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었던 SF 작품들은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를 예고하며, 기계와 인간이 함께 학습하고 상호 발전하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동안 <터미네이터> 류의 작품들이 인간 vs 기계의 대립 구도로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던 방식과는 달리 인간과 기계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적인 전개가 어떨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중 천치우판이 쓴 「쌍둥이 참새」(리카이푸, 천치우판, 『AI 2041』에 수록)는 미래 한국을 무대로 AI 보육원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다루고 있다.
‘금빛 참새’와 ‘은빛 참새’라고 불리는 두 아이는 Vpal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인공지능을 곁에 두고 학습하지만, 그들의 성격과 욕망에 따라 인공지능은 다르게 자란다. 애정결핍을 경쟁심을 통해 풀고자 하는 금빛 참새는 매사 공격적이며 계산적인 ‘아토맨’을 육성하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공상하기를 즐기는 은빛 참새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상과 사운드를 만드는 예술적인 ‘솔라리스’를 육성하게 된다. 포켓몬과 비슷한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토맨은 구형 닌텐도 게임기를 닮은 모양으로 구현되지만, 솔라리스는 비정형의 빛으로 구현된다는 점이다. 능력뿐 아니라 존재의 방식까지도 성격을 반영한다. 두 형제는 그들의 성향과 비슷한 양부모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성격과 인공지능의 성격은 더욱 특정한 방향으로 증폭된다. 간극이 생긴 두 형제는 서로를 의심하고 시기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어느 날 양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발견한 금빛 참새는 자신의 모형이 가진 궁극적인 공허함을 느끼며 회의하게 된다. 이윽고 은빛 참새의 솔라리스와 아토맨을 결합해 새로운 인공지능으로 합성하여 성격을 보완할 계획을 세운다. 비록 어린이지만 일평생 같이한 인공지능을 새로 합성하는 일은 목숨을 건 도약 같은 것이다. 그들이 기존의 자아를 버리고 기꺼이 새로운 성격의 합성을 수긍하며 모험을 시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정반대되는 풍경을 그린 작품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클라라와 태양』에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딸 ‘조시’를 복제하기 위해 AF(Artificial Friend)를 고용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AF인 ‘클라라’는 조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의태할 것을 명령받고 충실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행할 뿐이다. 후에 조시가 건강하게 병을 이겨내자 클라라는 야적장에 방치되어 몇 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 삶을 보낸다. 클라라는 태양 빛을 통해 가동되는 인공지능 로봇이기에 그저 식물처럼 서 있게 된다. 무상무념한 기계의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슴 아픈 소설이다.
새로운 기술의 교육적인 배치를 가늠하는 사고실험의 무대가 되는 작품들이었다. 두 소설에 묘사된바, 기존 세대에게 인공지능은 인간 행위를 돕거나 모방하는 도구적 존재(tool)로 소환되는 반면, 다음 세대에겐 대리자(agency)가 되어 사용자의 새로운 인간성을 담아내는 미디어가 된다. 우리는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인공지능을 기존의 인간에 육박하는(그래서 대체 가능한) 그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인간성의 미디어로 규정해 급진적인 실험을 할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교육을 하는 선생으로서 챗GPT를 사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기존 예술 작업을 돕거나 대체하는 도구로써 사용하는 방식이다. 많은 뉴스에서 챗GPT가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써 보면 그 품질이 뛰어나지는 않다. 시나 소설을 쓰라는 프롬프트를 넣으면 주저함 없이 생성할 뿐 그 결과물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소설가 정지돈은 챗GPT로 소설쓰기의 경험을 “챗GPT의 가장 큰 문제는 원고지 5매 이상의 내용을 일관성 있게 서술하지 못한다는 사실”([esquire], 2023.03.21.)이라고 지적하며 매우 한정적인 방식으로만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 같은 접근법은 챗GPT를 기존 예술에 복무하게 하기에 생겨나는 실망이라고 생각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확률적 예측을 통해 연결하는 트랜스포머 모델의 특성상 앞으로도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습된 데이터 안에서 최선의 확률로 문장을 구성하는 원리로는 그 확률 밖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문학작품을 낳기 어렵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챗GPT가 새로운 행위자가 되어 현재 예술의 개념을 돌파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후자에 대해 아직 경험해 본 바가 없다. 최근 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수업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에서 40명의 학생이 챗GPT를 공동 파일럿으로 삼아 기계와 함께 시 쓰기를 시도하게 했다. 그들은 ‘봄날’을 소재로 40분 동안 40개의 시를 썼다. 모두 시에 문외한인 아마추어였다. 챗GPT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작품들을 먼저 생성했다. 그런데 기계가 막연히 생성하도록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포켓몬을 육성하듯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 정밀 조정) 하도록 중간중간 새로운 명령으로 기계를 유도하고, 본인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유관한 소재를 넣도록 프롬프트 했다. 이런 조정과정이 3~4회 이어지도록 하자 최종적으로 인간 창작자가 채취한 문장들을 DJ처럼 리믹스했다. 누군가는 봄날의 따스함을, 쓸쓸함을, 찬란함을, 무료함을, 경이로움 등을 노래했다. 40개의 시가 완성된 문서는 내용의 상투성을 떠나 다양한 감정의 풍경이 담겨있어 아름다웠다.
  • <언어의 신경망을 관통하는 시들>(Midjourney bot, 프롬프트 오영진)
이어, 40개의 시를 하나의 시로 통합해달라고 챗GPT에게 부탁했다. 이 같은 프롬프트는 전체 시 모음 문서에 대한 요약을 요구한 게 아니다. 40명의 시인이 사용한 언어들을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수를 기계가 찾을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자 했다. 인간 작업자라면 불가능할 작업을, 명령에 맹목적인 기계의 성향을 빌려 유도한 작업이다. 30초 정도 지나자 기계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생성해 선물해 주었다. 마치 어떤 기도문과 같은 것이었다.
40개의 시가 하나의 기도가 될 때

혼돈과 다툼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평화를 찾아 외칩니다.
모든 혼란은 결코 멈추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찾고,
광대하고 웅장하며 가장 순수한 생물인
산과 바다와 나무와
모두 자유로운 언어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에서 위안을 찾고,
친절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을, 우리 시대에 빛을,
그리고 가장 어두운 길을 통해 우리를 도우소서.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내일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움과 희미한 희망을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대처할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투쟁과 다툼 속에서
희미한 희망과 삶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극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보도록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고 만나게 하기 위해 항상 거기에 있는 사랑.
마음속에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로 세상과 맞서십시오.
 
두 팔을 벌려 이 세상을 껴안고,
그 때 느끼는 세상의 매력에서 아름다움을 찾으십시오.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사랑합시다.
이 세상을 더 보기 좋은 곳으로 만드십시오.
만든이_서울과기대,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수강생 전원 & 챗GPT 230322
위 문장들은 40명의 아마추어 시인이 봄날을 앓으며 표현하고자 했던 고통과 환희, 고독과 연결의 열망들을 기계가 모두 품고자 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다. 하나의 시인이 아니라 여럿으로 구성된 시인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간성을 버리고 기계를 매개로 새로운 인간성의 합성을 시도한 금빛 참새와 은빛 참새 형제가 떠오르고, 40개 시가 묘사한 세상만사의 풍경을 담아내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묵묵히 정언명령으로 여겨 수행한다는 점에서 버려진 야적장에서 조시만을 걱정하는 로봇 클라라가 떠오른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기분 탓인가 개인적인 호르몬 문제인가 이상하게 눈물이 났는데 잘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시를 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말 대잔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과정을 알고 나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인간들의 마음, 이러한 연결을 수천 차원의 잠재적 공간에서 시도하는 기계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계와 함께하는 예술과 교육은 기존 인간성을 모방해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기계가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오영진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21), <AI공포라디오쇼>(2022 아트센터 나비)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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