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목욕탕연극! 반신욕으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릴랙스 시키듯, 선한 영향력으로 재미난 실험을 기획하고 실현하는 청년 문화기획자들이 만든 연극이란 말씀! 그 소문은 믿거나 말거나 한 달에 한 번, 기린봉에 환한 보름달이 뜨면 마을 주민 모두가 토끼로 변한다는 전주시 남노 송동에서 시작되었다. 이 B급 감성의 목욕탕연극에 대한 소문이 저 멀리 한양까지 당도하고 말았으니, 이제 그 훈김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해질 일만 남았다.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이 만든 목욕탕연극 〈목‘욕’합니다. 웃음을 밀어‘드’립니다〉(일명 ‘욕드’)가 랜선을 타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이유를 찾아 서둘러 채비(목욕 바구니는 챙기지 않았다)를 마치고 밤이면 황금빛을 내뿜는 그 목욕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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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타고 퍼져나간 촌스런 연극
2020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사업 중 하나로 제작된 ‘욕드’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멈추지 않으며 온라인으로 공개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다소 뜬금없는 지점에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어느 순간에는 훅 밀고 들어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담아낸 B급 감성의 스토리가 ‘전주’라는 지역성을 넘어 전국 공통의 언어로 통했던 것이다. 실제 목욕탕이었던 공간에서 이뤄진 ‘욕드’는 ‘미드’ ‘영드’처럼 덕후들의 입문을 기대한 작명 센스도 그만이다. 어른들의 일상대화 속 ‘욕’은 약간의 말장난처럼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고, 삶의 나이테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니 현장감 있도록 대본을 썼고, 배우들의 피드백을 통해 찰진 말맛을 보태었다.
연극에는 두 명의 여배우가 등장한다. 남노송동 토박이 아줌마 역으로 분한 개그우먼 김세아, 전주 새댁 역을 맡은 뮤지컬배우 김경은이다. 이들은 남노송동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던 지난 시간과 현재, 그리고 스쳐 지났던 인연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낸다. 여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욕탕 속 아줌마들, 진짜 그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고슴도치가 장롱 밑으로 들어갔다는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의 사연, 김장이 너무도 싫어 도망 나온 새댁 이야기, 어릴 때 학교에 가지 못한 한으로 글을 배워 자식들에게 쓴 편지 등 누군가에게 있을 법하지만 연극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때로는 배꼽 잡고 웃게 만들고, 때로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세상사다. 여탕 속 수다 삼매경은 결국 통했다.
책 한 권 족히 나올 우리네 인생사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우리 인생은 초라하게 시작해서 결국 밋밋한 결말에 다다르고 마는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다. 물어보지 않으면 답도 하기 싫은, 한 번 더 물어보면 그저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 인생이야기.”
– 『인생, 복작복작 살 때가 좋았지』 머리말을 대신하여
사실, 이 연극은 남노송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채록해 둔 탄탄한 스토리가 바탕이 되어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원광대학교 HK+지역인문학센터가 기획해 펴낸 그림책 『인생 인문학 전주 편-인생, 복작복작 살 때가 좋았지』에서 소재를 발굴해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은 김지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대표와 그의 영원한 멘토 김정배 원광대학교 교수가 의기투합해 벌인 작당(?) 중 하나다.
2019년 여름, 청년들과 미술과 학생들은 여름 내내 남노송동 할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렸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귀찮게도 생각하고, 별다를 것 없는 이런 지루한 인생에 관해 왜 캐묻는지 경계했던 주민들의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젊은이들이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더 찾아와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이내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내기 시작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올 거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어르신들 또한 청년들과 만나면서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왔던 인생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 이야기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받아 적어간 청년들이 쓴 책이니 오죽했을까.
‘욕드’가 동네 담벼락을 넘어 저 멀리까지 소문이 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잦은 만남과 소통을 통해 층층이 쌓아간 주민과의 관계 설정, 그 진정성은 1시간 남짓 진행되는 연극에서도 전해졌다. 가벼운 웃음이 난무하고, 치고 빠지는 콘텐츠들이 횡행한 세태 속에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담아낸 연극은 그렇게 주민들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밈은 밖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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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을 향한 따뜻한 문화공간
‘욕드’의 화제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기린토월’이라는 공간의 상징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주민들의 오래된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던 목욕탕을 리노베이션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인 기린토월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다행인 곳이다. 낡고 오래된 것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흥망성쇠 속에 어떤 또라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지켜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래된 집들이기 때문이다. 기린봉 달이 뜨던 그 밤, 그가 이 건물에 발걸음 하지 않았다면 벌써 건물이 헐리고 말았거나 슬럼화되었을지 모른다. 김지훈 대표는 2018년 11월 15일 건물 옥상에 올라가 달을 보면서 ‘나는 이 건물을 꼭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내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소문이 나돌았다. “어떤 호구가 목욕탕 건물을 사서 치킨집을 한다고 하던디!”
김지훈 대표가 목욕탕을 기린토월로 리노베이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한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30년 넘게 운영되었던 오래된 목욕탕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과 추억을 훼손하지 말 것. 현재 1층과 2층 목욕탕이 있었던 공간은 그대로 살려 카페와 공연·전시 공간, 문화기획단체 사무실, 예술가들의 연습실로 활용되고 있다. 남탕과 여탕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드나들면서 문화를 누린다.
원래 벽돌색이었던 건물 외벽에는 노란색 옷을 입혔다. 어느 날 할머니와 손녀가 기린토월에 차를 마시러 왔는데, 여탕이었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어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할머니가 손녀 몸이 혹시라도 데일까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어 손으로 휘휘 저어 주었던 물은 어떤 색이었을까? 바로, 노란색이지 않았을까? 따뜻한 노랑, 기린토월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을 지향한다.
밥 짓듯 세심하게 서서히
‘욕드’는 여느 평범한 연극처럼 극작을 맡기고, 연출가와 배우를 섭외해서 나온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활동을 펼쳐온 김지훈 대표의 인생이 녹아 있어 가능했다. 대금연주자인 김지훈 대표는 7년 전 문화기획에 눈을 뜨면서 송곳처럼 한 곳을 파기보다는 옆으로 퍼져나가는 활동을 해왔다. 연극 전문가도 아닌 그에게 농촌에서 연극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농촌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니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주민 주도 연극을 만들어 달라는 미션이었다. 그렇게 임실 중금마을의 어르신과 함께하며 관계의 중요성과 놀이로 합의하는 방법 등을 시도해볼 기회가 생겼다.
어르신들에게 자주 놀러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자녀들에게는 어르신들과 진행했던 연습 영상과 사진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김지훈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고향에서 혼자 외롭게 지낼 걱정이 앞섰던 자녀들에게도 감사한 일이 되었다. 어르신들 또한 집안의 아웃사이더가 아닌 중심이자 자랑으로 호혜적 관계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중요한 포인트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는 일인데, 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란 어떠한 틀 안에, 매뉴얼 안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들에게 서서히 스며들어 가는 일이었다.
김지훈 대표가 생각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이란 바로 ‘쌀밥을 짓는 일’이다. 평범한 흰 쌀밥이야말로 공감의 힘이 되고, 일방적으로 평준화된 입맛에 맞추어 쌀밥을 지어 준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의 취향과 입맛을 살펴서 되게, 질게, 눋게 한 쌀밥을 짓는 일의 중요함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한 프로젝트를 마쳤을 때 “밥 참 잘 지었다”라는 이야기면 족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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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기에 두렵지 않은 미래
코로나19 상황 속에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려 힘들다는 호소 속에도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은 올 한해 더욱 기민하게 움직였다. 연초 무서운 확산세에 준비한 공연과 계획들의 잇따른 취소와 손실로 손가락 빨게 생겼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일이 밀려들어 왔다. 그동안 탁월한 팀워크와 호흡으로 따뜻한 영상을 만들어냈던 것이 지역사회에서 알음알음 연결된 것이다. ‘우리가 영상업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일이 밀려들어 왔다. 그래도 좋았다. 언제나 사람을 향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던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의 철학이 통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욕드’는 천만 관광객이 찾는다는 전주한옥마을에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있지만, 저녁 시간에 이런 연극도 한 번 보러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원래 목욕탕이 있었고, 마을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까 늘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어 가능했다.
“저는 미래가 무섭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것은 없어요. 우리가 행복하고 좋은 것은 같이 만들어가는 것, 바로 호혜죠.” 김지훈 대표는 ‘같이’ 있기에 미래가 무섭지 않다고 했다. 인생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본들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문화예술기획도 마찬가지. 기본 골격을 안고 들어가 만남을 반복하다 보면 더 특별한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경험하고도 남았다.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의 안팎에서 조력하고 있는 청년들은 모두 그 과정이 좋아서,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사람 만나는 일이 행복해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같이’에서 ‘가치’를 찾는 청년들이 있기에 전주의 미래는 밝다.
김미진
김미진
전북도민일보 문화교육부 차장.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4년부터 기자로 일하며 살고 있다. 신문사의 여러 부서 중 문화 파트에 근무할 때가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
mjy308@hanmail.net
사진 제공_문화통신사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