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문화적 전환을 꿈꾸는 문화도시 정책을 둘러싸고 비판적 시선과 함께 여전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가 공존하고 있다. 문화도시 차원에서 다양한 시민들의 성장 지원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그래서 도시 전체를 일상화된 배움과 도전, 창조의 공간으로 만드는 게 가능은 한 건지. 생각해보면 기초지자체 도시들에서 이 정도로 진지한 고민을 또 언제 해봤나 싶다.
지역에, 특히 지역 문화판에 사람이 없다는 푸념이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인구 소멸이 눈앞의 현실이 된 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수도권 대도시마저 지역의 문화를 일궈갈 신뢰할만한 워킹그룹이 여전히 부족하다. 얼핏 보면 단순 강좌형 프로그램부터 관계 중심의 학교형 프로그램까지, 지역마다 시민문화, 문화기획, 청년로컬 등 양성과정이 제법 많이 운영되는데도 말이다. 양성과정을 거친 그 많은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교육프로그램 실행은 있으나, 정작 지역이 왜 사람을 키워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키우고 싶은 것인지,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본질적 질문이 사라진 탓일까. 철학자 한병철은 ‘행동 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이라 했던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그 어딘가의 고민 속에서, 지난 7월 문화도시 수원 사업의 일환으로 ‘수원은학교 포럼 – 우리는 서로에게 학교가 될 수 있을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배움을 기획하는 과정, 기획을 배우는 관계
Learning by Doing, Doing by Learning. 하면서 익히고 또 배우면서 새로운 실행으로 나아가는 총체적 경험을 기획하는 과정을 관통하는 것. 결국 ‘태도’와 ‘관계’다. 이번 포럼의 발제와 토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했던 단어이기도 했다. 현장과 전문가 그룹, 행정이 관계 맺고 연결되는 구조는 서로 다른 언어들간 ‘번역’ 과정에 비유할 만한데, 예술가, 교육자, 행정가, 시민의 언어들이 만나고 부딪히며 소화하는 ‘번역’의 과정에는 상호존중과 학습의 태도, 이해하려는 의지 그리고 절대적 시간이 필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대개의 양성과정은 행정(문화재단)의 검색 과정, 뒤이은 전문가 그룹 섭외와 과업 의뢰가 끝나면 서로의 언어를 대면하며 번역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게다가 문화재단 내 잦은 인사이동과 순환보직으로 담당자의 전문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담당자로 리셋된다. 올해 4년 차에 이른 ‘도봉X비커밍 문화기획학교’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지속적인 상호학습과정에서 문화행정(무려 4년간 같은 팀장님이 총괄!)과 교수설계자, 졸업생들이 함께 성장하며 끈끈한 동료 의식이 형성되면서 서로에게 학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로 만난 동료, 안 싸우면 다행이야
일로 만난 동료가 일로만 머무르지 않는 관계, 함께 성장하고 상호지지하는 우정의 관계가 가능할까? 시기, 견제, 질투로 안 싸우면 다행인 게 현실의 조직문화이기도 하다. 문화정책 중에서도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정무에서 실무까지, 사업 규모와 미친 속도감에 다종다양한 이해관계 조정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난이도를 자랑한다. 실무조직의 피로도가 높고 당연히 싸울 일도 많다. 과다업무를 돌파하는 여러 문화도시 중 춘천문화도시센터의 조직문화 분투기는 다정한 생존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직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일 잘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니!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오게 마련이다. 몰입의 경험이 상호성장의 조직문화로 단단하게 형성되는 순간, 지역문화재단은 현장의 믿을만한 동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장 스스로가 동료 기획자를 찾아 호명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동료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의왕시 거점 공간을 기반으로 2016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은 청년이 활동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 공동체로 서로를 지원하고 응원하며 협업하고 함께 지속적으로 놀고먹기 위한 궁리를 해나가고 있다. ‘문화기획찍어먹기’ 과정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의 문화기획 경험을 정리해 보고 새로운 동료 만들기의 기회도 가져봤다.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욕망과 아이디어를 문화기획으로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가 새로운 친구와 동료를 만나는 장이 되어야 하기에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한두 번이면 족하고, 대부분 일이 없으면 흐지부지되지 않는가.
새로 남겨진 질문들
포럼은 끝났고,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도 남겨진 질문들이 머릿 속에 맴돈다. 사람을 업무 담당자로만 인식하지 않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개인으로 호명하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 것으로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붕붕 떠다니는 문화정책 언어들을 잘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개개인의 경험과 실험들이 모래알처럼 사라지지 않고 상호학습의 밑거름이 되는 촉촉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까, 달리는 짐마차에 쌀가마가 무섭게 쌓이고 있는데 한가롭게(?) 본질적 질문을 하는 사람을 조직은 품어줄 수 있을까.
파스칼 키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자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라 했다. ‘타인을 변화시키는 힘은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라고 하니, 나부터 배우는 기쁨을 주변에 전염시켜야 할까.
  • [2022년 문화인재양성 수원은학교 포럼]우리는 서로에게 학교가 될 수 있을까 (영상 다시보기)
이선옥
이선옥
한량처럼 살고 싶은 소음인. 하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문화예술교육 허브사이트 ‘아르떼’와 ‘웹진땡땡’을 만든 시조새였던 이유로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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