든 어린이에게 열려 있고 다가가기 쉬운 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공연과 전시, 일상적인 교육을 아우르는 어린이 전용 공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어린이가 스스로 진지한 창작자가 되어보고, 감상자, 비평가도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 예술 안에 머무는 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의 공공 교육을 생각할 때 내가 기대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어린이 세대와 다른 세대의 교류다. 우리는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표현을 배우기도 할 것이다. 신선함에 즐거울 때도 있고 낯설어 놀랄 때도, 심지어 걱정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동료 시민인 어린이의 세계를 만나고 싶다. 언어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세계는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아동은 말과 글, 예술 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국경에 상관없이 모든 정보와 사상을 자유롭게 접하고 전달할 권리가 있다.”(「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3조) 어린이가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먹고 입고 자는 것만큼 시급한 문제로 고민하면 좋겠다.
김소영
김소영
작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 『어린이라는 세계』 『말하기 독서법』 『어린이책 읽는 법』을 썼다.
sohosays@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