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전 생애에 걸친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한 충분한 통찰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이 연구가 시작되었다. 급속히 발전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어르신들의 삶의 지식과 경험의 가치가 퇴색되고, 역할 또한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노년’이라는 명칭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삶의 역사를 퇴색되었다는 이유로, 지나간 기억으로 치부하기엔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이 너무도 크다. 이들의 삶이 그 시대의 발전 동력으로써, 희생의 연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는 깊이 있는 고찰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삶을 들여다보는 예술적 체험
오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이미 ‘노인’에 대한 이해가 높고, 누구보다 높은 질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 그러나 이러한 오만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음악자서전’으로 정리하여 삶을 통합시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곧 수많은 좌절을 안겨주었다. 회차마다 ‘음악’만을 사용하여 어르신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이에 사진 및 영상 활용, 과거에 있었던 대표적 사건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였고 수업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이때였다. 아, 뭔가 변화가 필요하구나 느낀 것은.
변화의 시작은 ‘2022 찾아가는 예술처방전’(치매안심센터 협력) 사업이었다. 음악치료사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섭외하였다. 치료나 교육 안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예술적 체험을 회상의 장치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연극,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매개로 참여자들의 회상을 끌어내었고, 그 중 ‘떠나보낸 것들’의 주제로 진행한 즉흥 창작극 <엄마의 의자>는 나의 문화예술교육 인생에 있어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엄마 :
네가 혹시라도 나한테 하고 싶은데 못한 얘기가 있으면, 지금 이야기해도 괜찮다.
참가자 A :
엄마가 아팠을 때, 엄마의 변을 받아낼 수 없었어요, 나중에 아픈 아들의 변을 받고 있는 내 모습에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면서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엄마 사랑합니다..
참가자 B :
하아… 할 말 다 할라 하면… 열 밤을 새고, 열 날을 지내고 다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있으면, 먹고 싶은 거… 한번만 딱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어요, 엄마.
– 즉흥 창작극 <엄마의 의자> 中
  • 엄마의 의자
  •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애썼다, 장하다, 고맙다
2022 창작 실험 프로젝트 <그해 봄날, 기억의 숲을 거닐다>는 매개로 사용하는 다양한 예술 장르(음악, 인문학(그림책), 미술, 연극)의 장치들이 있고, 그 장치들은 어르신들의 삶의 기억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통로의 역할을 했다. 그 이후 펼쳐진 이야기들과 구성은 어르신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떤 예술적 장치들의 기술적 습득 또는 기법의 전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조력자의 역할로 어르신에 대한 이해와 순간순간의 노련한 대응이 필요할 뿐이다. ‘제일 작은 손’ ‘서글픈 손’ ‘삶의 지혜가 앉은 손’ ‘통통한 손’ ‘지문이 없는 손’ ‘손톱이 삐뚤한 손’…. 어르신들의 손과 그 주름에는 삶의 중요한 순간, 인생 굴곡이 모두 담겨 있다. 2022 창작 실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손’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인문학+그림책)에서는 가장 먼저 손, 주름, 인생과 관련된 그림책을 탐색하면서 삶에서 새겨진 주름의 의미를 찾고, 주름 하나하나가 단순한 노화가 아닌 다양한 삶의 기억과 연륜을 의미한다는 것을 찾아간다. ‘손 캐스팅 작업(미술)은 나의 손을 석고로 만들어보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열심히 살아온 나의 손과 인생을 마주하는 활동이다. 생각보다 세세한 주름과 흉터, 지문까지 나타나 또 다른 객체로써 나의 손을 마주하였을 때 느끼는 감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나를 노래하다’(음악+연극)는 나의 인생, 그리고 내 손을 위한 즉흥 창작곡을 만들어 부르는 활동 안에서, 내 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즉흥적으로, 대사의 느낌으로 풀어내는 경험을 제공한다. 참여자들은 즉흥 내레이션 부분에서 “고생 많았다, 애썼다/나의 인생에 함께해주어 너무 고맙다/고단한 것을 잘 견뎌주어서 너무 장하다/조그만 손으로 많은 일을 했구나, 고맙다”며 나의 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진심을 담아 전달할 수 있었다.
현시대의 노인들은 대한민국의 급속한 발전을 함께 이루어 낸 세대들이다. 그 어느 세대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주변을 위한 희생이 먼저였다. 60~80년 평생의 끝자락에 와서야 이제 겨우 나를 위한, 나를 돌아보는 삶을 조금이나마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다시 젊어지기보다는 이제 겨우 나를 위한 시간들을 갖게 되었고, 나를 위한 배움의 길에 서 있는 지금, 현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이야기하신다. 자신의 삶과 오늘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제껏 잘 살아왔다고 수고했다고 토닥이며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풀어내는 과정을 담았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참여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행복감과 자존감’을 향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리도 융합에서의 더 많은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음악이라는 장르에만 빠져있던 나에게, 각 문화예술 장르 별로 효과성을 유도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를 수 있고, ‘융합’하였을 때 더 깊이 있는 경험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정미
이정미
학부에서 성악을, 석사과정에서 음악치료 학문을 공부하였다. 문화예술교육사 9년차며, 샛별로 떠오르는 문화예술치유단체 쎄라비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과 음악치료를 융합한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교육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ceravie2019@gmail.com
인스타그램 @ceravie2017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