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언저리였을터다. 공연장에서 마주한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톤 체홉도, 셰익스피어도 훌륭해.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더러는 끄덕였고 더러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몇몇은 “당연해!”라며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콜렉티브 지구숨숨’이 탄생했다.
  • 그림 없는 그림책 <요나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린이 작가들이 만든 작품
나와 고래, 그리고 요나
나의 스쿠버 다이빙은 순전히 고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다이빙 용어로 50깡(50번)의 다이빙을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고래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고래는 나에게 여태껏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 고래가, 나의 전부인 고래가 고작 인간이 만들어 낸 쓰레기들로 위가 가득 차 폐사한다고?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처음엔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머릿속에 아른거렸는데 이제는 이 정도는 뉴스도 아니게 될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쫓기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래를 만나고 싶어 바다로 뛰어든 두 아이가 고래 뱃속에서 쓰레기들을 만나게 되는 <요나이야기>는 이때 처음 쓴 것이다.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니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얹은 그림책을 만들어 더 많은 어린이가 읽게 하고픈 마음이 스멀스멀 일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상상해서 만든 주인공이라야 해양오염에 관한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로 와닿겠다 싶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들은 뒤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그림 없는 그림책’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5분을 듣고, 5분은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그려 총 10페이지를 완성하면 나만의 환경그림책이 된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작은 환경예술을 지원하여 라디오극 <요나이야기>가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물꼬를 터 주었다. 이에 힘을 얻어 ACC어린이가족문화축제, 그리고 국립해양박물관의 오션북페어에서도 <요나이야기>는 어린이작가들을 꾸준하게 만났다.
이야기 속에서 두 아이는 쓰레기로 칭칭 감겨진 ‘요나’라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고래 뱃속에서 탈출할 때 요나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모두를 밖으로 내보내는 데 힘을 더할 뿐, 자신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라디오극을 다 들은 아이들에게 요나는 누구였을지 묻는다.
“고래의 배 속에 사는 고래 친구인 것 같아요.”
“고래의… 마음?”
“맞다! 고래의 유령요!”
“오래전부터 고래 배 속에 갇힌 사람요. 그런데 이제 고래랑 친해져서 안 나가고 싶어 해요.”
물론 글쓴이인 나는 생각해둔 답이 있지만 라디오극을 들은 각자의 생각도 모두 옳다. 요나는 고래의 영혼일 수도 있고, 쓰레기로 둘러싸여 이미 무기력해진 채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우리일 수도 있고 이미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그 몸을 내어주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배우들과 옹기종기 작업실에 모여 마이크 하나로 비닐 효과음을 만들어가며 시작했던 라디오극 <요나이야기>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아이들과미래재단, 국립해양박물관 등 여러 기관의 지원으로 이머시브 환경증강현실(AR) 애니메이션 어플에 이어 성우가 녹음한 3D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어 내년 겨울 즈음엔 트레일러 버전이 3D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게 된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 이머시브 전시 <요나이야기>
  • 2022 마르쉐(농부시장)
느슨한 이음, 지구별 숨숨마을
이어 아름다운 재단의 도움으로 네이버 카페에 ‘지구별 숨숨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각개전투를 하는 환경활동가, 예술가, 농부, 크리에이터, 기획자들이 옅고 느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등을 기대길 바라고 만든 플랫폼이다. SNS를 통해 환경 관련 활동을 하는 200여 명에게 1:1로 말을 걸어 숨숨마을로의 이주를 권유했다. 응답이 온 것은 50명 정도였다.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몇 명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지인의 손을 이끌어 160명이 넘는 카페가 되었다. 나에게는 들풀같이 많은 이웃이 생겼다. 성북구의 성가소비녀회와 함께 ‘지구숨숨장’을 열어 아이들과 벼룩시장을 진행하고, 마르쉐(농부시장)에 참여해 양봉 농가 대표님과 꿀벌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로 만날 수 없으니 매달 화상회의로 친목회를 열어 ‘아- 아- 이장입니다’를 시전하며 시답잖은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서로의 크고 작은 실천을 축복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구숨숨의 창작활동과 숨숨마을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조금 버거웠지 싶기도 하다. (콜렉티브 지구숨숨은 팀원의 반 이상이 본캐로 자신의 단체를 운영하는 대표·연출이다 보니 평소엔 각자의 작업이 있다. 회계나 기획을 담당하는 팀원은 있지만 당시 관리 직원을 따로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운영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하고픈 것은 많고 몸이 하나이니 때때로 나는 도대체 지금 뭐 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 멍해지는 일도 있었다. 의미는 충만한 날들이로되 나 개인에게는 체력적으로도 조금 우울한 시기일 ‘뻔’ 했다. 그럴 땐 ‘지구를 보듬는 힘든 여정에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기후 우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는 숨숨마을 주민들의 피드백을 생각하며 다시 걸을 힘을 얻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결국 이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 드르륵 하고 고갤 내밀어 마주 보며 웃어주는 옆집 아주머니 같은.
대전아트센터 <마주하는 바다>
아름다운 전염을 위해
바닷가에 나가보면 쌀 포대 2~30개 분량의 쓰레기가 매일 새로이 밀려오는 판국에 이런 소소한 활동이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커피전문점에 10명이 줄을 서 있으면 9명은 일회용기에 커피를 받아 갈 테니 1인당 컵+뚜껑+컵홀더+빨대까지 4개의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계산하다 보면 너무나 천문학적으로 암담하여 더 세기도 전에 우울해진다. 그런데 앞서 주문을 하던 사람이 말한다. “저 여기 텀블러에 담아주세요”라고. 그러자 옆에 선 친구도 “아, 나도 있다”라며 주섬주섬 텀블러를 꺼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이 “아 맞다. 나 책상에 두고 왔다. 내일은 꼭 가져와야지”라며 다짐한다. 좋은 전염이다. 텀블러를 꺼내어 점원에게 준 것 만으로 두 명에게 텀블러를 인지시킨 것이다. 그 행동이 세상은 바꾸지 못할지라도 일단 4개의 쓰레기를 줄여주었다. 미드웨이섬의 알바트로스가 삼키게 되었을지 모를, 갈라파고스 거북이의 콧속에 깊이 박혔을지 모를 운명의 빨대는 이렇게 하나둘 줄어든다.
마주하는 바다
나는 언제부턴가 ‘지구를 지키자’ ‘지구야 도와줄게’와 같은 표현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지구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내가 구해줘야 할 생명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발을 붙이고 글을 쓰는 이 공간, 이 작업실 그 자체로 지구이다. 지구가 바닷속부터, 땅속부터 병든다는 것은 곧 내 척추가 고치기 힘든 디스크 증세를 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지구숨숨의 팀원들과 “자신 스스로와, 그리고 이 땅과 마주하는 시간을 자주 갖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주한다는 개념이 몹시 와닿아 올해부터는 아예 ‘마주하는 바다’를 타이틀로 하여 서울평화문화진지-대전아트센터-아라아트센터로 전시를 이어가며 바다와 관객을 마주 보게 하고 있다.
지구와, 바다와, 땅과 그리고 나무와 계속해서 마주하다 보면 그가 곧 우리인 것이 느껴진다. 멀찍이서 그 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들여다봐야 그 심연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치 가까이 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심연이 곧 우리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하수구에 함부로 먹다 남은 탄산음료를 부을 수가 없다. 집 앞 개천에 사탕 막대를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지구를 위할 필요가 없다. 그를 나라고 생각하고, 나를 위하면 된다. 약을 치지 않거나 덜 친,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키워낸 야채를 먹도록 노력하고 가두어져 키워진 동물의 고기는 먹지 않도록 하며, 그들의 젖을 먹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뭐든 자연스럽게 키워진, 자신의 모양대로 자란 생명을 취하는 것. 그 모양이 비닐로 포장되거나 가려지지 않고 한눈에 보이는 진열된 그대로의 것을 사는 것이 내가 실천하고 있는 아주 소극적인 방법들이다. 쓰레기는 나쁘지 않다. 잘못한 적이 없다. 함부로 버리고, 스스로의 몸을 해코지하는 인간이 나쁘다. 나는 어제보다 덜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할 따름이다.
박시호
박시호
늘 바다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콜렉티브 지구숨숨의 리더(읽는 사람-Reader). 뭍에서의 삶은 잠깐일 뿐 우리 모두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한 환경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지속가능하며 건강한 창작은 무엇일까를 계속하여 탐구하고 있다.
jigusumsum@gmail.com
인스타그램 @jigusumsum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