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고 그동안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라 여겨지던 기술과 매체가 순식간에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전에도 익숙한 풍경이었을 테고, 어떤 이에게는 일상의 확장이기도 했겠지만, 기술과 친숙하게 지내지 못하던 나에게는 혼란스럽고 조바심 나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내가 배인숙 작가를 만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전자음악을 전공한 그는 장치나 기술을 이용하여 소리의 의미나 형태를 재해석하거나 시간성, 공간성에 집중해 보는 사운드아트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워크숍의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워크숍 기간 동안 오랜만에 몰두했던 경험 덕분인지, 그가 시종일관 뿜어내는 유쾌함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도 기술과 친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밀려오는 기술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이제는 이미 일부가 되어버린 기술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헤엄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듣고자 그를 만났다.
더 나은 답을 위해 질문하기
최근 배인숙 작가는 ‘고양예술창작공간 해움’이라는 레지던시에서 머물며 작업을 구상 중이었다. 근황을 물어보니 그는 요즘 챗GPT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 참여하는 전시에 챗GPT를 이용하여 작업을 합니다. 하기도 전에 좀 고민이 많이 되는…. (웃음) 또 챗GPT와 저의 음악, 사운드를 연결시켜야 되잖아요. 밤이면 밤마다 챗GPT를 하면서 요즘 계속 힘들게 지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미 너무 짧은 시간에 예술가들이 (챗GPT로) 많은 걸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나의 것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이런 고민이 사실 많은 편이에요.”
챗GPT와 함께 작업을 구상하는 건가요?
“질문 주고받아요. 작업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근데 어떤 작업인지 말도 안 하고 그냥 고민 상담 주로 하고요. (웃음) 음악을 같이 만들려고 해도 챗GPT가 오디오 파일을 나한테 보내주지는 않잖아요. 코드 진행이라든지 기타 타보 악보, 아니면 드럼, 이렇게 조각조각 보내주다 보니 이걸 조합하는 게 너무 어렵고 차라리 그냥 내가 혼자 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요. 예를 들어 챗GPT가 (코드 진행을) a 마이너로 해서 B로 가자, 그렇게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나도 알아요, 그런 건. a 마이너에서 B로 어떻게 가는지가 중요한 건데…. 뉘앙스를 서로 얘기하는 건 좀 재밌는 것 같아요. 기타 소리가 어땠으면 좋겠는지, 징징거렸으면 좋겠는지, 제가 되게 많은 소스를 줘야 해요. 그러니까 내가 똑똑해져요. (웃음) 지식을 얘한테 막 알려주면서. 그럼 (기타 소리를) 징징 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고. 하여튼 얘를 가르치고 있어요.”
작업하다가 기술적으로 모르는 것이 생겼다거나, 정보나 도움을 받고 싶을 때 챗GPT를 사용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 들었을 때는 오히려 챗GPT에게 질문하려면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질문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여러 가지 밑 작업을 해야 돼요.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 기본적인 걸 익히기도 하고, 요즘에는 우리나라 기술 도서가 많이 좋아졌어요. 책도 읽어서 (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다음에 챗GPT한테 물어볼 때 효과가 있는 거예요. 내 질문이 후지면 챗GPT도 우리가 아는 얘기만 해요.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키워드도 많이 줘야 하고 이렇게 해봤는데 안 됐다, 이런 경험도 다 줘야 돼요. 그래서 오히려 챗GPT가 나와서 우리가 더 많이 공부해야 해요. 질문하기 위해서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범접할 수 없는 만능의 기술처럼 느껴지던 챗GPT도 그냥 나보다 조금 더 (어쩌면 많이) 똑똑한 대화 상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참여자도, 환경도 매번 달라지는 예술교육 안에서 기술이 융합될 때는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있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현장에서는 되게 단순하게 이루어져요. 우리가 어디서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게, 현장에서는 ‘컴퓨터 있어요?’ ‘없어요.’ ‘재료비는 1만 원 안에 해 주세요.’ 대부분 이렇거든요. 그리고 납땜 같은 거 하려고 하면 위험하다 하기도 하고요. 아니 그럼 전자 기술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는데 납땜 말고 풀로 붙이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융합이다 뭐다 말은 엄청 많이 하는데, 실질적인 것이 받쳐지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고민은 없어요.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그냥 맞추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런 걸 기관에서 바꾸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공간을 미리 보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이곳은 공간이 작지만, 높이가 3미터거든요. 그래서 항상 편안한 마음이 들어요.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천정이 조금 높으면 서로 기분이 괜찮은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아주 큰 장점이 있습니다.”
  • <소리나는 무언가>(2022, 퓨처랩)
  • <비트스텝>(2021, 백남준아트센터)
무엇으로가 아닌, 무엇을 표현할지의 문제
사운드아트는 기술과 밀착되어있는 예술 분야인 만큼 작업에서도 언제나 오디오 스트리밍, 아두이노(Arduino) 등 다양한 매체나 기술을 엮여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기술 덕분에 더 흥미롭게 변한 작업도 있을까? 예술교육에서도 참여자들에게 어떤 툴을 쓰는지, 플랫폼을 쓰는지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지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는 10여 년 전에 아두이노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면서 작업이 확장됐어요. 아두이노 때문에 작업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어떤 작업이든 기본적으로 아두이노와 같은 작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센서, 데이터, 웹 이런 다양한 방법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거 같아요. 예술교육에 어떤 기술이나 툴을 쓰느냐는 참여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진 않아요. 중요한 건 ‘나도 이런 거를 좀 시도해 보고 싶은데?’ 실험하는 마음이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툴은 툴일 뿐이잖아요. 왜, 음악 하시는 분들은 계속 질문하잖아요. 음악 하면 큐베이스 써야 하나, 로직 써야하나. 지겨워 죽겠어요. (웃음) 왜냐하면 지금은 툴이라는 게 모두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내가 툴 때문에 망했다’ 이런 건 하나도 없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이 없기 때문에 문제죠. 그러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쓸모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표현하고 싶고, 나를 나타내고 싶은 참여자가 많을 때는 툴과 상관없이 잘 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안되고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많은 걸 준비한다 해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오는 기술과 융합한 예술 작업과 프로젝트를 보며 혼자 너무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무언가를 더 배워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조급함이 있었는데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부담감을 털어놓자, 그는 ‘테크 우울증’(그가 만든 말이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기술을 빨리 익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이것저것 다 배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배우면 배울수록 맘이 허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배우니까 좀 더 아는 게 많아지는 거 같은데 좀 마음이 헛헛해지죠. 저도 과거에 그런 적이 많았습니다. 컴퓨터를 무리해서 업그레이드하고 남들 좋다는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다 설치하다 지우는 게 일상인 그런 날들이 있었어요. 그럴 때 스스로 ‘또 테크 우울증 왔구나’ 그랬어요. 음악도 좋아해서 관련 장비, 기타 이펙터(기타의 소리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주는 장치) 사서 며칠 동안 세팅은 다 해놨는데 정작 기타는 절대 안 칩니다. 그래서 어떤 걸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일단 그것을 둘러싼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일단 간단한 기능을 익히고 나서는 바로 이것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이 기술의 도움을 더 많이 받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며 넓어지는 가능성
그렇다면 기술은 예술 안에서 어떻게 융합되어야 할까? 최근 AI가 예술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거나 우려를 표하는 예술가도 많다. 비단 최근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예술 안에서는 기술을 거부하는 입장이 한쪽에 항상 존재해 왔던 것 같다.
“한 5~6년 전에 3D 프린터가 나왔을 때, 박람회에 갔었는데요. 그때 공예 작가들이 우리는 이제 어떡하냐고, 공예가 없어진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공예가 없어지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옛날보다 더 올라가고 있어요. 공예 비엔날레도 더 커지고요. 저는 기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술은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안 돼요. 기술이 나에게서 뭘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더 넓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로서 기술이 좋은 점은 적은 비용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라는 거예요. 기술로 예술을 한다 그러면 거대한 미디어아트를 생각하는데, 다른 측면으로 보면 사람이 혼자서도 기술을 이용해서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소상공인처럼요. 예를 들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회사 다니면서 집에서 혼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옛날 같았으면 그 정도 퀄리티가 나오기 쉽지 않았겠지만 툴의 발달로 점점 좋아지고 있잖아요. 그 사람이 애니메이터이기도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없었더라면 과연 그런 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럼, 반대로 예술로 인해 기술이 변화되는 것도 있을까요?
“그 부분을 고민 많이 했는데, 요즘 기업들이 아티스트 랩을 만들고, 아티스트를 끌어들여서 함께 무언가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생각했는데, (기업에서는) 뭔가 하나가 더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 뭔가가 있어야 해요. 최신 기술로 인해서 기계와 인간의 다른 점이 점점 간극이 좁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거는 너무 기계같아도 안되고, 인간스러움을 약간 더하려고 하는 노력인 것 같아요. 너무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 조금 불규칙함을 넣는다든지, 이런 식으로 인간적인 면이 추가돼야 하는 거죠. 예술은 인간을 전면으로 생각하니까 기술도 그런 부분을 고려하게 되지 않나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더 탐험하고 싶은 기술의 세계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 시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있어 그 기술과 자신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렇지만 꼭 최신의 기술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술이나, 기존에 존재하던 사물을 탐색하는 것도 충분히 흥미로운 것 같다며 최근에 보게 된 동네 육교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끔 되게 예쁜 육교가 있어요. 우리 동네를 산책하면서 지나가는데 육교가 너무 예쁜 거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그 단아한 육교 있잖아요. 나에게 희망을 주는 듯한…. 이거 보면 다 좋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육교 사진을 보여주며) 엄청 예쁘지 않아요? 공공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기술보다는, 요즘에 사람들이 근육을 키우잖아요. 근육을 키우고 날씬해지는 것처럼 저는 귀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부분을 훈련하고 있다고 할까요? 넓은 공간에서 360도 카메라처럼 내가 360도 귀로 돌아보며 소리를 듣는다든지, 마치 소머즈처럼요. 감각적인 귀가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대부분 귀에 너무 소홀하잖아요. ‘나는 다른 건 모르는데, 참 귀가 좋아’ 자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배인숙 작가가 산책하며 찍은 육교
     
  • <하루의 진동>(2020,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입주작가 결과 보고전)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우리 동네의 육교를 살펴보았다. 항상 당연한 듯 신체의 일부로 존재했던 귀도 새삼스레 만져보며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을 순간순간 촉발하는 호기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챗GPT가 난리여도 대부분 사람들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 어떤 새로운 것이 나와도 호기심 없는 이의 세상은 지루하다. 이 기술의 바다에서 무언가를 더 알고, 움켜쥐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질문을 품고 유연하게 헤엄쳐야겠다.
배인숙

배인숙

전자음악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운드 기반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음악과 소리를 재료로 기존 시스템과 장치를 변경하거나 직접 만든 악기를 활용한 공연과 전시를 해왔다. 복잡한 기술, 기계의 원리를 단순하게 표현하여 음악적 도구이자 새로운 사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부터 공간을 찾아다니며 실험적 연주를 들려주는 오픈 연주회 <하울링 라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 반경 안에 주요 장소들의 소리를 기존 픽토그램에 담은 작품 <중랑사운드픽토그램>(2015)을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변경하여 많은 사람의 일상이 담긴 작업으로 확장하였다. 공연, 전시로 음악가들이 만든 소리장치 그룹전 《Sounding Sounder》(2014), 《맛있는 소리》(2015), 《리스펙트 오디오》(2015), 사운드 퍼포먼스 <소리주머니세트>(2020) 등이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18기(2020), 고양 예술창작공간 해움 1기(2022-2023)로 선정되었다.
⦁ 사운드 픽토그램 @오픈코드 아카이빙
박다현
박다현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주목하여 음악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살고 있다.
bornfre9@naver.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작품사진 제공_배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