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거리를 거닐고 모이고 이야기 나누지 못한 지 1년이 넘었다. 학교와 직장, 집에서 잠시 빠져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과 공간이 주는 다채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머물고 싶게 하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 공간을 이용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용자의 경험을 배려한 공간은 사람들을 다시 오고 싶게 하고, 오래 머물게 하며 결국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개성 있는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열린다면 더할 나위 없다. 어린이, 청소년, 중년을 위한 맞춤형 공간을 만나러 가자. 그리고 그 안에 묻어나는 세심하고 사소한 배려를 따라가 보자.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세대 맞춤형 공간에서 ‘북적북적한’ 예술공간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 종로 아이들극장
신나는 놀이터 같은 극장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설립된 어린이 전문 공연장인 종로 아이들극장은 첫 개관 때부터 오로지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공간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환한 조명과 넓은 로비가 아이들을 반긴다. 일반 공연장의 경우 로비를 객석 수의 1/3 정도 인원이 서 있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지만, 종로 아이들극장은 아이들이 편하게 놀 수 있도록 관람 인원 300명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조성했다. 극장 건물 전면과 측면을 대형 유리로 디자인하여 정문 옆에 있는 야외 데크에서도 안심하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형에 맞춘 소파형 객석과 어린이 화장실을 조성하여 극장 이용부터 관람까지 만족도 높은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극장 앞에 놀이터가 새로 생겼다. 원래 아리수를 공급하는 가압장으로 사용하던 일부 공간을 활용하여 3차원 큐브 블록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별도로 리프트를 설치해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극장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동선을 개선했다.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극장에 올리는 공연이 대부분 관람등급 만 36개월 이상이라는 점이다. 극장 이름처럼 다가올 미래를 여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6년 개관 이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 교육을 진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말에 상연한 기획공연 <바다쓰기>는 한글을 주제로 일상에서 자주 틀리는 맞춤법, 받아쓰기를 공연으로 구성하였다. 글보다 말이 편하고, 핸드폰이 익숙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글쓰기의 중요성, 한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만들어 큰 호응을 받았다. 또한, 6월에 막을 올리는 국악과 교육을 접목한 <소리따라 길따라, 대동여지도>에서는 아리랑을 소재로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아리랑의 가치를 전달할 예정이다. 배우들과 전래동요와 율동을 같이 즐기는 관객참여형 공연으로 준비하고 있다. 종로 아이들극장은 또 가고 싶고, 놀고 싶고, 느끼고 싶은 신나는 놀이터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 아츠포틴즈
재밌고 쓸모 있는 예술적 경험
재미는 있는데 쓸모가 없다면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을 함께 나눌 곳이 있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서울예술교육센터는 일상과 예술이 만나서 특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믿으며 청소년을 위한 쓸모 있는 경험을 모색하는 예술교육 공간이다. 10대의 삶과 예술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아츠포틴즈(Arts for Teens)는 예술공간의 이름이자 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다. 미디어와 도구를 매개로 청소년의 자기표현을 예술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융합예술교육을 지향한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한 미디어 기반 워크숍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도구>를 살펴보면 미디어와 청소년의 만남을 상세히 그려볼 수 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10명의 청소년에게 상황이 설정된다. 무인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상상하는 것이 미션이다. 참가자 스스로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그 도구는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무엇을 만들 것인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으로 가득하다. 조력자 역할을 하는 2명의 아티스트와 참여 청소년만 입장 가능한 운영 방침은 일상과 예술이 만날 때 관찰과 경험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예술 감각에 몰입하게 한다. 또한, 아티스트와 함께 공구 전문점에 방문하여 직접 재료를 만져보고, 골라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마주하는 필드트립 과정을 운영하여 다채로운 감각을 길러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예술교육의 다양한 가치를 그려나간다.
이밖에도 책, 신문 등의 전통적 미디어부터 사진, 영상 등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예술창작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자신만의 콘텐츠로 진(Zine)을 기획하고 출판해보는 ‘진(Zine) 메이킹’, 참가자들이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신의 세계를 직접 만드는 VR 워크숍 ‘2001/2023 :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술창작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탐구하고, 실행하고, 공유한다. 어디에서도 만나 볼 수 없는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예술교육이 펼쳐진다. 따분한 일상 속에서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한 순간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설레지 않을까.
  •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 (왼)큰 글씨책 서가, (우)‘일상이 예술이 되다 : 데일리 드로잉’ 수업
행복한 노년을 함께 준비한다
인천 부평에 위치한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에는 큰 글씨 책, 빅북(Big Book) 서가가 마련되어 있다. 혹시 어린이 도서관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50세 이상의 중년층이다. 도서관 한편에는 돋보기안경이 구비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만의 속도에 맞춰 시간이 흐르는 곳, 잠시나마 편안하게 쉬어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은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해 오랜 시간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년 달팽이 어린이 도서관으로 시작하여 미디어 교육과 소통을 중점으로 한 미디어 도서관으로 전환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왔다. 차이로 차별하지 않는 소통하는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며 지난 2017년 어르신을 위한 작은 도서관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공간을 꿈꾸며 ‘일상이 예술이 되다 : 데일리 드로잉’ ‘우쿨렐레 클래스 : 내 나이가 어때서’ 등 다양한 강좌를 운영했다. 특히, 생애 전환기 5060 여성과 함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일리 드로잉 수업은 나를 둘러싼 관계, 기억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본 일상을 공유하며 관계 맺기를 지속한다.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은 무엇보다 퇴직 이후의 삶이 계속 반짝거릴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는 활동에 관심이 많다. 경영위기로 희망퇴직 위기에 몰린 한국GM 노동자들을 위한 ‘슬기로운 노년생활’ 강좌는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직과 늙음을 지역 사회가 같이 준비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강좌를 마련한 도서관장의 기획 의도는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린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웃들에게 더 필요하고, 더 유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의 노력은 이미 지역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 2013년부터 인천시 우수 작은 도서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지역 환경과 주민들의 특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성효선
김수연_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arbre0800@gmail.com
프로그램 사진제공_종로 아이들극장 www.jct.jfac.or.kr, 서울예술교육센터 www.sfac.or.kr, 춤추는 달팽이 도서관 www.blog.naver.com/snail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