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수업은 종종 정신이 아득할 때쯤 끝이 났다. 숨이 턱에 차는 게 아니라 머리 숨구멍 어디에서 터질 것 같을 때. 뇌와 신경과 근육 사이의 미세한 대화 따위는 사라진 것 같을 때. 몇 번쯤 살갗이 벗겨져 감각이 더뎌진 발바닥이 저절로 이동할 때. ‘연습은 공연처럼, 공연은 연습처럼’ 같은 비장함을 신조로 삼던 선생님들이 즐겨 하던 말은 “다시!”였다. “다시”는 반복에 기반한 몸의 훈련이었으나, 소진하는 몸은 종종 감각과 사고마저 소진시켰고, 네가 충분치 않다는 거절로 읽혔으며, 때로는 부족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였다.
찰나에 사라지는 예술이, 왜 반복의 훈련을 기반으로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른하고 일상적일 것 같은 ‘루틴’의 의미는 무용수에게는 사뭇 다르다. 피나 바우쉬의 한 무용수는 “피나는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존경심을 드러낸 바 있는데, (모두는 아니겠지만) 무용수에게 루틴이란 시시포스의 굴러떨어지는 돌과 같다. 가까스로 오늘을 완수하고 나면, 다시 내일이 리셋된다. 몸과 동작의 연마는 대칭, 반복, 경로의 역순(Reserve) 과정의 무한 반복이라, 좀 거룩하게는 스스로를 구도자나 군인으로 비유하기도 하나, 현실은 무용수들이 배드민턴이나 골프처럼 한 방향의 몸을 쓰는 운동을 하고 나면, 집에 돌아와 반대쪽을 풀어주지 않고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는 웃픈 직업병이기도 하다.
서론이 길었다. “예술교육가의 창조적 루틴”이 주제인 인터뷰에서 무용교육 활동가인 종달정(유지영, 이종현)에게 궁금한 것은 일상 속의 창조적인 습관이었다. 2019년에 만들어진 종달정은 “타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예술교육가, 창작자,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수직적인 질서 없이, 어린이와 수평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움직임을 나누는 프로젝트인 <수직에서 수평으로>, 예술가들의 지시문을 ‘수행’보다는 ‘어떻게’ ‘왜’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들과 상상하는 <봐 봐, 해 봐>, 주부(자녀를 둔 가사 전업의 여성이 아닌,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몸’이라고 종달정이 재정의한)를 위한 <무용수 되기-일상의 몸에서 춤추는 몸으로>까지, 종달정은 무용수의 창조적인 안무적 과정을 예술교육에 적용하면서, 참여자들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건강하고 평등하고 행복한 춤 추기를 위해, 스스로의 일상을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 일상의 루틴이 어떻게 창의적 습관으로 연결되는지, 시시콜콜하게 종달정의 일상을 물어보았다.
루틴, 자신의 연약함을 돌보기
요가하기, 눈뜨자마자 식물 돌보기(실온에 둔 물로, 과습 하지 않고), 식사 후에 좋아하는 음악과 술을 음미하기, 상대의 동의를 잠정 하지 않은 대화 나누기, 독서 모임 참여하기, 레시피를 앞에 두고 벗어난 창의적 요리 만들기, 자기 전에 침대 위에서 책 읽기, 혼자 조용하게 워밍업 하기, 약하다고 느끼는 신체 부위에 집중해 보기, 그다음 날 생각하지 않고 술 마실 수 있을 만큼 온전하게 쉬기, 좋아하는 식당에서 혼자 메뉴 두 개 먹기, 30분 거리의 지하철까지 걸어가기, 긴장 없는 옷을 입으려 노력하기, 베개의 높낮이를 실험해서 편안함을 찾아내기. 종달정이 각각, 그리고 함께 나누는 일상의 습관은 소소하고도 다양했다. “관리라기보다는, 그냥 좋아서요”(이종현)라는 짧은 답변으로 설명했지만, 자기 일상을 관찰하고 편안한 상태를 찾으려는 노력이 일관성 있고 집요했고, 그 예민한 ‘편안함의 추구’는 창작과 교육의 기반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지영   무용하면서 생긴 습관, 루틴이라고 한다면 몸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작업이 변하면서 제 삶도 같이 변한 것 같아요. 기존의 무용에서 추구했던 이상적인 몸이나 화려한 동작들, 그런 작업을 만들거나 출연했을 때는 계속 자신에게 억압을 줬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긴장되는 상태의 몸을 유지해야 하고, 이상적인 몸을 만들어야 하고, 몸에 부담이 가는 동작들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동작보다는 작업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작업 안에 있는 사람 자체가 편안한 상태이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중요해졌어요.
이종현   오래전부터 무용을 형태적으로 배우는 것 외에, 움직임이 어디서부터 일어나는 것인지 질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느끼는 것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보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유지영   예술교육을 하다 보니 삶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에요. 작업할 때는 삶에 거리를 두고 ‘어떤 걸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삶과 붙어있는 몸을 만나고 삶과 붙어있는 춤을 보게 되어서 뭔가 살아있는 이야기들로부터 춤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종현   무용 수업을 할 때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참여자가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요구를 받지 않아야 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서로 경험치가 다르더라도 수업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해요. 작업에서 했던 게 삶에 반영되기도 하고 삶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작업에 반영되기도 하고. 그래서 둘 사이의 균형을 잘 갖추고 싶어요.
유지영   직업상 저의 일은 항상 새로운 반복을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재미있지 않나 싶어요. 남들이 “너는 맨날 새로운 것만 하니까 좋겠다” 이런 이야기할 때 생각해보는데, 진짜 좋아요. (웃음) 난 진짜 너무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그래서 진짜 나는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 <무용수 되기>(2021 시민예술대학)
  • <봐 봐, 해 봐>(2021 관악어린이 창작 놀이터)
환경과 생명에 관심이 많았던 종달정은 3년 전부터 비건을 실천 중이다. 공감하기와 실천하기란 매일매일의 노력을 요구하는 큰 차이가 있다. 비건에 관심 있는 무용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유지영이 속해있는 무용계 페미니즘 단체인 ‘페미플로어’ 기획의 일환으로 <착취 없는 밥 먹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무용인을 위한 비건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유지영   다른 비인간 종이랄까, 인간도, 환경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사실 엄청나게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이종현   최근에는 동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요. 특히 우리가 먹기 위해서 죽이는 동물들이나 인간에 의해서 희생되는 수많은 동물에 관심을 두고 있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는 인간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 동시에 인간이라는 의미, 나라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하고, 경계가 흐려지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요.
불편함을 알아차리는 예민함에 대하여
종달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기농의 먹거리와 삶의 방식을 추앙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유기적으로 춤추며 몸을 대하고 있나 새삼 고민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로 갈음되는 사례발표의 효능 이면에, 정작 나는 얼마나 건강하게 춤추고, 내 몸을 사랑하며, 그 기쁨을 공유하는가. 좋은 예술가가 항상 좋은 예술교육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암묵적이고 찜찜한 현실을 마주해 오며, 예술교육가의 자기반성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스스로 가혹해지기 쉬운 엘리트 무용수로서의 학습과 경험의 루틴이, 예술교육 현장에서 “모두를 무용수”로 상대를 초대할 때는 어떻게 전환되었을지 궁금했다.
이종현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유지영   저희가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게 참여자거든요. 이분들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주부, 대학생, 청년처럼 생애주기나 기존 관념으로 묶이는 대상자로 말하지 않고, 어떤 대상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우리가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되게 오랜 시간 고민해요. 참여자가 쉽게 말할 수 있고, 아무 움직임이나 해도 괜찮은, 여기선 뭘 해도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편안한 상태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좀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긴장 상태는 나만 긴장하면 되는 건데, 편안해지려면 내 주변 모두가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누군가 이게 불편하지 않을까’ 이런 사소한 것들을 세심하게 신경 쓰게 돼요.
  •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2021, 사진 곽소진)
움직임 작업을 만들고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은 타인의 몸과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타인을 재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움직이고 함께 춤추게 독려할까. 직관, 감응, 소통, 연결, 감각, 호흡, 배려.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개인적으로나 어쩐지 제다이의 포스 같은 초능력 느낌이다. 누구와도 원만한 사람이 실은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예민하게 살피다 보면 자신이 소진하기도 하니까. 종달정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은 초능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유지영   소진된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게 종달정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만족감을 얻는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사람들은 이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쓸 거야” 얘기하기도 하는데, 누군가 알아차려 준다거나 편안함을 느낀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종현   삶이 어떤 일 혹은 작업 때문에 희생되지 않는 정도가 가장 좋은 속도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위해서 삶을 희생시키고 소진하면서까지 하다 보면 그걸 할 힘도 없고, 거기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기도 어렵고, 지치기 때문에 그 밸런스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유지영   아주 사소하지만 누군가가 불편해하는 걸 잘 감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움직임 수업이니까 원치 않는 접촉이 발생한다거나, 오늘은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이 자리에 왔을 수도 있잖아요. 참여자가 지금 어떤 기분이고, 어떤 몸 상태이고, 어떤 게 불편할까 같은 것을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요.
이종현   저는 몸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들을 때 몸이 확 전환되더라고요. 해부학적인 단어도 아니고 꼭 언어일 필요도 없는 표현들에 기분이 좋아지고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촉수를 뻗어 상대의 불편함을 감지하기. 생산을 위해 일상을 희생시키지 않기. 자기 속도로 나아가기. 사람과 동물과 환경을 위계 없이 바라보기. 시적인 마음으로 춤추는 몸을 응원하기. 식물을 돌보고 비건의 생활을 선택하고 몸의 시간에 귀 기울이며 키워가는 종달정의 예민함은 내면과 외부 사이에서 빚어진 불편함을 중재하면서 생명에 대한 예의를 온몸으로 보내고 있다. (여전히 비건에 대해 “난 고기 먹으러 갈 건데”라는 비아냥이나 춤을 아름다운 몸짓 정도로 보는 시각과 맞서야 하지만) ‘예민함’을 사회에 어울리기 위해 내색하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나 MZ세대의 이기적인 기벽 정도로 바라보는 왜곡을, 아찔하고 부드럽게 넘어서면서 말이다. 평등과 배려로 가는 길은 언제나 예민하게 불편함을 감지하고 맞선 이들 덕분이 아니었던가. 마지막으로 이 여정을 함께 하는 종달정은 서로에게 어떤 루틴일까 궁금했다.
이종현   음. 지영은 거대한 산 같아요. 거대한 산이 옆에 든든하게 이렇게 우뚝 서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지영   종현이 춤출 때 자유롭게 척추가 없는 것처럼 추는데, 되게 아름답고 엄청 우아하거든요. 뭐라 해야 하지, 아, 해파리처럼요.
유지영·이종현 종달정

유지영·이종현 종달정

안무가 유지영, 이종현으로 구성된 예술교육 프로젝트 그룹. 예술로 가능한 만남을 공연 매체를 넘어 확장하고자 시작했다. 타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각자가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참여자를 만나고 있다. 매체의 정의가 불분명해지고 다변화되는 동시대 예술에서 종달정의 작업 또한 무용에 국한하지 않고 다방면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무용수 되기-일상의 몸에서 춤추는 몸으로>(2021, 시민예술대학), <수직에서 수평으로>(2019,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예술로 놀이터’), <봐 봐, 해 봐>(2020-2021, 관악어린이 창작 놀이터 ‘예술로 놀이터’) 등을 진행했다.
▸인스타그램 @jongdarjung_project
▸「무용인을 위한 비건 가이드북」 (다운로드)
제환정
제환정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다. 예술교육자, 창작자, 저자로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 [아르떼 365] 편집위원.
jaehj07@gmail.com
사진·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종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