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마음 맞는 동료 기획자들과 서울 강북구로 이사와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지역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구성원들이 모두 청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네 청년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동네형들이 주로 해왔던 일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들을 호명하는 일이었다. 청년, 1인가구, 세입자, 니트(NEET), 장애인, 이주민, 세월호, 길고양이까지. 지역에서 1,000명이 모이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는 10명이 모이는 100개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왔다. 우리에게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고민과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과정이 일과 비즈니스가 되었다.
함께하기 위한 적당한 거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즐겁지만, 옆집에 사는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내 성향 중 하나이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서먹하지도 않은 관계가 나에게는 적당하고, 내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지나친 환대와 친목은 지양하는 편이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만나면 만날수록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단체를 시작할 때는 대표가 처음이라, 좋은 대표가 되고 싶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중요하다고 배웠고 동료들과 책임과 권한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터는 마치 연애와 같아서 내가 누군가의 의지와 다르게 어떤 기대를 하면 나 혼자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공동대표와 함께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대표는 그냥 대표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좋은 대표가 아닌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맞추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는 이유는 서로의 다름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은 경험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난 상상은 일하는 공간이 아닌 각자의 일상에서 나온다. 동네형들은 1년에 11개월 동안 일을 하고, 매년 1월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문화 예술단체의 특성상 평일 저녁과 주말에 행사가 많았기 때문에 업무와 무관한 단체 활동이나 술을 마시는 회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일하면서도 각자의 일상을 소중하게 지켜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체를 운영하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오래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서울청년주간’에서 동네형들은 ‘우리는 3년 안에 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주제로 포럼을 기획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청년단체들을 초대하여 자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최게바라기획사, 협동조합 성북신나,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의 대표에게 각 조직이 3년 안에 어떻게 망하게 될 것 같은지 발제를 부탁했다. 물론 가장 망할 것 같지 않은 단체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제안이었는데 대표들의 공통된 반응이 재미있었다. “3년은 너무 멀어서 예측이 어렵다. 1년으로 하자.”
동네형들의 공간은 간판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간판을 설치할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간판을 가지면 지키고 싶을 것 같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과 관계를 만들어냈고 간판이 없이도 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운영을 위한 운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내년이 어찌 될지 모르니 해보고 싶은 일은 그냥 했고,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몇 년을 지속한 프로젝트들이 모여 단체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그동안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과 협업했다. 새로운 청년기획자들이 등장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사건과 담론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루어 낸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로 문화예술 생태계의 다양성과 감수성도 조금은 높아졌다(고 믿고 싶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새로운 세대들은 더욱 재미난 기획을 해나갈 것이다. 우리가 고민했던 자립과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각자의 단체와 활동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일단 해볼 수 있는 응원과 지지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선택한 마무리
2022년 3월, 동네형들은 문을 닫았다. 단체가 운영하던 공간을 정리하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마무리’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시작은 끝이 있다지만 타의가 아닌 자의로 폐업신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는 우리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일까, 우리의 활동이 정책의 방향과 잘 맞았기 때문일까, 그냥 운이 좋았기 때문일까.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체의 SNS에 마지막을 알리는 글을 준비하며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질척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못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전문을 남겨놓는다. 다시 한번 지면을 빌려 그동안 동네형들과 함께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도빈
박도빈
전 동네형들 공동대표, 독립기획자. 20대에 2년간 미국과 프랑스, 인도에서 자원활동가로 살았다. 이후 국제교류, 환경, 청소년, 도서관 등 여러 분야의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강북구에서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의 공동대표로 일했다. 최근에는 인력양성사업에 관심이 많아 ‘도봉문화기획학교’ ‘천안 문화매개자 인력양성사업’ ‘평택문화기획학교’ ‘영도 기획자의집’ 등 여러 지역에서 예비문화기획자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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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