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일상 여행자들의 쉼터 낯설여관입니다!”
‘여관-여행-여정’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여(旅)’라는 글자는 나그네를 의미한다. 낯설여관(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은 우리 모두가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라는 신분과 역할에 집중한다. 낯선 지구별에서 주인이 아닌 나그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책과 제로 웨이스트 사진을 통해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많고, 화려하고, 있어 보이고, 풍족하고, 냉철하고, 편리한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적고, 소박하고, 없어도 괜찮고, 자족하고, 따뜻하고, 불편한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작지만 알찬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며 시작한 낯설여관이 아직 망하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다. 책이 위로와 쉼을 줄 수 있길 기대하는 욕심. 제로 웨이스트라는 생소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욕심. 사진으로 기쁨과 만족을 주고 싶은 욕심. 욕심의 집합체인 이 공간이 코로나 한복판에 오픈해 잘 버티고 있다니 칭찬받아 마땅한 집념이다.
여관은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일상을 여행하는 모두가 이곳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쉼을 얻길 바라며 낯설여관을 ‘일상 여행자들의 쉼터’라고 소개한다. 쭈뼛쭈뼛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마음 둘 곳이 있으니 언제든 쉬러 오라는 의미다. 물론 우리의 정체성이 낯선 이들은 정말 ‘여관’인 줄 알고 전화하기도 하고 숙박하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우리의 존재를 알렸으니 성공적인 마케팅이라고 소문내도 되는 걸까?
느슨한 연대감을 가지고 오래오래
2021년 1월, 코로나 시기에 오픈하다 보니 약 1년 동안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나마 수다모임 ‘잡담회’를 통해 간헐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듯,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은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허락했다. 코로나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어준 즐거운 수다모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핸드폰과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는 시대. 하지만 우리는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낯설여행’은 핸드폰과 내비게이션 없이 지도와 나침반으로 떠나는, 낯설지만 색다른 여행을 떠나는 실험이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서 한 발자국만 떨어져 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빠르게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들은 느릿느릿 걸을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코로나로 ‘여행’이 더욱 귀해진 요즘, 앞으로 우리 삶에 ‘여행’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사진작가 요시고는 ‘카메라를 가진 모두가 사진작가’라고 말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사진작가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 필름 카메라로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프로젝트 ‘모놀로그’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독려한다. 2주, 길게는 한 달 동안 찍은 사진 중 마음이 가는 사진을 고르고 짧은 코멘트를 달아 낯설여관 복도에 전시한다. 나의 세상을 타인에게 소개하며 공감과 위로를 받는 일. 그렇게 우리는 느슨하고 따뜻한 연대감으로 서로를 인지한다.
  • 필름 카메라 프로젝트 모놀로그
  • 수다모임 잡담회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기후 위기’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망가져 가는 지구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이 마음은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내가 누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모여 ‘제로 웨이스트’라는 가치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가며 나의 행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한다. 가을의 파란 하늘, 투명하고 맑은 바다, 지저귀는 새소리,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떠올리면 그것들과 ‘오래도록’ ‘함께’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가 외면받거나 소외당하지 않길 바라며 책방을 다양한 키워드로 채워두었다. 제로 웨이스트, 비건, 장애, 인권, 퀴어, 페미니즘, 비혼, 딩크족, 동물복지 등 대중적이진 않지만 꼭 필요한 세상의 목소리다. 편견과 비난에 굴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 모두가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길 꿈꾼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시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이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방향으로.
  • 제로 웨이스트 샵
  • 1인 무언극
단골 투숙객이 되어주세요
낯설여관은 손님들을 ‘투숙객’이라고 부른다. 5분이든 50분이든 문을 열고 발을 디뎠다면 낯설여관에 투숙한 셈이다. 한 번만 왔다 가셔도 단골 투숙객이 되는 신기한 공간. 여관지기들은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지만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이 고맙기에 무심히 넘길 수가 없다. 2년 차인 요즘은 이름과 얼굴, 사는 곳까지 알게 된 단골 투숙객이 많아졌다. 오랜만이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필요한 책이 있다며 주문하고, 좋은 소식이 생겼다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학교에 가서 낯설여관은 지구를 지키는 책방이라고 소개하고, 올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작은 선물을 건네주는 단골 어린이들. 그들의 따스함 덕분에 힘든 시간도 웃으며 버틸 수 있다.
낯설여관은 백 명이 한 번 오는 곳이 아니라 한 명이 백 번 오는 곳을 꿈꾼다. 한 번 오는 백 명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백 번 오는 한 명과 함께 낯설여관을 따뜻한 온기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상 제일가는 욕심쟁이인 게 매우 확실해졌다) 이곳에서 위로와 쉼을 얻고 돌아가기를, 에너지를 가득 채워 힘을 얻기를 바라며 매일 문을 연다. 낯설여관은 늘 투숙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발걸음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바라며.
낯설여관의 추천: 박혜윤 『도시인의 월든』
『도시인의 월든』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2년간 숲속 호숫가 오두막의 삶을 실험했듯, 낯설여관도 우리만의 실험 중 하나다. 이 도시 안에서 더욱 굳건하게 내 멋대로 살아가고 싶어서 책을 펼쳤다. 박혜윤 작가가 제안하는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를 사랑한다.
“인생의 어떤 것은 모순이고, 어떤 것은 실패이고, 어떤 것은 성공인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삶이다. 남들이 평가하는 것과 삶은 별로 상관이 없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천 개의 지역을 탐사하면서”
– 『도시인의 월든』 중
한지혜
한지혜
책을 고르고 이웃을 만나고 환경을 생각하는 낯설여관 204호 책방지기. 나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당연한 것은 없다’ ‘어쩔 수 없지 뭐’ 같은 말을 되새기며 순간을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낯설여관’이라는 실험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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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
책 이미지 제공_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