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낙엽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바람과 함께 굴러다니기도 한다. 나뭇잎의 떨어짐을 천천히 느끼며 거리를 걷다 보면 보이지 않는 리듬이 느껴진다. 느닷없이 춤을 추고 싶어 여러 번 길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떨어진 낙엽을 유심히 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길 위의 낙엽 하나에서 다양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들이 모두 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낙엽은 이렇게 나의 일상 안으로 갑자기 찾아와 다양한 생각과 영감을 준다.
  • <ONE DAY>(2019)
    성북문화재단 문인사기획전 신동엽 ≪때는 와요≫ 참여작
다양함을 만나는 – 낙엽
낙엽을 통해 촉발된 다양한 상상은 작업으로 다시 이어진다. <ONE DAY>는 신동엽 시인이 살아생전 실제로 걸었을 서울 성북구의 길을 걸으며 주운 낙엽으로 만든 작품이다. 신동엽 시인의 작업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의 삶이 궁금했다. 시인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민중의 역사가 서린 대자연의 풍경과 그가 고민했을 당시의 엄혹했던 정치·사회적 상황들을 생각하며, 세계지도의 형상을 낙엽의 그림자로 표현하였다. 서로 다른 낙엽의 조각들이 모여 일정한 형태가 만들어지고 그림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다양한 낙엽처럼 사람도 각자 다르며 각자만의 존재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예술 작업과 더불어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누군가를 만나 알아가는 과정이다. 낙엽의 다양한 모양처럼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개별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예술로 소통하는 만남의 장이라 생각한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통한 사람과의 만남이 다양한 그림자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나는 낙엽을 통해 그 즐거운 상상을 한다.
  • <자연 조각들의 연주>(2022)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참여작
  • <의자이야기와 의자사진 교환 프로젝트>
    의자프로젝트 의자 사진 300개 (관객참여, 2019~2021)
    은평문화예술회관 ≪우리 시대가 왔다.≫ 문해주 초대작
빈틈을 연결하는 – 의자
길에서 만나는 사물 중에서 유독 의자가 나에게 말을 걸 때가 많다. 여러 지역을 다닐 때마다 거리의 의자를 보며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모습을 상상한다. 평소에 길을 잘 헤매고 다니며, 매일 가던 길이 아닌 길을 걷는 것을 즐긴다. 우연히 마주한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의자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일상 안에서 그때그때 마다 보이는 의자를 기록하다 보니 벌써 300여 개의 의자 사진과 의자의 정확한 위치를 구글 지도로 만들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특히 버려지거나 방치된 의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망가지거나 부서진 의자 조각들을 새롭게 합쳐서 또 다른 의자가 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의자의 조각들이 만나 누군가 앉을 수 있는 것을 통해 우리 사회 속 서로 다른 존재가 모여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장애’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서로 다른 나무 의자 조각처럼 하나하나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서로의 다름과 서로의 빈틈을 연결하는 과정을 나의 작업을 통해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통해 배우고 알아가는 중이다.
  • 수업 전 올려다본 하늘
  • 피터팬클럽 미술창작자와 함께
나를 마주하는 – 하늘
마지막으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곤 하는 하늘 또한 내가 길 위에서 주목하는 것 중의 하나다. 하늘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 그 순간을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모양과 색감을 가지는지 모른 채 지나쳐버리고 만다. 내가 마주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이러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나는 현재 은평에서 ‘피터팬클럽’ 발달장애 아동 청소년 및 학부모와 함께 예술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그들과 함께 예술로 놀고 있다는 것을 요즘 몸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더 잘 들여다보게 되었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나는 하늘을 본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비우고 다시 만날까?’를 생각하며.
10년 동안 예술 작업과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면서 나는 작업실이 없었다. 최대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자연스럽게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나로부터 출발한 질문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고 중요했다. 일상 안에서 만나는 것들, 낙엽, 버려지고 방치된 의자들. 지금 내가 서 있는 하늘은 나에게 지역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그런 만남을 기대한다.
문해주(월광)
문해주(월광)
사람과 사물 주변에 함께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낸다. 개인의 숨겨진 역사성과 보이지 않는 관계를 영상설치와 조형 작업으로 시각화하며 참여 가능한 예술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포함한 여러 차별적 경계 사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고민 속에서 예술 작업 및 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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