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환을 꿈꾸며 농촌으로 이주해 유기재배 농사를 짓고 있다. 30년 가까이 도시에서 살았지만, 시골 논밭을 뛰어놀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 덕분인지 아스팔트 위 네모반듯한 건물은 어딘가 모르게 숨이 막혔다.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의 생활 속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것들을 입고 쓰고 소비하며 때때로 깊은 단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럭저럭 엑셀 함수와 컴퓨터는 다룰 줄 알았지만, 정작 삶의 기술은 하나 둘 잃어간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 비로소 ‘전환’을 떠올리게 됐다. 자연을 가까이하기 위해 농촌에 살고자 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맹랑한 생각을 했다. 가급적 지구에 덜 해로운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 일회용 멀칭 비닐과 화학비료, 농약 없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매일 밭에 나가 풀과 씨름했고 가뭄과 폭염의 얼굴을 한 기후 위기와 씨름했다. 이주한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논이라곤 산골짜기 다랑이 전부이다 보니 빗물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천수답에서 작년에는 무려 한 달 가까이 모내기를 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채로 농사짓는 일은 녹록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위기의 시대 농민을 자처한 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길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이다.
별안간 농촌의 쓰레기들을 출세시킨 이유
“쓰레기들이 출세를 했다고요?”
“네, 出(나올 출), 世(세상 세), 말 그대로 농촌의 쓰레기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회용 멀칭 비닐, 화학비료,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3년 차 초보 농부가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다. 나는 비닐을 사용하지 않지만 밭일을 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비닐 조각을 만나게 된다. 시선을 돌려 주위 논밭을 살펴보니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농사에 사용하고 버려진 자재나 농약, 또 농사를 지으며 먹고 마신 쓰레기들이었다. 혼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사다가 치워도 보고, ‘잘 썼으면 제대로 버려야 할 것 아니야!’ 화도 내보고 지치기를 반복하다 일상이 된 쓰레기들 앞에 무뎌진 스스로를 보며 놀라던 어느 날. 문득 ‘이 쓰레기들로 재미난 꿍꿍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문제로만 바라보기엔 너무 지쳐서였을 수도 있고, 농촌에 살면서 내 안에 깃든 창조성을 마주한 덕분이기도 했다.
쓰레기로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던 중, 많은 사람이 바다 쓰레기나 미세플라스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농촌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은 새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농촌을 좋아해 자주 찾았던 나 역시도 이곳에 살기 전까지는 그저 ‘공기 좋고 자연 좋고’ 정도로 농촌을 소비해왔으니 말이다. 또 우리가 매체에서 접한 농촌, 농부의 대체적인 모습도 풍요로운 들판에 환하게 웃으며 농작물을 들고 있는 모습 아니던가.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쓰레기와 농촌의 문제는 어째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농산물을 구매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농촌 쓰레기의 존재를 먼저 세상에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바다 쓰레기 문제를 알게 된 뒤 바다를 깨끗하게 정화하려는 노력과 관심, 행동이 이어지는 것처럼 농촌의 쓰레기 문제도 먼저 아는 것에서부터 그 행동과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 <쓰레기와의 결혼>
  • <병(甁)이 병(病)이 되고>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이 쓰레기들
농촌 쓰레기로 꿍꿍이를 벌여 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논밭으로 나가 쓰레기를 찾아 사진을 찍고 줍는 일이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첫날, 논밭에 나뒹구는 ‘그라목손’ 농약병을 주웠다. 하도 독성이 강해 과거 음독자살에 많이 쓰였다는 악명높은 농약이었다. 그 유해성 때문에 이미 2012년에 그라목손의 생산·판매·보관·사용이 전면 금지됐음에도 여전히 회수되지 않은 농약이 농촌에서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었다. 혹은 10년 전의 쓰레기가 여전히 논밭을 떠나지 못하고 지박령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라목손같이 주목할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작품에 쓰일 소재는 풍부했다. 쓰레기는 농촌의 논, 밭, 하천, 땅속, 나뭇가지 사이, 전봇대 등 그 어디에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쓰레기를 줍지 못하고 선택적으로 주워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주운 쓰레기를 포대 한가득 짊어지고 집에 들어와서는 이리저리 몸에 대어 보며 상상의 색실로 꿰어 바느질했다.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쓰레기로 살을 붙여 쓰레기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한 ‘사람’ 모습을 한 조형물을 만들기도 하고, 사진 촬영을 위해 물속에 잠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당의 풀은 안 매고 쓰레기를 주워 온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수군거림이 귀에 들릴 때쯤 순천의 작은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 사실 예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예술’이라 이름 붙인 창작 활동도 이번이 처음이라 작품을 설치하는 순간까지도 ‘이 마음이 잘 전해질까’ 하는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나가는 이들의 소감과 표정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 <김+밥 이 아니라 비닐+밥>
  • 《출세한 쓰레기들》
결국에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전시 감상평의 대부분은 ‘농촌의 쓰레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였다. 그중에는 농촌의 쓰레기 문제에 더 관심 갖고 지켜보며 소비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농촌의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농민만의 문제도, 탓도 아니다. 농촌의 여러 쓰레기와 농약, 바스러진 미세플라스틱이 결국 흙으로, 하천으로 돌아가 작물이 되고, 우리가 마실 물이 되어 나에게로, 또 밥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누군가는 키우고, 또 누군가는 소비하여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며 우리 땅과 지구에 작은 부분을 책임지는 농사와 소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상의 위태로움 속에 비로소 전환을 떠올릴 수 있었듯이 자명한 기후 위기 앞에 크고 작은 전환의 계기를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넘어 물질문명의 전환, 우리 체제의 전환, 생명사회로의 전환을 함께 꿈꾸고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한진희
한진희
농촌으로 이주해 맹랑하게 농사를 짓고 사는 녹색당원. ‘논밭암시랑토’라는 이름으로 유기재배 농사를 짓고 소멸에 저항하며 지역에서 꿍꿍이를 부리는 프로 수작러(사부작러)이기도 하다. 논밭에서 기후 위기를 경험한 2022년엔 농촌 쓰레기를 모아 출세시킨 《출세한 쓰레기들》 展(전)을 기획했다. 전시 문의를 대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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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한 쓰레기들》 온라인 전시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