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없는 4층 서점
“어휴, 여기까지 누가 올라오나?”
안 그래도 사람들이 책 사러 안 오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까지 누가 책을 사러 오겠냐는 걱정스러운 물음이다. “어휴~ 그러게요~ 저도 신기해요!” 걱정에 감사하며 굳이(?) 힘겹게 4층까지 오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이젠 일상이 되었다.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4층에 서점이라니.
잠시서점도 처음엔 1층에 있었다. 서점에서 잠시 쉼을 얻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정하고, 공간을 꾸미고 책을 매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13평 아담한 공간엔 참 많은 주민이 방문해 주셨었다. 하지만 1층에 있으면서, 확신이 더 생겼던 것 같다.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잠시 쉼을 얻고 갈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에 있으나 그만이었다. 그래서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니 나가달라는 건물 주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가면서도, 목 좋은 자리보단, 잠시서점에 맞는 공간을 찾아 다녔 더랬다. 그래서 지금의 4층 공간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다소 올라오기 힘든 곳으로 이사 한 덕분에 서점은 착한 월세에 25평이라는 넓은 공간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쓰리룸이라 소모임을 많이 하는 잠시 서점의 특성에 맞게 활용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층에 있으나 4층에 있으나 오시는 분들은 한결같다는 것. 4층에 올라오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는 분들이 있어 오늘도 잠시 서점은 존재한다.
저희 서점은 책만 있지 않아요
잠시서점은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도심 속 사랑방이다. 처음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서점을 열기 전에 직장인이었던 서점지기는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을 앓으며 행복한 일을 찾아서 고민하게 되었다. 선하고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은 서점지기는 이 행복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이 지금의 잠시서점이 되었다. 잠시서점에서 가장 처음으로 기획했던 프로그램은 ‘끝장 프로젝트’였다. 다소 과격한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책의 ‘끝장(張)’을 보자는 의미의 프로젝트였는데, 엄청난 취미 부자였던 서점지기가 취미 책을 사곤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쪽 책장에 앞쪽만 들여다본 취미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번뜩, 함께하면 이 책들의 끝장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5분 스케치』를 시작으로 책으로 하는 독학 모임을 만들었다. 교육업에 있었던 경험을 살려 책의 진도표와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모임에서 활용했다. 한 달 동안 취미 책을 함께 하고, 끝장을 찍으며 책걸이를 하는 것이다. 지기의 생각보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드로잉을 시작으로 그림, 캘리그라피, 글쓰기, 음악, 필사, 각종 공예 등 30가지가 넘는 취미 독학 모임이 서점에서 이루어졌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서점에서 책보며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이 대단할까 싶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몰입하는 경험을 하고, 함께하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끝낼 수 있다는 작은 성취감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셨다.
끝장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신기하게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임원들 스스로 독학 모임에서 발전해 전문가에게 배워보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강사를 초청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서점에는 독학 모임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강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떤 모임은 지기가 없어도 참여자들끼리 서점을 열고 모임을 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임들이 발전하여 북 토크나 강연, 공연, 캠페인,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친한 지인이 서점이 아니라 문화센터 아니냐고 했다. 아쉽지만 문화센터는 아니고 ‘동네 사랑방’이라고 했다.
잠시서점은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함께’라는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쫓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서점에 방문한 분들이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책이 삶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길, 무엇보다 각박한 도심 속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취향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의 긍정적 경험이 마음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
  • 끝장 프로젝트
서점에는 연령제한이 없습니다만
처음 서점을 열었을 땐, 독립서점에 관심 있는 2~30대 젊은 청년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서점을 운영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프랑스자수 모임의 30대 후반 선생님(모임원들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했다)은 직장 때문에 대전에 오게 되어 아는 사람도 없고, 모임을 찾으니 이상한(?) 곳이 많았다고 했다. 이상한 모임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외로웠었는데 겨우 마땅한 곳을 찾았다며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필사 모임의 40대 선생님은 아이들 등원 시키고 오는 이 시간이 유일한 낙이라며 잠시라도 일상을 벗어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셨다. 캘리그라피 모임 때 오셨던 50대 선생님은 엄마로, 아내로, 그동안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이 모임에 와서 그저 이름을 불릴 수 있어서 오신다고 했다.
대전시민이 만드는 대전 그림책 만들기 ‘대전을 이읍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0대까지 전 연령이 함께 그림책 만드는 작업을 했다. 지기가 처음에 생각했던 서점 이용 연령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제각기 오시는 이유는 달랐지만, 책과 문화예술에는 연령이 필요 없었고 오시는 모든 분은 인생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책을 매개로 취향 공동체를 만드는 잠시 서점은 여전히 ‘전체이용가’이다.
  • 대전을 이읍니다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는 서점지기의 추천: 김소울 『마음챙김 미술관』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책 많이 읽으시겠어요~ 부러워요” 하는 이야기를 곧잘 듣게 된다. 아마 서점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과 책을 읽으며 가끔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상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작은 독립서점의 운영자는 몸이 하나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아쉽게도 책 읽을 시간도 많이 부족하고, 가끔은 ‘읽어야 해서’ 읽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키워드는 ‘마음 챙김’이다. 이에 관한 책들이 정말 많은데 예술을 사랑하는 서점지기이기에 예술을 통하여 마음 챙김을 하는 『마음챙김 미술관』(김소울, 타인의사유, 2022)을 살포시 추천해 본다. 이 책은 그림과 그림을 그린 작가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인간관계를, 삶을 들여다보고 챙길 힘을 준다.
“뭉크의 삶에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정리해 보았을 때, 그가 이러한 절망의 시간들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했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그림으로 대중들에게 더 다가가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뭉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선택했고 오슬로 대학에서 벽화 의뢰가 들어왔을 때, 회복의 희망을 담은 그림 <태양>을 그려낸다. 다음 페이지에 소개하는 이 그림을 보면, 밝은 태양빛이 그림 구석구석까지 빛을 전달하고 있다. 우울한 감정과 상처받은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던 작가인 만큼, <태양>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희망의 빛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뭉크는 자신의 삶을 불안감 속에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태양을 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 『마음챙김 미술관』 중
우리에게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뭉크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평생을 죽음에 대해 힘들어하고 두려워했지만, 그림을 통해 일어날 힘을 얻는다. 이 책은 우리에게 예술은 보이지 않는 가치와 회복 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은 잠시 멈추고 예술가가 되어 힘을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상은
이상은
문화예술교육기획자. 서점과 학교에서 그림책 만들기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관심이 많으며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공동체주의자이자, 꾸준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쉼과 취미를 테마로 하고 있는 잠시서점을 운영하며 선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인 주식회사어모먼트 대표를 맡고 있다.
mylovehs7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