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시대다. 개인의 여가생활부터 가족사, 마을, 지역, 국가 단위 기록까지 기록의 대상과 가치는 더없이 넓고 깊어졌다. 기록을 모으는 아카이빙 역시 지난 기록을 수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을 실시간으로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바로 공유할 수 있다. 과거의 기록을 새롭게 하고, 오늘을 기록하는 다양한 아카이브를 소개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면서 2021년 경제활동 인구 기준으로 1인당 택배 이용량은 연간 128.2박스, 주 2.5회(「한국의 사회동향 2022」, 통계청)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생활 패턴의 변화와 함께 환경문제, 기후위기는 이제 개인의 삶,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트위터 계정 ‘기후위기 아카이브’(@envsha)는 국내외 기후위기와 관련한 재난, 행동, 연구 결과, 기사 등을 기록한다. 국내외 뉴스뿐 아니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연구자료, 리포트에 담긴 그래프 등 변화와 문제를 쉽게, 한눈에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공유한다. 약 1만 8000팔로워를 가진 ‘기후위기 아카이브’는 개인이 운영하는 계정이다. 계정 운영자가 기록을 시작한 계기는 호주에서 일어났던 산불 때문이었다. 코알라를 비롯한 야생동물 30억 마리가 죽었다는 등의 산불 피해 기사를 보고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2019년부터 시작했다. (경향신문, 2022.6.17.)
‘환경아카이브 풀숲’(ecoarchive.org)은 정부나 학계 자료가 아닌 지난 30년의 주요 환경단체 기록물을 중심으로 구축된 아카이브이다. 문서부터 이미지,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볼 수 있다. 환경단체별, 연도별, 기록물 유형별로 자료를 살펴보면, 해당 연도에 환경단체에서 주목한 환경 이슈와 활동, 환경교육 내용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환경단체에서 진행한 환경교육 관련 자료들은 당시 어떤 주제와 교육활동으로 환경교육이 진행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왼쪽) 첫 번째 공해추방운동 연합 – 어린이 환경 학교(환경교육센터, 1992)
우리 학교의 습지 그리고 운동장의 식물들(생태보전시민모임, 2009)
[출처] 환경아카이브 풀숲
환경재단 ‘그린아카이브’(sieff.kr/green-archive)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운영하는 환경영상자료원이다. 2004년 이후 매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영화는 물론 국내외에서 제작된 우수 환경영상콘텐츠를 선별해 상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동물/자연/생태계, 물/해양자원, 쓰레기/플라스틱, 기후변화/인류, 농축산업/식량/로컬운동, 탈핵/환경재해 등 4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작품은 영화제가 끝나는 6월 이후부터 공동체 상영에 한해 열람, 대여가 가능하다.
‘성평등 아카이브’(genderarchive.or.kr)는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변화과정을 기록·보전·공유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다. 활동사례집, 회의자료, 포스터, 소식지, 박물류, 메시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성평등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아카이브가 그렇듯 익숙하지 않은 문서와 정보를 검색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성평등 아카이브는 ‘e-전시’를 통해 성평등 관점에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시민이 기증한 기록과 자료를 재구성하여 온라인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데이트 폭력 현황과 대응 정책’ ‘코로나 이후의 세계, 여성 주도의 회복 전략’ ‘호주제 폐지’ ‘한국 여성운동 타임라인’ 등을 주제로 자료와 정보를 재구성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여성서사 아카이브 ‘플랫’(khan.co.kr/flat)은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모여있다. [경향신문]에서 제작·운영하는 ‘플랫’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때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변이 아닌 중심에 둔다’. ‘출근하는 여자들’ ‘여자야구’ ‘n번방 그 후’ 등 기존 경향신문 기사부터 플랫팀 기획기사까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기록(기사)을 볼 수 있다.
‘PCS(Perform Collection System)’는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퍼포먼스 작품을 가상으로 소장한다. 총 31개 작품이 소장(기록)되어 있는 PCS는 동시대 퍼포먼스의 수집, 소장 방식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작품 참여작가들과 연구자들이 질문을 주고받거나 퍼포먼스를 함께 재현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기존 소장품 시스템이 아닌 작품으로부터 구조를 쌓아 올려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작품의 기본정보와 함께 재연방식, 필요장치, 관객과 퍼포머의 역할 등 작품에 따라 퍼포먼스 실현에 필요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PCS는 ‘퍼포먼스를 비롯한 형태가 없는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 교환의 방식을 실험하고 제안’하는 플랫폼 퍼폼(PERFORM)에서 볼 수 있다.
  • PCS(퍼폼 컬렉션 시스템)
    [출처] PERFORM
물건 하나, 사진 한 장에도 많은 기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용하지 않지만, 열어보지 않지만 버리지 않는, 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억과 기록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는 나와 가족 등 우리를 완성하는 중요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일회용품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식기를 대여/수거하는 서비스로 재사용을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함부로 버리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21년 개최한 나의 오래된 반려품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반려품과 그 추억을 수집해 ‘나의 오래된 반려품 아카이브’로 전시했다. 곰 인형, 재봉틀, 동화책, 우산 등 36점의 반려품은 저마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제보자가 작성한 소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아카이브 ‘다섯숟가락’은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다. ‘다섯숟가락’에는 아카이브 운영자 가족의 32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부모님이 사용했던 필름 카메라부터 가족의 사진, 사진에 적힌 메모까지 총 120건의 기록물이 담겨 있다. 아카이브는 이사하는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낡은 앨범”에서 시작되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할머니께 이야기를 듣다 “나의 현재를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찾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운영자 정혜민 씨는 “가족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만나는 최초의 공동체이자 정체성”이라며, “기록으로 가족의 일상을 톺아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기술의 발달과 보편화로 이제 누구나 손안에 핸드폰 하나로 글, 그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장소에 잠들어 있는 기록은 그저 데이터일 뿐이다. 낡은 앨범을 손으로 넘기며 가족의 역사로 다시 태어난 ‘다섯숟가락’처럼 잠들어 있는 데이터를 나의 손길과 이야기로 정돈해보자. 기록이 새로운 역사로, 나의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