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교육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십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전통예술교육을 받아 왔고, 직접 교육을 하고 있으니 예술교육이나 전통예술교육의 필요성은 매우 잘 알고 있다. 예술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예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충돌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스스로 만든 것이든 타인에 의한 것이든 충돌의 경험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왜 예술교육이 필요해요? 지금 이 시대에 전통예술이 왜 필요해요? 지금 그러한 교육이 이 시간에 필요한가요?” 예술교육가라면 이처럼 가슴 철렁한 말들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육의 현장이 공교육이면 더욱 그러지 않을까?
나는 우리가 하는 교육이 공교육인지 사교육인지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교육가인 우리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에서 길러졌다. 하지만 지금 나의 포지션은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가이고 음악이라는 교과 안의 전통 음악이라는 세부 분야에 포함된다. 나의 방식으로 또는 내가 배웠던 방식으로 교육을 펼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학교’라는 장소가 주는 목적과 의미가 있고, 집단 교육이라는 점 그리고 교과교육이라는 제한된 틀이 있으며 담당교사의 니즈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협력 수업을 위해 교사가 생각하는 음악교육의 목적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주로 고등학교 수업을 해왔다. 각 학교마다 교과과정에 충실해 달라, 무조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달라 또는 새로운 수업을 해달라는 등의 요구들이 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수업’이지만, 예술교육가로서 제일 재미있는 수업이기도 하다. 새로운 수업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고민과 과정이 따르는데, 우선 교과서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후 국악 분야를 추출하여 정리하고 관련이 있는 부분을 묶어 카테고리화한다. 그리고 국악을 바탕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슈와 어떻게 묶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때 염두에 둘 부분은 ‘어떻게 전통예술을 고루하다고 느끼지 않게 가장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이다. 거기에 욕심을 조금 더하자면 1,2년 후 성인이 될 학생들에게 전통음악과 전통예술이 어떠한 형태로 그들 안에 남을지까지 고민하게 되면 점점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힙합, 발라드처럼 친근한 장르로
고등학생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민요와 장구 장단 혹은 악기 등을 이미 연주하고 가창하는 등의 실기 활동을 꽤 오랜 시간 동안 해 왔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더 심화된 방식으로 민요를 가창하거나 연주하는 수업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곧 성인이 될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국악을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수업이 ‘국악 기획사 프로젝트’다. 이 수업은 국악이라는 장르가 멀리 두고 지켜야 하는 문화재가 아닌 현재에도 새로운 얼굴로 변모하며 진행 중이며 당장이라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학생들의 진로와 연관 지어 팀을 구성하고 국악 전문 기획사를 세운다는 가정하에 수업을 진행하였다. 처음 수업을 안내할 때 학생들의 반응은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사장이나 비서와 같은 명칭을 서로 부여하며 흥미로워한다. 반면 생소한 국악 가수를 캐스팅하여 자신들의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하니 난감해하기도 한다.

가상의 국악 기획사를 만든 팀원들의 진로와 연관 지어 주제를 정하고 국악 가수를 서칭하며 마음에 드는 가수를 캐스팅한다. 이때 학생들의 의견이 가장 분분했다. 대부분 힙합이나 발라드 같은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고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극소수다. 하지만 국악이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도 취향이 나뉘는 것을 보며 국악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판소리의 애절하고 거친 보이스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퓨전이나 현대적인 연주곡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고 예상 밖으로 아주 전통적인 명창들의 소리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다음은 기획사의 색깔이나 공연의 기획의도에 맞는 곡을 선곡하고 포스터를 제작한다. 포스터를 제작할 때는 미술 과목과 연계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일이다. 포스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정보와 여러 포스터를 예로 보여주면 지금까지 힐끗 보고 넘겼던 공연 포스터에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들의 포스터에 무엇을 담을지 고심하며 하나의 공연이나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어서 팀원들의 진로와 취향이 담긴 공연을 발표하고 함께 곡을 감상한다. 최종적으로 팀끼리 총평을 하며 피드백을 하고 팀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을 토대로 팀원들끼리 상호 평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미디어에서 많이 접한 음악과는 조금 먼 국악을 많이 듣게 된다. 또한 국악 가수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국악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찾아가게 된다. 공연 기획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발표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국악을 새로운 형태로 즐기면서 친숙해진다.이 수업을 4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학생들이 음악을 고르거나 발표하는 내용이 매년 향상되고 있다. 포스터 제작 역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등 트렌드를 익히고 사용하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연관 지어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나 공연을 만들어 낼 때, 또는 최근의 사회적 이슈를 전통음악이라는 장르에 녹여내고 토의하며 생각을 나누는 순간, 가까운 미래에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이와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내 머릿속에 겹쳐지며 깊은 감명을 느낀다.
익숙한 기술로 나의 이야기로
올해 2년 차로 진행하고 있는 ‘예술로 탐구생활’에서는 누구나 즐겼던 ‘민요’를 통해 음악의 본질에 집중했다. 민요는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은 일반 대중이 창작하고 즐겼던 음악인데 과거의 음악이 지금 시대에도 공감대를 얻어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민요를 만들어 즐기는 문화적 DNA가 우리 속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옛 민요를 새롭게 재탄생하고 기술과 영상이라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변모할 민요의 모습을 인공지능과 가상 현실의 3D 모델링, 공간형 메타 사운드 등 메타버스 세계에 적합한 형태로 미래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해 보며 예술의 미래적 형태를 구체화해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먼저 광주과학기술원 문화기술연구소에서 새로운 형태의 놀이를 할 수 있는 디지털 가야금을 만드는 연구에 참여하며 알게 된 증강현실(AR) 회사를 설득했다. IT 기술을 판매하는 회사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공익사업으로 전환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었다. 우리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고 무엇을 얻어 갈 것인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먼저 학생들의 AR 기술에 대한 이해와 사용 빈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스냅챗, 인스타그램, 포켓몬고 등 실제 AR 기술을 알게 모르게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이용하고 있는 앱에 접목되어 있는 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활용법을 제시하였다. 그다음 팀을 구성하여 서로의 얼굴에 AR을 입혀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들며 기술과 친숙하게 했다.
그다음 민요라는 주제를 제시하였다. 작년에는 나의 삶을 표현하는 아리랑을 기획하고, 현대의 기술로 미래의 아리랑을 표현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사에 담았다. 그 가사를 영상에 어떤 장면으로 녹이고 어떤 부분에 AR을 활용한 영상을 삽입할지 구체화하는 스토리보드를 작성했다. 올해는 한층 더 발전하여 크로마키 작업도 하였는데 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배경과 세트장 등을 미리 제작했다. 자신들이 만든 배경에 직접 촬영한 영상을 크로마키 편집한 것이다.

크로마키 작업은 참여 교사가 함께 해주었다. 학교 내에 크로마키 가능한 스튜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초록색 부직포를 동아리실 전면 거울에 붙였는데, 촬영 중 부직포가 자꾸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학생들이 협동심을 발휘하여 돌아가며 잡아주고 힘겹지만 즐겁게 작업하였다. 음악은 무료 제공된 음원을 사용하거나 직접 음악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현대적인 민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만큼 아리랑 비트에 랩을 얹은 민요나 내레이션이 추가된 민요도 탄생했다. 팀원끼리 역할을 나누어 일을 진행하는 과정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각자의 장점이나 성향에 따라 춤, 연기, 노래, 촬영, 편집, 기획 등으로 팀원들의 역할을 나누고 진행하는 등 프로다운 모습도 보여줬다. 그중 매일 학교와 집 또는 학원을 오가는 게 전부인 일상이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학창 시절을 즐기고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영상에 담았던 ‘snow blossom’ 팀이 기억에 남는다.

이 프로젝트를 경험한 학생들은 수 세기 동안 내려온 전통이라는 DNA를 통해 본인의 내면을 인지하고 단단하게 스스로를 알아가며 앞으로 닥칠 고도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당황하지 않고 적응하며 삶을 탐구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와 함께 했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 국악을 한 곡이라도 넣어둔다면 나의 문화예술교육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현대 기술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아리랑 영상 <눈꽃(雪花)>
    [출처] 필자 유튜브
정설화
정설화
학부로 국악을 전공하고 석사로 음악교육을 공부하였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사 14년 차이자 시립단체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의 아이들과 새터민 아이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반쪽의 유산>에 참여했으며, 광주과학기술원 문화기술연구소에서 디지털 가야금 제작에 참여했다. 광주영어방송(GFN)에서 5년 동안 국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현재는 ‘예술로 탐구생활’과 같은 전통문화와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교육에 재미를 두고 있다.
tjfghk6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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