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아닌 지역, 지역을 일굴 사람
지역(region), 지방(local), 지구(district), 고장(home), 마을(town), 동네(village), 골목(street) 등 유사해 보이는 이 용어들은 사실 다른 층위의 고유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 또는 수도의 상대어 개념으로 인식되면 인구감소나 지방소멸 등의 위기상황과 맞물리게 되고, 지역은 이를 타개하고자 독자적 전략과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부상하는 ‘로컬’이라는 단어는 위의 다양한 용어의 속성을 포함하면서 지역이 희망과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로컬푸드, 로컬크리에이터, 로컬콘텐츠 등 처럼 기존의 지방이나 지역이라는 행정적 개념을 벗어나 지역에 감성과 창의성을 더한 긍정적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도 「지역문화진흥법」과 지역문화진흥원의 탄생에서 보듯, 이제 지역문화는 지방문화나 향토문화의 범주를 넘어 독자적 정체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중앙 단위의 정책이나 사업의 권한도 점차 지역으로 이관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지역 중심과 지역 기반의 전략과 실천방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에 지역에서는 시설, 축제, 사업 등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화도시, 관광거점도시, 창의도시 선정이나 엑스포나 박람회 등 메가이벤트 유치를 통해 도약의 계기를 만든다.
사람을 키우는 다양한 방식
그러나 늘 관건은 이러한 유무형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과 콘텐츠를 만들고 시설을 운영할 전문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점이다. 지방이탈이나 수도권과 대도시 쏠림현상은 문화예술계라 하여 예외가 아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역마다 다양한 전문인력 교육과 양성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데 그치고, 실제로 정주, 취업, 창업 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외지인이나 이주민을 지역에 유치하고자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 또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정작 오랫동안 지역을 묵묵히 지켜온 토박이들은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목적으로 최근 어디 살아보기, 얼마 동안 살아보기 등의 소위 일시적 체류 프로그램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여러 부처와 기관이 다투어 다양한 사업과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 면에서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은 나름 독자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정 지역에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가진 청년들을 한 달 남짓 거주하게 하는데, 이 기간 동안 단순히 살아보기를 넘어 지역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결과를 발표, 공유하게 하는 방식이다. 비록 문화예술 분야만을 위한 사업은 아니며 작가 레지던시 사업과도 다르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거나 예술가, 예술강사, 기획자, 연구자, 기술인력 등인 점이 고무적이다.
함께 살며 고민하기
필자는 몇 년 전 이 청년마을 사업 수립 초기에 약간의 자문을 한 인연으로 1호 대상지인 목포 ‘괜찮아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후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강원도에서는 작년 강릉이 선정된 것을 필두로 올해 속초, 태백, 영월 등까지 확대되었다. 그중 강릉, 속초, 태백 세 지역은 운영진에게 계획 단계에서 크고 작은 조언을 한 터라, 참여자가 확정된 후 일종의 멘토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수행되는 일반적인 강의나 자문 등에 무슨 새로울 게 있겠는가 하는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하여, 이번만큼은 매우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이며 참가자와 운영진 모두에게 상시 밀착한 현장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싶었다.
결론은 실제 이들과 함께 살아보며 운영진과 다각적인 교육 방식과 내용을 패키지로 꾸며본다는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 지역조사, 강의, 개인 멘토링, 팀 프로젝트 코칭, 결과물 컨설팅, 현장답사, 발표회 코멘트,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구축 등 실로 가용 가능한 모든 기법과 방식을 총동원했다. 정해진 시간에 미리 짜인 교육을 넘어 생활과 체험, 휴식과 여행 등을 함께하며 수시로 꿈과 희망, 좌절과 고민, 시장과 정책, 창업과 취업, 개인적인 애로사항까지 수시로 세세히 소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뾰족하게 다듬게 되고, 필자 역시 멘토링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잠시 그 동네의 주민이 되어 생활의 기반을 둠으로 참여관찰자의 입장으로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높이고 객관적인 전략을 구상해보는 시간도 되었다.
충돌을 넘어, 가능성의 탐색
이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은 지역에서 활동할 청년을 모으고 키우는 사업의 성패는 전적으로 지역의 운영단체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매력도가 자동적인 모객으로 이어질 것 같겠지만, 사실은 그 지역을 기반으로 쌓아온 운영단체의 기획력과 경험, 그리고 인적자원과 네트워크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번 사업도 강원도 운영단체는 이미 지역에서 문화앵커 역할을 하고 있는 유수의 단체들이라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 주체인 정부나 지자체는 운영단체를 하청구조의 대행사가 아닌 선의의 파트너로 존중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모든 프로젝트에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법. 이 사업도 첫 기가 끝난 시점에 약간의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다. 이른바 지역살이 쇼핑을 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인의 불만을 공개적인 민원으로 제기하는 일부 참여자의 행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업 진행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민원에 대해 운영단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보상 또는 사과를 요구받는 상황에서는, 운영단체는 별 수익도 없이 참여자 요구만 들어주는 역할로 전락하여 사업에 참여할 동기가 떨어질 수도 있다.
아울러 성과의 유형이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성과 기준을 이주, 정주, 창업, 취업 등으로 지나치게 국한할 경우, 그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주나 창업 외에도 체류 기간 연장, 일시적 취업, 재방문율 증대, 교류의 증진 역시 중요 성과요소로 활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정의 진정성, 운영단체의 역량, 참가자의 소양, 결과물의 활용, 성과의 다변화, 사후 관리 등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될 때, 이런 지역체류기반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방식은 그 실체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선철
이선철
예술경영인이자 문화기획자. 감자꽃스튜디오의 대표이며 연세대, 국민대, 경희사이버대, 야쿠츠크 북동연방대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6기 이사, 2기 문화예술교육종합계획수립 추진위원, [아르떼365]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이번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 강릉, 속초, 태백 지역 멘토로 참여하고 있으며 직접 함께살기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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