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주던 작은 방
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 151-38. 방이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1978년 완공된 이 공간은 오랜 시간 동안 순천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노동자들이 장기 숙박을 하던 여인숙이었다. 철도산업의 변천과 시설 노후로 인해 수요가 점차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을 종료하였다. 비교적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지만, 전혀 관리되지 않은 이곳에 2019년 작은 책방을 열었다. 여러 개의 쪽방 벽을 헐고 방과 방을 연결했다. 창고와 화장실을 털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각자 다른 이야기와 사연이 있던 ‘빌려주던 작은 방’은 이야기가 모이고 나뉘는 ‘이야기방’이 되었다.
2016년, 순천역 앞 시장 골목 열세 평 남짓한 공간에서 처음 책방을 열었다. 돼지머리 고기와 국밥을 팔던 곳이라고 했다. 앞집에는 팥죽 가게가 있고, 매일 오전에만 양말을 판매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거리에는 고기를 삶는 냄새가 자주 났고, 명절이면 종일 참기름 내리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동네였다. 때로는 얼큰하게 취하신 어른들의 고성방가가 오가는 곳에 책방이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의 과거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작은 쉼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순천 동천 둑길 옆 이야기방에서 사람들에게 책으로 위로를 건네고, 꿈을 배 불린다.
일상 여행가의 방
여행자의 가방은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때로는 그 가방이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해외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큰 트렁크에 짐을 들고 오는 사람, 그저 단출한 차림에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멘 사람.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구나, 일부러 여행길에 이 작은 서점에 들러 주었구나. 반갑고, 감사할 뿐이다. 쉬어가는 시간에 책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여행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있던 곳을 잠시 떠나왔으니 새로운 감각이 채워질 것이다. 책 한 권이 그 감각들이 잊히지 않고 오래 유지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란 걸 믿는다. 책방심다엔 언제나 여행자들이 많다.
하지만 꼭 어디론가 떠나야만 여행은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찾고, 적극적으로 삶의 밭을 일구며, 여러 감각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상 여행가 혹은 일상 예술가들이 우리 책방을 찾는다. 책방심다에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책 한 권을 골라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독립출판물, 시집, 에세이, 소설, 그림책 등등.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 내게 필요한 책 한 권. 그 책을 함께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람들의 여행 가방이 제각각인 것처럼 책 읽는 사람들의 책장의 풍경도 더욱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책 추천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만 책방심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 독립출판씨앗학교
  • 주말 저녁 와온해변에서 여는 이동형 와온책방
씨앗을 심는 방
독립출판물. 책방을 열게 된 건 순전히 독립출판물이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책을 만들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었다. 형식의 자유로움에 놀랐고 작은 이야기 속 사람들이 좋았다. 책 속에는 할머니의 요리 비법이 있었고, 오래된 동네 풍경이 있었다. 일기장 속 이야기 같은 것도. 시장성이 없어 만들 수 없는 전문 서적까지. 독립출판 영역에선 모두 허락되었다. 하지만 독립출판물 판매는 쉽지 않았다. “이것도 책이라고요?” 숱한 질문과 의심의 눈초리가 책방에서 오갔다.
그래서 시작했다. 독립출판물이 우리 지역에서도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책으로 존중받고자 말이다. 함께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보자고. 이런 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독립출판씨앗학교’와 ‘순천아트북페어-자란다’라는 독립출판 워크숍과 축제가 만들어졌다. 2018년 시작한 이 두 프로젝트를 위해 지역 청년들과 함께 매년 책 농사를 지었다.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글을 쓰고, 서로서로 도와 프로그램을 배웠다. 지난 5년 동안, 50여 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책을 만들었다. 300여 팀의 창작자가 순천으로 찾아왔고, 독립출판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책방심다의 추천 : 『전라도닷컴』 『할머니의 요리책』
전라도닷컴

책방심다에는 ‘바다책빵’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있다. 요즘 우리는 이 방에서 다양한 지역 콘텐츠를 연구하고 제작한다. 특히 내가 발 딛고 있는 순천의 사람, 생태, 환경, 식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바로 『전라도닷컴』. 2000년 10월 인터넷 웹진으로 출발해 2002년 3월 월간 잡지를 창간했고 2018년 200호를 만든 역사적인 지역 잡지이다. 사람들의 삶과 전통에서 오늘이 아니면 기록하지 못할 전라도 문화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할머니의 요리책』
바다책빵에서 애정하는 또 한 권의 책은 독립출판물로 출간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재출간된 『할머니의 요리책』이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밥을 먹으며 자란 손녀가 할머니와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추억 책이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의 삐뚤빼뚤 손글씨와 손녀의 손 그림이 어우러진 책. 사랑으로 가득 차 배부른 이 책을 당신에게 건네고 싶다.
김주은
김주은
사진과 교육학을 공부했고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일을 했다. 순천역 인근 오래된 여인숙을 고쳐 만든 책방에서 콘텐츠 기획과 서점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주말 해 질 무렵 바닷가에서 이동서점 ‘와온책방’을 연다.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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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
책 이미지 제공_전라도닷컴,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