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시각예술]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비 온 뒤 무지개처럼, 넘어져도 일어나는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의 이유 있는 실패

우리는 넘어지며 일어나는 종이다. 인간은 두 발로 걷기 위해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직립보행의 모험 속에서 한 발이 넘어지는 순간 다른 한발을 내디뎌 나가는 법을 익혀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어른이 되는 아이는 없는 것처럼, 사실 헤매거나 넘어지는 부분이야말로 이야기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들을 이룬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들은 넘어지는 걸 못 견딘다. 넘어지는 건 걷기의 실패라 생각해서일까, 창피함에 얼른 일어나 홀로 쓰라림을 감내한다.

귀 기울이는 청년 vs 살맛 나는 노년

나이듦과 세대를 연결하는 ‘이야기청’

무더웠던 8월의 중순,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 뒤뜰에 마스크를 쓴 어르신들과 조주혜 무용작가가 모였다. 어르신 스스로 삶을 회고하고, 이야기 나눈 후 각자 10대부터 현재까지 그 시간을 함축할 한 단어를 찾고, 그 느낌을 점, 선, 그림 등으로 표현했다. 이어진 워밍업은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몸의 감각을 깨워주었다. 점과 선, 그림은 이내 어르신들의 몸짓으로 옮겨졌다. 어색하고 더딘 몸짓에, 무더위에도 쓰고 있었던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번졌다. 어르신들은 서로의 몸짓을 보며 ‘30대는 그렇지, 40대는…’ 하며 공감의 표현을 보태었다. 수업을 참관하는 잠시였지만 지나왔던 나의 20대와 30대,

무심코 뜯은 과자봉지에서 소비의 태도를 인식하기

아주 사소하고 비밀스러운 기록 〈비닐스런 과자 팩토리〉

택배 비닐, 상품 포장 비닐, 과자 비닐, 비닐장갑, 간편식이 담긴 팩 비닐 등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든 일회용품이나 비닐을 우리는 언제부터 사용해 왔을까? 너무 무감각하게 사용해 왔던 것은 아닌지, 소비하기 전에 이것을 의식할 수 있다면 사용량을 줄이거나 개선하려는 어떤 다른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비닐이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그 종류에 따라 몇십 년에서부터 몇백 년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수백 년을 사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터무니책방에서 만난 동네 예술가 친구인 방영경, 신현진, 엄선 작가는 각자의 관심사였던 소비,

덜어내고 더해가며 호응하는,
예술-이웃

대안예술공간 생산소

광명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비치된 잡지를 뒤적이다 보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공주역에 도착한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기차역 주차장 뒤편으로 걸어 나오면 운전이 서툰 외부인을 데리러 온 생산소 대표, 이화영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 탁 트인 도로에서 완연한 계절감과 정취를 느끼며 삼십 여분을 달리다 보면 커다란 나무와 고즈넉한 건물이 나란히 교차하는 부여 읍내로 진입하고 로터리를 두어 번 돌아 백마강(금강의 다른 이름)을 건너는 동안 굵직한 글씨의 현수막을 통해 부여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접한다. 규암면 마을 어귀로 들어서 문화공간으로 개조한 농협창고 옆에 차를

그리는 즐거움을 간직한 깊고 좁고 내밀한 장소

창작그룹 밝은방

“여기 밝은방인데 되게 어둡네요.” 농담으로 던진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켜러 간다. “너무 밝을까 봐요.”라고 나지막이 답하며 천장의 조명을 살피는 표정이 차분하고 진지하다. 어쩌다 밝게 웃는 얼굴은 너무나도 해맑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장난을 걸게 된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 ‘편안하다’라는 형용사가 좋은 사람, 자기 얘기 좀 해달라고 하면 고개를 푹 숙이다가도 밝은방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거리는, 창작그룹 밝은방 공동대표 김인경을 만났다. 밝은방 작업실 전경 발달장애 창작자의 편안한 아지트 밝은방은 은평구 연천초등학교 앞 빨간 벽돌 상가 2층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건물 1층에는

인식의 포문을 여는 ‘도입 장인’

아트로협동조합의 문화다양성 활동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로협동조합(이하 아트로)은 ‘일상 속 문제를 문화예술로 해결하고자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한다’라는 모토가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딴지 걸 거리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단다. ‘뭔데 어떻게 해결을 해?’ 이런 약간의 논쟁적 뉘앙스 말이다. 그래서 그들 간에 이 모토를 두고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참고로 아트로 조합원들은 대표로서 각각의 역할을 동등하게 하고 있으며, 토론을 즐긴다. 아트로에 생기는 각종 이슈마다 각자 최선의 논리로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의견의 타협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누군가는 ‘해결’이라는 단어를

시간을 좇다 땅을 좇다

분단의 경험을 기록하는 비무장사람들

‘비무장사람들’은 DMZ권역을 중심으로 사회문화리서치 기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분단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작가·기획자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비무장사람들’을 제안하고 조직한 비무장사람들 대표, 작가 진나래를 만나보았다. 보라색 별을 얼굴에 담고 다니는 사람 진나래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겨울이었다. 그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에코뮤지엄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진나래 작가는 경기도 내 다양한 지역 현장을 탐방하던 중 내가 있던 의정부 빼뻘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비슷한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동료 작가를 만나니 반가웠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경계의 땅이기도 한 의정부 빼뻘과 연천 신망리에서 각자 작업하고 있는

예측할 수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게 춤이야!

비접촉 시대를 건너는 프로젝트 곳곳의 모험

“반항심이요.”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하는 ‘프로젝트 곳곳’(이하 ‘곳곳’) 윤가연 대표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당장 누구를 만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수업을 이끌어온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반항심이라. 나는 마치 기다렸던 답을 들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마스크 속으로 몰래 씨익 웃었다. 궁금하다 곳곳, 넌 어떤 돌아이(경외심을 담은 의미다)냐. 더 알고 싶다. 곳곳은 무용수 세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팀으로, 2019년부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수진동 일대의 놀이터와 골목길을 누비며 우연히 만난 동네 아이들과 춤을 추고 댄스

재난의 시간, 가족의 클리셰와 터부를 깨다

만물작업소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

재난 영화 속에는 익숙한 장면들이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재난의 징후들이 조금씩 나타나지만 대다수의 외면 속에서 방치되다가, 결국 재난이 일어나고 일상은 끝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자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고군분투하는 부모가 나온다. 이 가족들은 대부분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재난 속에서 가족애를 재확인하고 위기상황들을 헤쳐나간다. 영화에서 수없이 익숙하게 반복된 서사적 클리셰다. 특히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재난 영화들에서는 아이들과 동물의 구조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들의 희생에 관한 직접적인 묘사는 터부가 되는 경향이 있다. 재난 영화에서 담기지 않는 또

주민의 삶을 비추는 창작소의 불빛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나의 유년 시절을 보낸 이곳 울산 북구 염포는 조선 세종 때에는 일본과 교역을 담당하던 삼포 개항지 중 한 곳이었고 근대 이후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이 들어오면서 현재는 우리나라 자동차·조선산업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염포는 노동을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이 터를 잡아 뒤에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공장을 바라보며 위에서 보면 산과 공장 사이 기다란 꼴로 독특한 형태의 마을을 이뤘다. 마을 끝자락에는 염포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공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예술 레지던스 공간인 ‘북구예술창작소’가 있다. 어릴 적 친구를 기다리던 그 골목에 이런 멋진 공간이

감각의 교차 속,
비로소 듣고 들리는 것

아트엘 <듣다> 프로젝트

스며들다 ‘듣는다는 게 대체 뭘까?’ 올해로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아트엘의 <듣다> 프로젝트를 리뷰하기에 앞서, ‘듣는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감각 기관, 그중에서도 특히 청각기관을 통한 소리의 알아차림을 뜻한다.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일반적·사전적 의미 밖에서 듣는 행위를 사유해본다면 어떨까. 만약 듣기의 대상이 ‘소리’에 한정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이유가 ‘의미나 정보의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방식이 귀를 비롯한 ‘청각기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듣기’라는 명사적 상태를 ‘듣는다’는 동사적 행위로 전환할 때에서야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예술교육

제4회 유네스코 유니트윈 국제 학술대회 리뷰

올해로 4회째 맞는 유네스코 유니트윈(UNITWIN, University Twining and Network) 국제 학술대회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본래 작년에 개최되어야 했을 이 학술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어, 올해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유니트윈 국제 학술대회는 2021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과 연계되어 개최되었으며, 본격적인 학술대회의 사전행사로 국내외 인사의 축사와 기조발제, 예술공연,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바라본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사전 학술대회 등이 진행되었다. 제4회 유니트윈 국제 학술대회는 ‘위기의 시대, 행동하는 예술교육’이라는 주제 아래, 기조발제와 폐회세션을 포함하여 총 11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유니트윈 조직위원장을 맡은 박신의 경희대학교 교수는 팬데믹으로

예술의 텃밭에 싹튼 거대한 질문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

2019년 11월 홍콩에서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APP Camp)가 열렸다. 우리는 여러 주제를 거쳐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고, 호주의 프로듀서 동료는 그들이 당면한 문제로 ‘환경’을 이야기했다. 당시 호주는 9월부터 시작된 화재가 진행 중이었다. 이후 2020년 2월까지 6개월간 이어진 대재난으로 호주 전체 숲의 20%가 잿더미가 되었고,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음을 당했다. 호주 동료는 창작과 교류를 위해 탄소를 배출하며 이동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것인지 의문과 우려를 나타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고온 건조한 이상 기후 조건이 만들어질 확률이 최소 30%

‘우리’를 도모하는 오늘의 방식

이모저모 도모소 〈슬로우슬로우 탭탭-지팡이 탭댄스〉

“일정 시대”에도, “6.25 사변”에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100세 인생 시대에 머지않아 그 높다란 산등성이의 9부 능선에 도달할 필자의 조모는 요즘 들어 자주 “징역 같은” 매일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토로한다. 정부의 거리두기 단계 격상이 곧 일상의 기준을 시시각각 정립하는 과정 속에서, 조모는 직접 대면에 대한 거리낌을 상쇄하고자 얼마 전 오랫동안 써오던 2G 폴더폰을 고화질의 영상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덕분에 울퉁불퉁하게 솟은 곳들을 눌러야만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던 감각을 매끈한 평면 위에 놓인 불분명한 경계의 터치감으로 전환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공간

미아리고개 도시재생 공간 ‘미인도’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에 위치한 ‘미인도’를 찾아가려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곳은 꽤 알려진 맛집이 많은 대학가이다. 이렇게 번화한 곳 근처에 미인도가 있구나, 의아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의 신비로움은 횡단보도 하나에 의해 단절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고가도로가 나타날 즈음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인적이 뚝 끊긴다. 그리고 눈앞에 오래전 점집이 있던 흔적을 지나 청소노동자들이 열심히 쓰레기 분리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풍경을 만났다. 길은 이어져 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길이 도시에는 무수히 숨겨져 있다. 끊어진 발걸음을 잇고 다시 걸어 다니는 길을 상상한 사람들의

지구 생태계와 미시적 관계 맺기

2019 강원 창의예술교육랩 포테이토클럽 ‘에코-에듀랩’

2016년부터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써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설정하여 인류의 보편적 문제인 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에 더해 지구와 환경문제로 구분할 수 있는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과 경제 사회문제로 구분될 수 있는 기술, 주거, 노사, 생산, 고용, 소비, 사회구조, 법, 대내외 경제 등 분야 관련 17가지 목표를 설정하였다. 특히 SDGs에서는 지구와 환경에 대한 목표가 강조되었다. 지속 가능성, 지속 가능한 개발/발전을 위해 빈곤, 난민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평화와 정의가 중요하다, 생물종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