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모사업 신청의 계절이 온다.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면서 한 번쯤 공모사업 지원신청서를 작성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지원신청서를 쓸 때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운 좋게(?) 선정된 후에는 잘하고 있는지 불안해하며 홀로 분투하기도 한다. 공모사업 선정 과정에서는 무엇을 중요하게 다룰까? 모니터링과 컨설팅 과정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평가는 어떻게 환류되는 걸까?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예술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공모사업 심사, 평가에 밝은 전문가들과 함께 [아르떼365] 독자들이 궁금할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 나눴다.
① 심사와 선정 ② 모니터링과 평가
좌담 개요
일 시 : 2022년 10월 11일(화) 오후 7시~10시
장 소 : 서울일삼
참석자
  • 김혁진 모든학교 체험학습연구소 연구위원
  •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 박지선 프로듀서 그룹 도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 임상빈 작가
  • 이선옥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
  • 제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뽑혔으면 됐지, 뭘 또!

제환정  심사와 선정에 관해 정말 뜨거운 얘기가 오갔다. 이제 모니터링과 평가로 넘어가 보자.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배우는 게 더 많지 않은가.
임상빈  컨설팅, 모니터링, 평가는 일종의 진단과 감시, 관리 도구이기도 하지만, 선정된 단체가 더 잘할 수 있게 조언해 주는 일종의 서비스적인 차원도 있다. 그러니까 선정된 단체는 계속 잘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편, 미선정 단체는 왜 떨어졌는지도 모른 채 있거나 응급처치 비슷하게 조금 팁을 알려주는 정도다. 의지와 마인드는 좋지만 소위 기술이 부족하거나 방법을 몰라서 낙방한 단체들을 위한 재활 과정 같은 것은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 건강한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미선정 단체에 떨어진 이유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선정 단체와는 조금 다른 결의 컨설팅 구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선정 단체 컨설팅을 감시 관리 체계라고 보는 이유는 강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가 없고 무조건 받아야 한다. 몇 회차는 현장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역효과가 오기도 하고 불신과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서류도 통과됐고 인터뷰도 했으면 그냥 맡길 것이지 지원금도 교부된 마당에 중간에 뭘 또 와서 잔소리하냐는 식으로 대하는 단체도 있다.
이선옥  컨설팅이 필요하다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전에 계획을 좀 더 보완하거나 구체화하는 단계에서는 도움 될 것이다. 특히 아이디어는 좋으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계획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수용하려는 의사가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기관에서 컨설턴트 에게 이 정도 역할을 요청했으나 의욕이 과잉되는 경우도 있다.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적절하게 개입하는 게 아니라 너무 과도한 경우에는 당장 반발이 있다. 적절한 접점을 찾는 게 참 어려운 것 같기는 하다.
박지선  컨설팅이냐, 평가냐, 예술가의 성장을 위한 피드백이냐에 따라 다 다른 것 같다. 기관마다, 사업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도 다르다. 진행 시점도 중요하다.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쯤에 컨설팅하면 지금껏 해왔던 일을 다 뒤집어야 하거나 컨설팅이 역할을 못 한다. 예술단체에도 어떤 성격의 모니터링인지에 관한 정보가 정확히 공유되어야 한다.
한편, 예술 작품처럼 그냥 결과물을 보고 의견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교육처럼 과정이 무척 중요한 작업이 있다. 과정을 살펴보지 못한 상태로 그냥 한 번 방문해서 모니터링한다는 것에 부담감이 굉장히 컸다. 그래서 모니터링 계획이 제대로 수립되었으면 좋겠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컨설팅 의견에 “네가 아는 게 뭐 있다고”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작업에 평론이나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한 피드백 성격의 모니터링은 사실 예술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뭔가 지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조언하는 방식의 모니터링 문화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평가의 관점이 아니라 동료 간에 좀 더 전문적으로 주는 피드백의 성격으로 규정되면 좋겠다. 사실 모니터링도 심사만큼 어렵다.
김혁진  요즘은 대개 초반에 컨설팅이 이뤄지고 그 내용이 반영된 이후 교부금이 나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심의 때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차시별 계획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 중에는 다 짜서 가져오면 컨설팅으로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인 것도 있다.
말씀하신 것처럼, 컨설팅받는 단체의 태도에 따라 함께 고민하는 차원에서 컨설팅 내용을 활용하는 팀도 있고, 마치 면접 심사에서 토론하듯이 처음부터 방어하려는 분도 있다. 그런 점에서 컨설팅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컨설팅은 수요자가 필요해서 요청해야 하는데, 우리는 필수 사항으로 정해서 내려보낸다. 거기다 컨설턴트도 지정해준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컨설팅을 운영하는 기관에서는 이러한 기법, 제도,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체 입장에서는 자기 예산 안 들이고 도움을 받을 기회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시면 좋겠다.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한번 같이 얘기를 들어보자. 그런데 얘기가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생각은 이렇다. 대신에 앞으로 해서 입증하겠다’ 이러면 어떨까. 컨설턴트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건 좀 심하다. 컨설팅의 기본 전제는 단체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지 교육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제환정  모니터링에 가면 대개 지표를 주는데, 그걸 보면 이게 모니터링이 아니라 평가인가하는 질문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처음 보러 왔고, 서류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요소에 대해서까지 중간 정산에 가까운 판단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모니터링은 잘 관찰하고 좋은 질문들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지표와 칸을 채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단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도 예민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모니터링이라는 이름 안에 확인하고 싶은 너무 많은 층위의 욕망과 불안감이 섞여있다. 어떤 변화를 촉구하는 건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참여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인지, 내년을 위한 레퍼런스로 남는 건지, 팬데믹 같은 때는 격려와 응원을 하고 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때로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수업인지 아니면 퍼포먼스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이선옥  완성된 작품으로서 공연이나 전시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부담이 덜한데, 예술교육이 이뤄지는 장소를 참관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현장의 풍경을 훼손 하기도 한다. (일동 : 맞다. 아이들은 저 뒤에 누구냐고 계속 물어보고. 갑자기 2시간 하던 수업 시간이 3시간이 된다. 오늘은 왜 간식이 달라?(웃음))
임상빈  제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할 때 외부자가 방문함으로써 수업의 리듬이나 공기가 달라지고 몇 주간 친밀감을 형성해온 아이들과의 관계가 그날은 뭔가 싸한 느낌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모니터링 제도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인으로 보지 않고 그에 저항하는 입장이라 모니터링 제안이 와도 거절하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난생처음 꿈지>라는 사업에서 진입 단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새롭게 느꼈던 부분을 자기 성찰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쓰고, 그 기록만 받아서 코멘트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모니터링 했다. 이 방식을 기관에서 승인하기까지 여러 절차와 과정적인 합의가 이뤄졌지만, 어떤 측면으로는 이것은 예술교육의 자율성을 어떻게 제도가 받쳐줄 것인가의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왼쪽부터) 박지선, 이선옥, 김혁진
컨설팅? 모니터링? 평가?
이선철  평가를 좀 완화한 표현으로 모니터링이라고 쓰지만, 단체들도 다 알고 있다. 저는 모니터링, 컨설팅, 멘토링, 코칭, 퍼실리테이팅 등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멘토링은 격려해 주고, 컨설팅은 이슈가 뚜렷해서 보고서로 나오고, 코칭은 스포츠 분야처럼 기술적인 부분 위주로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역할이 현장에서는 다소 혼재되어 있어, 모니터링의 자격으로 가지만 코칭을 원하는 경우도 있고, 컨설팅이라고 가지만 어쩔 수 없이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제 역할을 우선 먼저 명확히 하고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물론 극단적으로 거부하거나 귀찮은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저도 거기에 대응해서 영혼 없이 해주고 온다.
임상빈  이렇게 자유자재로 변한다는 게 굉장한 능력이다(웃음).
이선철  상대방이 받을 마음이 아닌데, 내가 아무리 성의 있게 얘기해 봤자다. 반면에 ‘일부러 찾아가서라도 한 수 배울 일을 돈까지 줘가면서 하라고 하네!’라는 식이면 나도 신이 나지 않겠나. 그런 인연은 컨설팅이 끝나고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 내에 빨리 끝내고 가라는 식이면 그냥 보고서 쓰고 온다. 이것도 약간 복불복인 것 같다. 단체가 받아들이려는 마음과 컨설턴트의 열정이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지원 사업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컨설팅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면 참 어렵긴 하다. 그러니까 선용하면 좋은 도구고, 아니면 불편한 과정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지역적인 편차도 있다. 군 단위 지역에서는 기본적으로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주고 얘기해주는 자원이 너무 없으니까, 누가 가더라도 좋아하는 편이다. 또 한 가지, 어느 지역은 각자 원하는 컨설턴트를 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직접 섭외할 루트나 연락처가 없으면 기관이 그 역할을 해주니 정말 고마워하더라. 운영 방식에서도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선옥  저희도 문화도시 사업 관련해서 컨설팅 지원 사업을 단계별로 구성했다. 스스로 어떤 분야의 문제, 이슈에 대해서 해당 전문가 컨설팅을 받고 싶다고 하면 그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들도 있다.
이선철  구조적으로 풀이 있어서 매칭시켜주는 방법도 있지만, 뭔가 창의적인 팀들은 리서치하든 누구의 초대를 받든 본인들에게 좀 더 적합한 컨설팅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선옥  모니터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긴 과정 중에 어떤 단면인 현장 참관이 의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별도의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부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니터링을 안 할 수도 없고, 실무적인 고민이 있다. 모니터링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다음 심의에 참고 자료로 쓰는데, 그것이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 내용을 그대로 피드백하기에는 맥락은 모른 채 그 단면을 보고 하는 얘기가 해당 단체나 개인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 걱정도 된다. 그래서 실질적인 효과성에 관한 고민이 너무 많아진다.
제환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모니터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좋은 예술가가 좋은 예술교육가가 될 거라는 믿음을 오랫동안 가져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매우 좋은 예술가지만 아이들하고는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여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취약한 상황일 때는 최소한의 윤리적인 확인 장치로서 모니터링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김혁진  어쨌든 누가 오는 건 부담스러운 것이다. 모니터링이라는 말 자체가 감시이지 않은가. 이 표현은 단체가 아니라 운영기관 입장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단체가 자신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사전에 질문을 던져놓고 오면 이것을 좀 봐달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기관에서도 일방적으로 매칭하는 게 아니라 컨설팅 모니터링 수요자인 예술가, 예술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유연한 방식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간혹 ‘끝나고 얘기를 좀 나눠주세요’ ‘간 김에 격려 좀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는데, 문제는 끝나면 단체들도 빨리 짐 싸서 나와야 할 때가 많다. 뭐든지 단체가 자기중심에서 요구하고 계획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선철  저도 모니터링 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고, 환영도 받고, 끝나고 술 마시고 가라고 붙잡기도 한다. 학교, 장애인 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 어떤 생태계에 있는 프로그램이냐에 따라서 모니터링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굉장히 능수능란한 변신이 필요하다. 책임자는 컨설팅받고 싶은데 담당자는 피곤 하다든지, 시기적으로 안 맞을 때 간다든지 변수도 많은 것 같다. 가볍게 만나는 줄 알았는데 평가의 성격까지 있으면 봐야 할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모니터링이 어렵다.
임상빈  모니터링이든 컨설팅이든 이 구조가 생긴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종의 대화 장벽에 부딪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단체와 모니터링 위원 간에 이 프로젝트를 대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생업인지 알바인지, 어느 정도 시간을 낼 일인지 단체마다 레이어가 다르다. 창작이 본업이고 예술교육은 부업일 뿐일 수 있는데도 전문가급으로 활동하게끔 조언한다. 내가 여기서 받는 활동비에 비해 너무 큰 것을 요구한다는 거부 반응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예술단체가 이 일에 어느 수준까지 자기의 가치지향을 담고 있는지 모른 채 컨설팅과 모니터링이 이뤄지기 때문에 어긋난 그림을 놓고 얘기 한다는 느낌이다. 소위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영역은 작가로서의 사회적 존중과 교육자로서의 자부심 사이에 걸쳐져 있다. 그런데 사회적인 인식은 굉장히 낮은 위치에 있다. 이때 정책이나 문화재단을 비롯한 기관에서 표방하는 이념이나 추구하는 가치만큼 예술교육가, 실천가, 활동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줄 고민을 하지 않고 자꾸 제도적으로 도와줄게, 알려줄게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질적으로 사회적인 위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계층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 제도에 덧붙여진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것이다.
(왼쪽부터) 제환정, 임상빈, 이선철
스스로 변화를 살피기
제환정  한편, 모니터링이나 평가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성과의 증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관해서 조금 더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
이선철  심사든 평가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쪽으로 가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다음 심사에 반영되는지, 모니터링 위원 간에 비슷한 톤앤매너로 진행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있다. 나는 이런 측면을 강조했는데, 다른 위원은 이거 누가 이렇게 한 거냐고 할 수 있다.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예를 들면 단체와 잘 맞는 모니터링 위원이 한 3년씩 함께 육성해 가겠다는 취지로 하면 어떨까?
김혁진  현재는 프로그램 중심의 단년도 지원사업이라 내년에 이 단체가 될지 안 될지 모르고, 똑같은 프로그램이라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평가든 모니터링이든 피드백이 아주 예민해진다. 어떤 경우는 감점이나 가점 요인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작년과 다른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또 애매하다. 활용이나 피드백 방식이 그때그때 달라서 얘기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참고로 쓰십시오, 정도인 듯하다. 모니터링이 제대로 환류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냥 참관 내지는 중간평가로 기록을 남기지만, 단체에 돌려줄 기회가 거의 없다. 끝나고 난 다음에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전문가의 모니터링보다 단체 내부에서 스스로 진행하는 모니터링이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선철  교육진흥원 초기에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심사위원, 모니터링 위원, 평가위원이 다 달랐다. 운영하기에도 정신없고 어려운데다, 한 사람이 일관되게 진행하면 전후를 비교하거나 측정할 수 있으니, 그 후로는 한 사람이 평가하고 모니터링한다. 이것 역시 이 과정에서 오는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좀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 같다.
이선옥  대부분의 공모 지원사업이 회계연도에 맞춰서 단년도 사업으로 끊긴다. 그런데 예술교육, 특히 교육이라는 말은 결국 사람의 변화, 성장을 추구하는데 그것이 단년도, 단기간에 변화를 볼 수 있을까? 투입 대비 성과를 증명하기가 굉장히 힘들기도 하다. 소위 가성비가 좋지 않고, 1인당 투여되는 예산도 적지 않은데, 참여자 수와 만족도 외에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사람의 성장이나 변화를 어떻게 지표화할 수 있을지도 굉장히 고민스럽다. 매년 모니터링, 평가를 하지만, 단년도 사업에 몇 주 혹은 몇 개월 만에 나온 결과로 성과를 말할 수 있을지, 그냥 단순한 산출물이 아니라 진짜 효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측정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나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생긴다. 심지어 5개년 중단기 사업인 문화도시 사업도 매년 성과 평가를 통해서 예산을 차등 지원을 하는 구조다. 그러면 사실 단년도 사업을 5년 동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화도시 사업조차 단기 성과에 너무 집착하는 구조다.
제환정  저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을 운영할 때, 다른 사람이 이 사업의 의미를 맥락적으로 읽어주는 것, 비평의 역할에 매우 굶주렸었다. 그런데 훨씬 더 정량적인 데이터를 원하다 보니 내부에서 계속 만족도 조사 같은 걸 얘기하게 된다. 그러나 만족했으니까 남은 참여자들만 조사에 참여하기 때문에(일동 웃음) 이게 과연 정확한 피드백인지 의문이 남는다.
또 하나는 지속성에 대한 것이다. 기관이 지속성 이야기를 할 때, 사업의 지속성인지, 이 생태계나 예술단체, 예술교육가의 지속성을 이야기하는지 헷갈릴 때 가 있다. 헷갈린다기보다는 주어가 뭔지 잘 모르겠다. 개인 예술교육가 입장에서는 이 생태계의 지속성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정책이나 기관 입장에서는 사업의 중요성과 지속성이 더 우선되기도 한다. 같은 단어지만 주체에 따라 너무 다른 맥락에서 쓰고 있는 것 같다. 모니터링과 평가가 심사할 때 기준이 되기도 하고 사업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주는 것 같다.
김혁진  단체 입장에서는 자기 역량을 계속 유지하고 높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과정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사업의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관의 관점과 단체 또는 예술가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효과가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이후로 개인의 효과성 측정 연구를 많이 했는데, 질적 연구에 보조적인 자료로는 쓸 수 있지만, 숫자로 모든 걸 보려고 하면 해석에 한계가 있었다. 기관의 행정적인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든 관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정리하고 표현할 것인가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정량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효과성 척도를 만들거나, 사례 분석을 해보는 노력도 있었다. 성과 공유회를 열기도 했다.
단체에 권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기록이다. 한참 아카이빙 관련해서 얘기가 많이 나왔었는데, 몇 년간 해온 프로그램 실적을 남기라는 게 아니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 시민들의 감정, 거기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단어로만 쭉 모아도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좋은 경험을 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스스로 검증할 수도 있다. 나도 변했고 나와 같이 만났던 사람도 변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변화나 개인의 성장에 관한 느낌, 단어의 변화만 잘 분석해도 프로그램 콘텐츠 자체도 바뀌었다. 한번은 1년 반 동안 일지를 남겼다. 그날 참여자의 감정을 관찰한 것과 본인의 감정을 쓰는 것인데, 처음 몇 번 봐서는 잘 몰랐는데 1년 반을 모아놓고 보니까 흐름이 나왔다. 다른 정보 없이 그 자료를 전문가들에게 보여드리니, 그 기록만 보고도 정확하게 그걸 다 끄집어내더라. 맨날 말로만 아카이빙이 중요하다고 할 게 아니라 내 경험, 감정을 잘 기록하기만 해도 그다음 프로그램을 짜고 계획서 쓸 때 아이디어도 얻고 가치를 정립하는 자원이 된다. 성과도 오히려 거기서 확실하게 나온다.
박지선  얼마 전에 예술위원회 간담회에서 예술가들이 성과 압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예술위원회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해줬다. 그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걸 왜 거기에다 넣어놓았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냥 옛날부터 있었고 숫자는 명확하니까 넣어놓은 거고,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예술가에게는 굉장한 압박이 된다. 창작도, 교육도 마찬가지로 ‘도대체 몇 명과 해야 하느냐’가 문제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는 10명이 참여하는게 적합한데, 과연 그래도 괜찮을까 고민하게 된다. 실제로 내가 무엇을 목표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굉장히 달라지는데, 예술가가 자기 작업에 대한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주체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행정이나 서식에 이미 너무 형식화되어 있어서 그 이상은 상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이제 행정 서식이나 지표가 좀 과감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물론 평가 지표를 바꾼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그 지표를 다 쓰지 않고 한두 개만 뽑아 쓴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업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지표를 찾거나 예술가 스스로 설정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일방적으로 컨설팅을 받으라고 하는 방식은 진짜 바뀌어야 한다. 컨설팅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편한 경우가 너무 많다. 뭐든 자발적으로 했을 때 훨씬 효과가 크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들이 이것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예술가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한편, 예술단체들이 ‘이 모니터링 평가를 왜 하느냐, 도대체 뭐에 쓰이는 거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그냥 대부분 기관에서는 ‘그냥 하는 거예요’라고 얘기한다(웃음). 그러니까 목적이 분명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예술가들도 이것을 활용하든 말든 방법이 생긴다. 그런데 안 바뀔 것 같다. 누가 그러더라. 모두가 행복한, 모두 마음에 드는 예술계의 성과지표를 개발하면 노벨상을 받을 것 같다고. (일동 웃음)
제환정  어떻게 보면 지표가 결핍되었을 때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처럼 정확한 수사로 이루어져 있다.
박지선  예전에 축제에서 일할 때 성과지표 중에 해외 관광객 숫자를 써야 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파악하나? 해마다 그 칸을 비워두거나 대강 썼는데, 어느 해엔가 너무 짜증이 나서 그 칸에다 서술형으로 이 축제에 어떠한 관광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쭉 썼다. 그해 우리가 만점을 받았다더라.
김혁진  산출지표와 성과지표가 혼동되어서 그렇다. ‘성과’라는 표현을 썼으면 정성, 정량이 다 있는 건데, 자꾸 ‘세미나 몇 회 했어’ 이렇게 가버리니까.
박지선  제도를 바꾸려면, 예술가들이 주어진 서식을 채우기 위해 안달복달하기보다는,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칸을 채워야 한다. 오히려 그걸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바꿔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런 예술가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지원 방식이 좀 바뀌지 않을까.
임상빈  맞다. 우리가 멘토링이나 모니터링 같은 복기와 진단을 하는 이유는 자기 발전을 위해서다. 천편일률적인 방식보다는 단체마다 각자 진단하거나 과정을 기록할 방법을 제안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류와 양식이 우리의 상상력을 결정해 버리지 않도록.
김혁진
김혁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책임연구원)에서 청소년정책 및 문화 관련 연구와 개발에 참여하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예술감독으로 개관 업무를 담당하였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연구와 평가, 컨설팅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박지선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선옥
이선옥

한량처럼 살고 싶은 소음인. 하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문화예술교육 허브사이트 ‘아르떼’와 ‘웹진땡땡’을 만든 시조새였던 이유로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이선철
이선철

예술경영인이자 문화기획자. 감자꽃스튜디오의 대표이며 연세대, 국민대, 경희사이버대, 야쿠츠크 북동연방대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6기 이사, 2기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 추진위원, [아르떼365]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임상빈
임상빈

교육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환경을 탐구하는 교육예술실천가로 [아르떼365]에서는 스스로 예술강사 노조위원장의 탈을 쓰고 편집회의 테이블에 앉아 투덜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제환정
제환정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다. 예술교육자, 창작자, 저자로 학교, 병원, 무용단 등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 [아르떼 365] 편집위원.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 남은정, 주소진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