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특별한 감정에 휩싸여 이상한(?) 것을 줍거나 구입하거나 괜한 수고를 들여서 구하는 경우가 있다. 생활공간에 훌쩍 쌓여버린 그 이상한 것들을 마주할 때면 당시에 느꼈던 특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모르는 이와 마주 앉아있는 것처럼 난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당시의 주변 상황과 환경을 상기하거나, 당시의 감정에 작용했을 여러 자극들을 떠올려서 그 의미를 다시 찾아보려고 시도한다. 이상한 것들을 폐기하지 않고 여기에 계속 두어야 할 마땅한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련의 되새김질 과정에서 당시의 추상적이고 모호했던 감정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구체화 되고, 납득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 지점에서 창작의 단초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에게 그 이상한 것은 ‘돌’이다.
  • <마르크스의 책장>(2015)
2010년 1월쯤이다. 성인이 되어 떠난 지 오랜 옛 동네를 산책할 기회가 있었다. 변화가 더딘 동네의 골목을 거닐며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여전히 낯익은 골목을 익숙히 걷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어쩌면 어린 시절 살가운 친구였던 아무개가 살았을지도 모를 어느 양옥집 앞에 다다랐다. 집의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하지만 철근이 드러나고, 덧칠된 페인트가 부스러진 돌덩어리들이 담벼락 밑에 전시하듯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특별한 감정에 이끌려 서둘러 그것들이 폐기물인 것을 확인하고, 꽤 묵직했던 덩어리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 특별한 감정은 희미해진 어린 시절 추억의 유산을 발굴한 것 같은 흥분과 설렘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돌을 옮기느라 생긴 두 팔의 근육통이 사라질 무렵, 당시의 흥분과 설렘은 사라지고 책장에 놓인 돌덩어리들은 읽히지 않는 책처럼 먼지만 쌓인 채로 그렇게 놓여 있었다.
  • <기둥 왼쪽>,<기둥 오른쪽>(2015)
돌_수석 가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책장은 어느덧 돌덩어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먼지도 함께 가득 쌓였다. 처음 돌덩어리들을 발견하고 책장에 가져다 놓았을 때의 흥분과 설렘은 더 이상 느낄 수 없고, 무겁고 차가우며 눅눅한 공기가 방에 가득했다. 수집의 고생과 폐기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 좁은 책장을 여전히 차지해야 할 어떠한 이유라도 만들어야 했다. 때마침 동네를 오가며 지나쳤던 수석 가게를 떠올렸다. 1~2평 남짓의 작지만 해가 잘 드는 점포 안은 사방이 돌로 가득했다.
  • <내게 무슨일이 생겼어>(2015)
“어서 오세요. 별 이상한 걸 가지고 오시네,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수석 가게 주인은 나의 두 손에 들린 이상하게 생긴 돌덩어리를 살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그 차분함에 이끌려 돌덩어리들을 언제, 어디서, 어떤 기분과 생각으로 수집해왔는지, 그리고 왜 이것들을 가져왔는지 속내를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오랜만에 다시 그 개별의 시간들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맡겨놓은 돌덩어리들을 가져오기 위해서 다시 찾은 수석 가게의 탁자에는 주인의 신기술로 가공된 나의 돌덩어리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처음 발견하고 수집할 때의 흥분, 설렘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 덩어리란 게 쉽게 변하진 않지만, 그것이 놓였던 시간, 공간, 상황에 따라 전혀 달리 보이기도 해서…”
그리고 돌_하얀 마음, 까만 마음
여전히 수석 가게 주인은 내가 이상한 돌덩어리를 가지고 당시의 감정 따위를 털어놓으면, 차분하고 진득하게 들어준다. 그리고 곧 사라져 버린 당시의 감정을 나무 받침 하나로 되살리거나 새로운 감정으로 유도한다. 아마도 수석 가게 주인은 ‘그것을 그것으로 보이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 기술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어떤 편견도 없이 대상을 바라보고, 그로인한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보여줄 수 있는 마치 ‘거울’ 같은.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기술.
  • <하얀마음>,<까만 마음>(2021)
처음에는 그저 당시의 기분과 감정을 기념하려고 가볍게 수집한 것들이 책장을, 이제는 작업실의 한 벽면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아졌다. 다시 모르는 이와 대면하듯 낯설게 돌덩어리들을 마주한다. 다시 그 돌덩어리를 발견했을 때의 주변 상황과 환경을 상기하고, 그때의 감정에 충실해 본다.
장성진
장성진
미술작가. 주변부에 놓인 개인의 서사가 사회에 작용하는 원리를 탐구하고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삶의 반경에서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관계로부터 사건이나 상황을 수집하고 일상적 오브제와 조각, 행위 등을 매개하여 표현하고 있다.
bonnd401@gmail.com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