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의 문해력은 OECD 최하위이다’라는 주장은 최근의 문해력(literacy) 담론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져 단어의 뜻을 모르고,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인데, OECD의 문해력 평가 결과는 그 주요한 근거로 인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제기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로 그 원인을 돌리게 되며, 디지털 미디어를 멀리하고 읽기 쓰기를 강화하라는 ‘문해력 향상’ 처방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청소년 문해력에 대한 대중적인 교육 담론은 사실 문해력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팩트체크’ 검증 도구에 ‘한국인의 문해력은 OECD 최하위이다’를 검색해 보면 그 결과는 ‘대체로 사실 아님’인 것이다. 문해력 교육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사실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실제로 보통 근거로 제시되는 OECD의 최근 학업성취도 조사(PISA) 읽기 영역의 전체 순위는 OECD 국가 중 6위로 높은 편이며, 점수는 514점으로 OECD 평균 487점보다 높은 순위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OECD의 이 조사 결과는 실제로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2021년에 OECD에서 발간한 「21세기 독자 :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기르기」(21st-Century Readers : Developing Literacy Skills in a Digital World)는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 보고서인데, 여기에는 한국 청소년의 문해력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부분이 있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가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는데, 전반적 읽기 역량이 우수한 데 비해 특이하게도 두 영역에서는 최하위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한국 학생들은 주어진 지문을 읽고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한다. 두 번째로 공짜 휴대폰을 준다는 피싱 메일에 답신을 보내 공짜폰을 받겠다고 답한 한국 학생들이 유달리 많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휘력 부족이 아니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가 원인일까? 앞으로 연구해 볼 일이다, 정도로 보고서에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요약하면,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의 진짜 문제는 전통적인 문맹 판별 기준인 어휘력 부족이나 문장 해석이 아닌, 정보 판별 능력 및 비판적 읽기, 즉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보고서에서는 학교에서의 디지털 미디어 교육 기회의 비율과 위 문항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한국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디지털 미디어 교육의 기회와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이 모두 낮음을 보여준다. 즉, 디지털 미디어 때문에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 교육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읽기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OECD가 문해력, 즉 리터러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위에 언급한 「21세기 독자」 또는 최근 국제 교육정책의 중심에 있는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 등에서는 21세기의 문해력을 ‘지식을 구성하고 검증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모든 지식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던 시대, 인쇄된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해석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독자에게는 새로운 기술(역량)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정보 흐름은 방대하며, 편향된 정보와 가짜 뉴스, 악성 콘텐츠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즉 리터러시는 단순한 문장 해석 능력이 아닌, 정보의 사용 방식과 관련된다.
두 번째로, 문해력은 인쇄 미디어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텍스트 및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형식과 맥락을 포괄하며,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고 소통하는 종합적인 역량을 뜻한다. 오늘날의 리터러시 개념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정보 리터러시를 모두 포괄하며, 이는 단순한 문자 해석 능력이나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이 아니라 미디어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포괄적인 역량, 즉 지식, 기술, 태도의 총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화면서 미디어의 형식과 인간이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져 왔기 때문에 문해력의 의미 또한 달라졌다. 즉 20세기의 문해력이 인쇄 미디어 기반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었다면, 21세기의 문해력은 현재의 광범위한 미디어 환경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핵심역량의 의미이다.
가능성과 위험의 공존 속에서
우리가 현재 문해력 교육의 방향에 대해 궁리할 때,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여기에서 살아가는 아동 청소년의 생활을 관찰하고, 그들이 어떻게 배우고, 어떠한 경험을 하며, 무엇을 학습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변하며, 이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이 각기 다른 목적에 따라 어떻게 조직되고 활용되는지, 어떤 유형의 청소년들이 어떤 미디어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기회를 얻게 되며 위험에 처하는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디어 경험에 대한 연구들은 이들의 미디어 생활이 생각보다 매우 능동적이고, 다양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며, 디지털 미디어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고, 다양한 가능성과 위험이 존재하는 새로운 삶의 환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디어 안에서 이미지와 영상, 각자 다른 맥락을 가진 밈들은 소통의 중심에 있다. 많은 어린이 청소년은 미디어 플랫폼을 다양한 맥락과 목적에 따라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게임은 사실상 소통과 친교의 장으로 작용한다. 각자 속한 커뮤니티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지며, 사용하는 미디어 언어가 달라진다.
기성세대 역시 미디어를 사용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어떤 미디어 생활을 하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최근의 ‘단체 대화방’은 이러한 미디어 경험을 더욱 개별화하는 경향이 있다. 친교와 놀이, 취미생활과 학습 목적으로 수도 없이 많은 단체 대화방이 활성화되어 있다. 포인트의 경제, 소통의 기호가 되는 최신의 밈과 짤들, 미디어 안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행동 규범과 경제 원칙들, 보상과 벌에 대한 합의들은 디지털 미디어 안에서 이들이 만들고 적응해 나가는 새로운 세계의 작동방식이다. 안타깝게도 기성세대가 그 작동방식에 관심 가지게 되는 때는 범죄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후가 대부분이며 이는 다시 미디어에 대한 금지와 터부시로 이어진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청소년이 안전할 권리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전통적 교육을 강조하고, 미디어 사용을 멀리하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다양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회피는 오히려 존재하는 문제를 은폐할 뿐이다. 예를 들어 앞서 OECD 평가의 문항 중 한국 학생들이 피싱 메일에 유독 우호적이었던 독특한 결과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재 한국의 디지털 마케팅 환경이 무차별하게 청소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특정 요금제를 이용하는 등 기업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비용을 지불하면서 ‘공짜 휴대폰’을 얻는 방식은 이미 한국에서 보편적인 디지털 경제의 작동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학생들을 위한 디지털 마케팅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미디어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을까? 모두 알다시피 정답은 그렇지 않다. 이는 청소년 문해력 문제의 핵심은 의외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고도 자본주의에 기반한 디지털 환경과 여기에 노출된 청소년들, 그리고 교육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과 의견을 구별 못 하는 문제는 ‘비판적 읽기’에 대한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분위기 또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문해력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닌, 사회적 맥락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야 하며, 우리는 청소년들이 디지털 문화 전반과 기술, 기업과 플랫폼에 대해 능동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그들이 처한 미디어 환경 안에서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이미 자기 자신을 디지털 세계 안에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성공적인 미디어 생활을 위해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역량을 원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미디어 안에서 위험에 처할 때 학교에서 대처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학교 숙제를 잘하기 위해 쓸만한 정보를 선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했으며, 썸네일의 주목도를 올리는 등의 실용적인 디지털 기술을 알고 싶어 했다. 이러한 것들은 학생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교육에 대한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청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21세기의 디지털 시민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일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도 어린이 청소년은 생존하고, 보호받고, 안전하게 발달하고,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박유신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회장, 서울삼광초등학교 교사다. 초등교육과 초등미술교육을 교육대학에서 공부하고, 애니메이션 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하는 교사로서의 첫 시작은 문화예술교육이었지만, 수년 전부터 디지털 환경의 아동의 삶과 경험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디지털 미디어 교육과 포스트휴머니즘 수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에서 공교육 기반의 문화예술교육 및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책연구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디어리터러시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미래를 여는 미디어 교과서』(공저), 『인공지능 시대의 포스트휴먼 수업』(공저), 『학교에서 애니 하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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