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국가의 문화예술교육은 사회, 경제, 문화적 맥락과 정책적 환경에 따라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방향과 실행도 변화해왔다. 특히 최근 팬데믹의 위기는 문화예술교육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이번 “변화에 대응하는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에서는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이 변하지 않는 기본 원칙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은 1959년 문화부 창설 이후, 변하지 않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기조인 ‘문화 민주화’ 실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문화부 창설 직후 ‘가능한 많은 프랑스인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문화 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3년 문화부 장관 자크랑(Jack Lang)과 교육부 장관 알랭 사바리(Alain Savary)는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협약을 맺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2000년 문화예술 5개년 계획과 2005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계획을 추진하며,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민주적이고 광범위하게 교육을 보장할 수 있는 공교육, 즉 학교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변화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출처] 동틀-파리,문화예술교육 현장에 가다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의 첫 번째 기본 원칙은 학습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보장하기 위한 지식, 실습, 만남(작품과의 만남, 문화예술 장소 방문, 문화예술 전문가와의 만남 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의 문화적 역량을 풍부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예술가와 작품과의 만남, 문화예술 장소의 빈번한 방문, 문화예술 실습을 문화예술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외부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은 학생들이 습득한 지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학습을 강화하고 학습의 범위를 확대한다. 이는 학문 간, 교육 행위자 간, 학생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배움에 있어서 장벽을 없애 준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접근법은 학생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최근 몇 년간 지식, 실습, 만남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하는 학교들이 생기고 있다.
문화예술 장소에 방문하여 전문가와 만나는 교육 현장
[출처] EBS, 세계의 교육현장, 창의력을 키우는 프랑스 미술교육, 아뜰리에

주프랑스한국문화원 지영호 팀장은 프랑스 중학교의 예술과학융합 교육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알프스 지역의 메일랑(Meylan)시에 위치한 부클로(Buclos) 중학교는 예술과 과학 간 융합 교육을 통해 교과목 간의 통합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메일랑시에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실험하는 국립무대 엑사곤(Hexagon)이 있는데, 부클로(Buclos) 중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공연 수업, 예술 실습, 작가와의 만남, 극장 방문 등의 문화예술 수업을 운영하던 중 예술과학융합 레지던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추진하였다. 이 수업은 학교에서 초청한 예술가와 예술, 문학, 과학, 체육 등의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사가 함께 기안한 예술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목을 한 번에 학습하는 방식이다. 처음 경험하는 수업의 형태에 학생들은 초반에는 낯설어하였지만, 예술과학 활동에 빠르게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즐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수업을 통해 다양한 교과목을 학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식습득, 예술가와의 만남, 실습이라는 전통 방식의 문화예술 수업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면서 융합 교육을 통한 교육적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던 수업으로 평가된다.
국립무대 엑사곤(Hexagon)
[출처] 38.agendaculturel.fr

두 번째 원칙은 문화예술교육이 특정 예술교과목에 관한 지식습득과 실습이 아닌 전반적인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둔다는 데에 있다. 이용주 국민대학교 교수는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은 학교의 공교육에서 목표로 하는 일곱 가지 능력인 “국어(프랑스어), 외국어, 수학, 정보처리 능력, 문화적 소양, 사회성, 자립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교육도 청소년들에게 영화라는 복합적인 영상 언어의 이론과 실기교육을 통해 ‘문화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인문학 차원에서 유치원·초·중·고등학교 단계별로 지속성을 가지고 변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학교에서의 정규예술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술사 수업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은 물론 다른 교과목의 지식을 습득하는 통합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학교에서의 박물관 견학 수업도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프랑스어, 역사, 지리, 수학, 미술 등 모든 교과목을 연계하여 다루는 통합교육으로 접근한다. 박지은 파리정치대학 강사(박물관학 박사)는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교육이 학습보다는 작품이나 소장품을 통해 지식, 감동,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작품과 관람객 간 매개 역할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하였다.
한편, 코로나19는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을 크게 변화시켰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고 그중에서도 교육의 비대면 전환은 그 어떤 분야보다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정부는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와 시민들의 문화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신속하게 대처하였다. 프랑스의 모든 문화예술기관이 운영을 중단하게 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기본 원칙 중 ‘만남’, ‘실습’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문화예술기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였다. 박지은 박사는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프랑스 박물관들의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들은 프랑스 가정으로 찾아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끝에 컨퍼런스 녹화본, 유튜브 동영상, 팟캐스트, 디지털화된 소장품의 온라인 서비스 등을 교육콘텐츠로 제공하였다. 박물관의 경우, 코로나19 이전부터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소장품을 디지털화하거나 가상 전시를 운영하는 등 이미 디지털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던 덕분에 봉쇄 직후 신속한 변화가 가능하였다. 파리박물관 연합 등 여러 박물관은 팟캐스트를 개설하고 이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제공하였다.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게 되면서 게임, 색칠하기, 퀴즈, 수수께끼, 스트리밍 영화 상영 등 교육콘텐츠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참여도 또한 높였다. 또한, 박물관에서 운영하던 온라인 전시는 박물관 에듀케이터를 대신하여 교사들이 비대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교구가 되었고 박물관 내에서 운영하던 가상현실 체험은 집에서도 가상현실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모바일 및 PC용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제공하였다. 결과적으로 박물관들은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에 대응해 온 덕분에 팬데믹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였고, 팬데믹으로 인해 대중과의 만남 방식 다변화를 더 고민하게 됨에 따라 그 이전보다 박물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효과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였다.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은 문화 민주화 실현이라는 기본 원칙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변화에 대응하며 그 방식도 변화해왔다. 프랑스 사례는 우리에게 하여금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문화예술교육의 방향과 방법도 변화해야 하지만, 이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변화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 이 글은 해외 문화예술교육 기획리포트 3호 「편집장의 글」을 재게재하였다.
민지은
민지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객원교수이다. 프랑스 파리3대학 소르본누벨대학교에서 문화매개를 전공, 커뮤니케이션학 박사를 취득한 후, 다양한 문화적 이슈들을 문화매개와 문화예술마케팅 측면에서 접근해 연구하고 있다.
jieunminpari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