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예술교육활동가와 예술교육의 변론인을 자처해온 나 자신과 이 글 너머의 독자들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본다. 흠, 글쎄, 정말?
매일의 나의 노동 안에 녹아있는 유형·무형의 노력, 틈새 사이를 비집는 실낱같은 전문성, 인간에 대한 변덕스러운 애정을 굳이 들추어가며 의심해본다. 대면의 순간이, 노동의 결과가, 만남의 누적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기획안에 쓰는 “예술교육의 목표”가 설득적인 수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 동력임을 경험하였나, 아니 바뀌어 질 거라고 애초에 스스로 믿고는 있나, 혼자가 어렵다면 나의 동료가, 다음 사람이, 예술을 배후로 하여 이 세계의 어두움과 이런저런 지겨움을 전복하고 우리를 해방할 거라 꿈꾸고는 있나.
2020년 서울에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이하 ITAC)가 온라인으로 열렸었다. 벌써 2년이 흘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9월 1일부터 4일까지 온라인/대면 양방향으로 개최된 ITAC6의 주제는 “세상을 바꾸는 촉매제로서의 예술”이다. 팬데믹과 비대면으로 위축된 예술교육 현장에 힘을 싣고, 균열이 시작되는 믿음에 질문을 던진다. 행사 첫날, 단상에 오른 진 E. 테일러(ITAC 리더십위원회)의 말은, “세상의 변화를 견인하는 예술”이 낭만적인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임을 강조한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Seanse Art Center, Courtney Ropp / Kristian Glomnes
왜 만나야 하는 걸까 : 연대의 이유
연초에 동료 활동가들과의 작은 만남을 시작하면서, “우리끼리의” 하소연과 토로, 현장의 간증과 열띤 “으쌰으쌰”의 시간 끝에 한 동료가 소리쳤다. “아, 이런 전도 잔치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는 모두 웃었다. 왜냐하면, 첫 만남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설명하기 너무 어렵다고 앞다투어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럼 예술가는 아니신 거죠? 아 사회복지 같은 거구나? 페이가 있는 직업이야? 재능기부 같은 건가요?)
실제로 예술교육활동가가 현장에서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사업계획서’나 ‘콘텐츠 구성’에는 녹아있지 않다. 홀로 만나야 하는 다수에 대한 부담, 부단히 들어주고 읽어주어야 하는 감정적·예술적 노동, 반복적인 시간표 vs 계속 바뀌는 사람들, 활동에 대한 인정과 정서적인 보상의 박약함, 타인의 ‘나로 사는 시간’을 위해서 나 자신이고 싶은 순간을 포기해야 하는 피로감이 겹겹이 쌓여있다. 하지만, 바쁜 일정, 혼자 하는 일의 특성, 사업 내에서의 은근한 경쟁 구도는 동료와의 만남이나 연대를 쉽지 않게 만든다. 이런저런 이름의 행사에서 우리를 뭉클케 하는 것은, 화려한 수치상의 성과가 아니라, 내 동료의 신박한 창의성과 묵묵한 애정을 엿볼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ITAC은 2012년 시작되어 2년마다 진행되는 국제예술교육활동가 모임이다. 각 문화에 따라 다양한 이름 (티칭아티스트, 사회참여 예술가, 커뮤니티 예술가 등)으로 불리는 이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봉사하고, 향상시키고, 반응하는” “공동의 네트워크”이다. (출처 : www.itac-collaborative.com) 영어로 진행되는 언어의 장벽, 지역의 이동과 참여 비용의 부담, 다소 개념적으로 느껴지는 용어나 선발되는 콘퍼런스의 방식이 여전한 장벽으로 있지만, 풀뿌리 예술가들과 현장에 초점을 맞추는 의도는 선명하다.
오슬로시 시민회관 격인 센트랄렌(Sentralen)에서 3일간 36개국의 80명의 활동가가 진행한 60개 세션은, 예술과 교육, 환경, 사회라는 주제를 넘나드는 축제에 가까웠다. 각기 다른 타이틀과 정체성을 가진 풀뿌리의 활동가들이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고, 현장의 어려움이나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을 모색하고, 활동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전문성을 나누고 서로 친구가 된다. 촘촘한 일정표보다 이 행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세상을 예술로 바꾸고 싶어 하고, 사람을 예술의 힘으로 매혹시키는, 전 세계의 열정적인 ‘오지라퍼’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3일간의 끝없는 환대와 수다, 공동의 문제해결, 공감을 퍼붓듯이 받다 보면, 이 뜨끈한 연대 안이라면 세상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받는다. “우리의 소개에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는 나의 소소한 바람은, 개인적 소망을 넘어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 활동가에 대한 인식변화, 자기돌봄의 중요성, 연대의 확장이라는 어젠다를 품으며 확장되었다.
  • 체화된 촉매제: 당신 과/을/대해/안의/위해 춤추기
    ⒸSeanse Art Center, Yaniv Cohen / Kristian Glomnes
촉매제가 된다는 것: 타인의 이야기를 몸으로 구현하기
한국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주축으로 구성한 아이택허브(ITAC Hubs)로서 뉴질랜드, 노르웨이, 미국과 함께 국제적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대면하는 오슬로의 행사에 나는 개인 활동가인 발제자이자, 동시에 한국허브의 퍼포먼스의 디렉터로 참여했다. “무용이 포함된, 한국허브의 참여형 워크숍”이라는 제안 앞에서, 현장의 최전방에서 매일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풀뿌리의 활동가들이 떠올랐다. ‘무용샘’ ‘비정규직 교사’ ‘무용강사’ ‘보조강사/주강사’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 국제교류나 티칭 아티스트리(Teaching Artistry)의 개념적 정의와는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기꺼이 사람 사이의 “촉매제”로 녹이는 사람들. 현장에 온몸을 담근 이들의 목소리를 “매개체”로서 전달하고 싶었다. ‘체화된 촉매제: 당신 과/을/대해/안의/위해 춤추기(The Embodied Catalyst; Dancing with/of/about/on/within/for you)’라는 긴 제목은 스스로의 몸이 촉매제가 되는 무용예술교육가의 헌신을 의미한다. 영상, 음악, 춤, 퍼포먼스가 결합된 이 행사를 위해 13명의 무용 분야 활동가를 인터뷰했다.
“나는 나를 꺼내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춤을 출 때만큼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래서 춤추는 걸 제일 좋아해요.” (이범건)
“가장 좋았던 거는 뭐냐면 제가 정말 아이들 작업에서 사심 없이 아이가 돼 볼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 아이들이 굉장히 흥미롭죠. 왜 흥미롭냐면 읽히지 않아요. 거기에서 오는 그런 희열감이랄까.” (밝넝쿨)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에게 무용수업을 할 때) 처음엔 반응이 되게 부정적이었어요. “이게 춤이 맞아요? 이게 춤이 된다고?” 이러셨는데. 만남을 거듭할수록 일상적인 움직임도 춤이 되는구나, 오늘 일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춤이 되는구나, 느끼게 되었어요. 걸레로 닦고, 땀 한 번 닦고, 그리고 밀고.” (나혜영)
말보다는 몸의 표현이 편해서 춤을 사랑한다는 무용수, 지하철 노동자들의 청소 움직임을 안무한 보조강사, 거리두기로 비닐장갑을 끼고 강강술래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교 예술강사, 가정폭력 생존자들과 함께 울면서 춤추느라 소진한 무용가, 각박한 세상에 “웃기는 춤학교”가 꿈이라는 안무가, 먹기 위해 죽이는 동물에게 관심을 갖게 된 무용수. 미처 다 담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영상과 번역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현장으로 전달되었다. (객석에 간간이 들리던 훌쩍임, 모두가 일어나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현장의 열기와 반응으로 미루어 보자면 그렇다.)
배효섭 안무가를 포함한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여름 내내 인터뷰 영상을 돌려가며 활동가 13명의 언어와 움직임 습관을 분석했고, 자신을 “촉매제”로 움직임으로 그려내었다. 그래서, 3년간 가파른 골목길과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춤추던 김래혁 무용수가 인터뷰 영상과 똑같은 의상과 춤으로 오슬로의 객석에서 등장했을 때, 짧게 퍼지던 탄성을 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동료의 의미를 몸으로 보여 달라는 요구에 유지영, 이종현 예술교육활동가는 이렇게 답했다.
“동료… 참 어렵다…. 이렇게 딱 서서 같이 쳐다보는… 45도 위를.”
오슬로에 온 현장의 참여자들은 이 장면에서 나란히 함께 손을 잡고 위를 함께 바라보았다. 무려 “세상을 바꾼다”는 어렵고 고단한 과업 앞에서 예술교육활동가들의 공동의 만남이 주는 의미가 눈앞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인정도 성취감도 충분하지 않지만, 내 손을 잡은 동료와 같은 방향 어딘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 신뢰 하나로 고단한 내일의 수고를 이어갈 의지는 갖는 것. ITAC을 비롯한 모든 연대의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닐까 싶다.
  • 체화된 촉매제: 당신 과/을/대해/안의/위해 춤추기
    ⒸSeanse Art Center, Yaniv Cohen / Kristian Glomnes
제환정
제환정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다. 예술교육자, 창작자, 저자로 학교, 병원, 무용단 등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 [아르떼 365] 편집위원.
jaehj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