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오케스트라’의 모체가 된 것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였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이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1939~2018)가 1975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설립했다. 스페인어로 ‘시스템’을 의미하는 엘 시스테마는 마약과 폭력 등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미래와 꿈을 심어주는 ‘꿈의 시스템’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상황은 달랐지만, 모토는 같았다. 바로 음악과 예술을 통해 꿈을 심어주고 길러준다는 것. ‘오케스트라’란 관현악단을 지칭하지만 우리는 조화, 화음, 소통 등의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꿈의 오케스트라는 어린이들의 사회적 조화, 화음, 소통에 대해 음악을 통해 배우는 발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거점 기관을 선정하고 사업비를 지원한다. 여기에 여러 지역의 거점기관이 함께 하며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은 2010년 전국 8개 거점에서 시작한 이래 10여 년이 지난 오늘, 51개 거점기관에서 3,000여 명의 아이들이 화음을 이루고 있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홈페이지 참조).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은 각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국고 지원 비율을 낮추고 지자체나 거점기관의 사업비 부담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하였다. 이에 따라 7년 차 이후 자립 거점기관으로서 지자체와 거점기관 자체 예산으로 지역 특색을 살려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위한 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거점기관의 지속적인 운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꿈의 오케스트라는 일몰의 시간을 지나 한낱 밤의 꿈으로 접어들 현실에 처하기도 한다.
  • 2022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 향상음악회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지원과 환경 바꾸기
그러던 중 서울 구로구에서 모범 사례가 나왔다. 구로문화재단은 거점기관으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2014년에 시작하여 올해 9년 차를 맞았다. 7년 차 이후 사업이 종료되는 되어 경우도 있는데 구로문화재단은 이 사업을 지속시켜 지역 내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2020년 9월 29일부터 독립 조례(서울특별시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했다. 이로 인해 ‘꿈의 오케스트라 구로’는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로 다시 태어나면서 운영에 적합한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의 지속성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구로구에는 구립소년소녀합창단이 있다. 2010년 창단된 이 합창단은 구로구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3학년생부터 중학교 3학년생까지 20여 명의 남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구로구에는 ‘구립’으로 운영되는 소년소녀오케스트라가 더 생긴 셈이다.
“조례제정과 함께 ‘구립’이라는 명칭이 하나 더 붙은 것인데요. 꿈의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던 구로 구민의 시선과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애정이 더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공연과 연습을 위한 악기 마련과 연주복 구비는 물론 심지어 연습 중간에 학생들을 위한 간식까지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물가 상승률 등의 상황을 고려하여 예산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도 있게 되었고요. 이러한 변화는 단원들의 마음가짐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주태민 구로문화재단 예술교육사업팀장
초등학생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으로 구성된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의 음악교육은 물론 강사들에게도 소중한 경력을 쌓아가는 장이었다. 구로구에서도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던 게 사실. 이런 와중에 일몰제 사업이라 국비 예산 지원이 사라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조례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3년 전부터 먼저 움직인 것은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담당자들이었다. 당시 허정숙 구로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조미향 구로구의회 의원이 힘을 보태기도 했다. 남다른 염려와 걱정이 발 빠른 실행력과 의지로 작용한 것이었다.
“이제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는 구로구와 구로 주민의 것이며, 무엇보다 구로구 어린이의 것이라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단원과 감독의 자세가 달라지기도 했죠. 구로구의 중요한 문화예술사업이 되면서 운영과 기획의 자율성도 얻게 되었어요. 취약층 어린이도 더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게 되어 지역 문화복지의 한 방편으로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주태민 팀장
3월부터 시작하는 사업이기에 1월과 2월은 수업을 할 수 없었는데 이런 공백기도 없어졌다. 이처럼 조례제정과 구로구의 지원을 얻는 이점은 다양해졌다. 하지만 꿈의 오케스트라의 최종 목표가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한 조례제정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다른 지역이 참조할 수 있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며, ‘일몰(제 사업)의 시간’을 ‘일출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온·오프라인 수업
힘겨움 속에서도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
김지훈 음악감독은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가 되고 나서 들어온 첫 번째 음악감독이다. 첼로와 지휘를 전공한 그는 어린 시절 인천청소년교향악단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그래서일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꿈을 키우는 현장에 비료를 주는 활동이 자신의 활동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송도센트럴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도 활약 중인 그는 경기예고‧인천예고 등에서 전공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수업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비전공생으로 구성된 중‧고교 오케스트라 수업을 전담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1년에 음악감독 임명장을 받았다. 많은 공연이 잠정적인 취소나 무한 연기로 들어서던 때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고민이 많았다. 오케스트라란 ‘모여야 가능한 예술’이지 않은가.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러한 최소의 모임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초‧중등학생들의 사회적 감수성도 달라지고 있었다. 건강과 안정을 위한 비대면 수업과 인간관계의 차단은 이들의 사회적 건강성에 적신호로 다가오기도 했다.
“단원 중 많은 수가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한 음악 수업도 중요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낯설었는데, 또래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아이들과 강사들이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감이 두터워지더군요. 그러면서 마음이 열려 음악에 더 흥미를 갖게 된 단원도 있고 음악 외에 또 다른 교육의 접촉면이 생기기도 했죠. 강사들에게도 단원들이 상태와 심리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2021년 정기연주회를 차분하게 준비했어요. 정부의 방침이 완화되던 때도 있어서 그때마다 모여 집중적으로 연습하곤 했죠. 흩어져 있던 단원들이 한데 모여 연습하면서 ‘우리는 지금 함께하고 있으며, 함께 저곳으로 향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공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적은 횟수의 모임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참 남달랐습니다.”
– 김지훈 구로구립 꿈의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 2021 제8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북과 티켓
  • 2022 지역회복 프로젝트
일몰제의 시간을 일출의 순간으로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도 음악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김지훈 음악감독은 음악을 처음 접한 신입 단원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쉽게 다룰 수 있는 타악기라도 연주하도록 하여 ‘합의 묘미’를 느끼도록 한다. 때때로 이들의 공연은 존재와 단원 모집을 위한 홍보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코앞에서 들려오는 악기 소리를 통해 악기와 음악,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조례제정과 더불어 이제는 구로구에 상주하는 단체가 되었기에 찾아오는 이들을 이처럼 맞이하고 반겨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원들이 시작하는 곳은 늘 작은 출발점입니다. 그들의 악기와 소리에 대해 보이는 ‘호기심’과 예술강사들과 행정담당자들의 ‘도움’이 하나가 되어가는 곳입니다. 단원들의 ‘호기심’이 ‘참여’로 이어지고, 다시 그 ‘참여’가 ‘책임감’으로 성장하고 음악을 통해 점점 바뀌어나가도록 해야 하는 게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교육이고요. 단원들이 자신의 연주와 소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완수할 수 있도록 정기연주회에서 객원 단원을 최대한 적게 초빙하려고 노력하여, ‘그들만의 완성된 음악 세상’을 보여주려 합니다.”
– 김지훈 음악감독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은 엘 시스테마 같은 외부에서 모체를 찾아 시작된 사업이다. 그 시작점을 지나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지금은 또 다른 모범 사례를 모색해야 하는 제2의 시기다. 그런 점에서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가 모범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변화를 입은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는 변화하는 시대의 옷도 새롭게 입어가며 정기연주회를 소화하고 있다. 이제는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기획력도 필수. 이를 위해 2021년 제8회 정기연주회(12월 18일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는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기획 하에 독일‧이탈리아‧노르웨이‧미국의 명곡들을 선보였다. 여행을 콘셉트로 잡았으니 공연장 입장권도 비행기표처럼 디자인했다.
2022년 11월 26일 열리는 제9회 정기연주회는 ‘이야기가 있는 공연’이다.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통해 우화와 클래식 음악이 만나고, 영상과 연극이 함께 하는 융합식 공연이다. 이를 통해 음악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단원들이 체감하도록 했다. 더불어 김지훈 음악감독은 게임회사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는 구로구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이들과의 협업할 게임 음악 공연 기획도 훗날의 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일출처럼 타올랐던 사업이 일몰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술교육사업의 흥망성쇠로만 국한하여 말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미래를 이끌어나갈 어린이들의 꿈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 단원이 빚어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만들 듯 이제 10여 년을 넘어가는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둘러싼 전문 인력과 운영 기관이 힘을 모아 꿈의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의 사례는 새로운 꿈의 지점을 알려주는 지표이자 모범 사례가 되지 않을까.
  • 구로 꿈의 오케스트라 제8회 정기연주회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공연 실황
    [출처] 구로문화재단 유튜브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사진 제공_구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