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좋았다.
지금은 미래 식량으로, 애완곤충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면들이 많이 생기는 듯 보이지만 예전 내 주변에서는 ‘징그러운 벌레’나 ‘해충’ 정도로 생각하고 크게 좋아하지 않았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나는 곧잘 산에서 곤충을 관찰하거나 집으로 데려와 내 방에서 몰래 키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은 곤충을 좋아하는 나를 혼내거나 학교에 간 사이에 곤충을 다시 산에 풀어주곤 하셔서 나와 곤충 간 관계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었다.
그런데도 곤충이 좋았던 점은 무엇일까?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집 한쪽에 있던 『파브르 곤충기』가 재미있었다. 다만 남들과 달랐던 점은, 책을 들고 산으로 갔다. 책에서 나온 내용으로 산속에서 낙엽을 뒤집고, 돌을 들추고, 썩은 나무를 분해해 보니 정말 다양한 곤충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곤충들을 키우면서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되는 탈바꿈 과정들이 굉장히 신기했다. 또 다른 매력은 색이었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색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감각을 깨워주는 것 같았다. 이러한 다양한 매력들 덕분에 어린 초등학교부터 꾸준히 곤충을 관찰하고 사람들에게 교육하며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기후변화로 인한 교목 군락의 집단 고사
(ALLEN, Craig D., et al. 2010)
죽어가는 나무가 보내는 신호
집 나간 꿀벌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환경적인 문제들의 원인이 기후변화, 더 나아가서는 기후 위기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처음 느낀 기후변화는 2010년 2월, 전 세계 20명의 학자가 기후변화로 인한 나무 집단 고사에 대해 발표한 논문을 읽고 난 후였다. 나무의 집단 고사 핫 스폿 중에는 한국의 한라산 구상나무림에 관한 내용도 사례로 있어 이를 확인하고자 조사팀과 함께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에 도착해서 실제 논문 속 구상나무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영실, 어리목, 돈내코, 성판악 4개 코스의 구상나무림을 확인하였는데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는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큰 교목들이 집단으로 고사하는 상황을 만들까? 먼저 나무들이 온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후 고사를 촉진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나의 기후변화 연구는 이렇게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한라산 구상나무림의 나무를 ‘살아있는 개체’ ‘초기고사’ ‘중기고사’ ‘후기고사’ 등 총 4가지로 나누어 곤충을 채집하기 시작하였다.
  •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단계별 곤충 조사(2012)
그 결과, 구상나무들이 고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휘발성 화학물질을 발산하고, 이는 나무좀(Bark beetle)의 훌륭한 먹이 신호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화학물질을 감지한 나무좀은 구상나무가 살아있을 때 파고들어 껍질 아랫부분을 파먹기 시작하고 초기고사 단계에 이르게 한다. 이후 하늘소(Longhorn beetle)와 같은 중‧대형곤충들이 구상나무에 산란하여 나무를 파먹기 시작한다. 날씨가 더워지고, 빙하가 녹는 기후변화를 들어왔는데 실제 현장에서 확인한 기후변화 영향은 충격적이라 과연 사람이 막을 수 있을까 싶은 의문까지 들게 했다. 이후 다양한 기후변화 영향에 따른 연구에서 곤충 분야로 참여하였지만, 결과를 확인할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던 중 다른 논문에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문장을 보게 되었다.
“기후변화는 꿀벌과 꽃이 동기화할 수 없게 만든다.”
이른 봄, 꿀벌들이 꽃샘추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많이 죽어가는 것은 학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의 내용은 기후변화로 인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꿀벌과(Apidae) 곤충들이 먼저 겨울잠에서 깨지만 꽃들은 개화하지 않아 아사한다는 것이었다. 봄철 평균기온 1°C가 올라갈 때마다 수벌이 약 9일, 암벌은 16일 일찍 깨어나지만, 꽃의 개화 시기는 6일 정도 빨라진다. 따라서 기후변화가 지속될수록 봄철에 아사하는 꿀벌과(Apidae)가 늘어나게 되고 지구상의 현화식물 중 약 80%를 넘는 충매화들의 번식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가 무서운 점은 생태계의 순환구조를 끊어내는 것, 그리고 생물 간의 상호작용을 붕괴시키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 아닐까.
기후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기후변화를 대할 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대응’, 기후변화에 맞추어 나가는 ‘적응’. 이 중에 기후변화 적응이란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 기후변화의 파급효과와 영향에 대해 자연·인위적 시스템의 조절을 통해 피해를 완화시키거나, 더 나아가 유익한 기회로 촉진시키는 활동을 이야기한다. 지금껏 겪어왔던 많은 경험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적응’에 가까울 것 같다.
2017년 처음 연구직을 떠나 사람들과 대면하는 교육직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과 교육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설레기도 했지만 겁나기도 했다. 다행히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교육을 주로 맡게 되면서 빠르게 적응하였지만, 여전히 기후변화는 나에게 오래된 숙제 같아 강의자료에 기후변화에 대한 챕터를 넣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았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후변화 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에 우연히 ‘시민 과학’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비록 국외에서 활용되는 사례를 적용하기에는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과하지 않게 시범운영을 하였다. 시민 과학자들을 모집하여 ‘식물 다양성’, ‘곤충 다양성’, ‘외래종 모니터링’ 3개 분과로 팀을 만들고 이론부터 실습까지 교육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참여자들이 연구진과 함께 1년 동안 모니터링을 수행했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시민 과학 이후 더욱 대중적으로 기후변화를 알릴 수 있는 교육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하게 된 것이 미국 전국 화분매개곤충 정원 네트워크(National Pollinator Garden Network, NPGN)의 ‘백만 개의 화분매개곤충 정원을 위한 도전(Million Pollinator Garden Challenge)’과 지구의 날 2020(Earth day 2020)의 ‘꿀벌 측정하기(Bee Counting)’이다.
대부분의 참여국들이 유럽권이며, 아시아권에서 한국은 해당 국가가 아니었지만, 한국식으로 재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했고, 처음으로 ‘나비의 정원’이라는 화분매개곤충 정원(Pollinator Garden) 교육을 시도하여 좋은 호응을 얻었다. 교육참여자들은 기후변화와 꿀벌, 나비, 새 등 화분 매개곤충의 관계에 대해 학습하고, 수목원 속에서 화분매개곤충을 관찰하며, 마지막으로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거나 휴식처로써 작은 화분매개곤충 정원을 제작하여 아파트 난간이나 베란다에서 키운다. 그 후 SNS에 꿀벌을 보호하고 있다는 #Bee_my_Friend #My_Pollinator_Garden과 같은 해시태그를 걸어 올려주는 것이다.
  • 국립세종수목원과 발달장애인학교가 협업하여 만든 화분매개곤충 정원 키트와 ‘나비의 정원’ 교육프로그램(2022).
    화분매개곤충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기획‧운영되고 있다.
꼭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야외에 계절별로 꽃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한 정원을 가꾸거나 화분을 유지하는 것도 훌륭한 꿀벌들의 안식처가 된다. 이러한 꿀벌 보호 활동들이 결국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해 더욱 파급력 있게 전달되고 간단한 활동들을 통해 꿀벌 개체 수를 증가시켜주면 식물 다양성이 함께 보전되고 기후변화에 대한 피해를 완화하는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종우
남종우
곤충생태학을 전공하고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에서 ‘기후변화 취약 산림곤충 조사 및 정보구축’ 연구를 주로 수행하였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 교육서비스실에 근무하며 곤충교육과 시민 과학자를 양성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njw0719@koagi.or.kr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