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세계에 팬층이 두터운 고무신을 인터뷰어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사전 질문지를 면피하듯이 건넨 터라 뭘 물어야 하는지 진짜 물음을 물고 가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무신을 알고 지낸 지는 몇 해가 되었지만, 이렇게 사람을 탐구하는 일로 만나진 않았기에 갑자기 낯선 이방인을 마주하는 느낌도 든다. 눈앞에 닥치니 안이했던 마음가짐이 기다랗고 끈적한 한숨을 내뱉는다. 껌을 씹듯이 입 근육을 좀 풀어본다. 하지만, 껌딱지가 붙은 신발 마냥 발걸음이 어딘가 불편해졌다. 고민하지 말자. 고무신이 술술 말해주겠지, 선수가 수다 꽃을 피워주면 나는 꽃꽂이만 잘하면 되는 일 아닌가.
역시나 미팅은 즐거웠다. 그리고 맘 편한 일주일이 흘렀다. 노트북 자판을 토닥토닥 두드려 보자마자 불쑥 알게 되었다. 이대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질문이 시답잖아 고무신을 보여줄 수 없었다. 고무신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낭창하고 유들유들하다. 날렵하고 매섭기도 하다. 게다가 스킨십과 공감력도 좋다. 쿵! 다시 만나야 한다. 근래 도시와 도시를 멀리뛰기하고 있는 고무신이라서 어디쯤 있으려나 했는데, 다행히도 타이밍 좋게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숨 돌리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으니 산처럼 쌓인 클로바노트가 어서 암호를 누르라고 손짓한다. 물러설 곳 없는 나는 꽃꽂이가 아니라 고무신이 오른 산등성이를 따라 등반해야 한다. 새로운 스트레스다.
고무신의 발은 코보다 빠르다
“뭐 달라진 것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좀 바뀐 일상인 거죠.”
그래도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조건들이 달라져서 불편한 지점들이 생겨났는데, 고무신이 느끼는 문제에는 뭐가 있을까요?
“이거는 근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져가야 할 지점일 것 같은데요, 적은 인원으로 만나다 보니까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들을 수 있고 그 가운데에서 생각해내지 못했던 뭔가가 또 반짝 떠오르기도 하면서 관계의 밀도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시 숫자가 많아지는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코로나 시기의 밀도와 농도 짙음을 더 추억하는 마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본질적인 건 마스크 내지는 코로나를 넘어서서 문화예술교육의 현주소가 어떤 밀착감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를 그동안 좀 보여줬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의 활동이 살갑게 녹아 있는 결과물들이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유아들에게 귀 기울여 들었던 이야기라던지 기관 담당자가 나를 화나게 했던 지점들 … 엇! 죄송합니다~”
고무신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달려간다. 앗! 어디선가 고소한 탄내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고무신의 발은 코보다 빠르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찐 감자가 수북이 등장했다. 역시 먹방은 모두를 화합하게 하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날씨가 좀 눅눅해서 그런지 이런 햇감자의 포슬포슬한 감각을 유지하고 싶어지네요.
“포스포슬한 문화예술교육을 위하여!”
놀이는 생존 도구다
고무신의 브런치 ‘플레버PlayLaboR’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면, 놀이와 생존을 연결한 부분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비석치기를 하는데, 옛날에 우리는 돌 던지면서 돼지 잡고 호랑이한테 도망치기 위해서 던졌던 거 아닐까요?”
수렵 시절부터 내려온 유전자의 대물림이 놀이로 전환된 게 비석치기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거군요?
“그렇죠. 우리 몸에 흐르는 도망가고 쫓아가는 본능은 애들한테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황들인데, 인류의 진화 과정들에서 문화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결국 놀이에 담겨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들이 열심히 놀다 보면 저절로 제 목숨 살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이건 또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지표하고도 연결해 보면 잘 안 놀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놀아보았던 즐거운 기억이 없으니까 앞으로 살아가봤자 뭐, 이런 거죠. 그래서 논다고 하는 것은 순간의 즐거움과 재미를 내 몸에 축적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기억되고 녹아든 세포가 살아가면서 나를 더 오래 살게 해주는 요인이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놀이는 생존 도구 또는 생존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묘하게 설득력 있네요. 뭔가 논리적 근거가 무관한 듯싶은데도 놀이와 생존이 N극과 S극처럼 서로 들러붙는 느낌이랄까요.
“놀이로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나는 일이 노는 것이기 때문에 놀이가 일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을 놀이처럼 하는 걸 사람들이 다 원하는 거잖아요? 결국은 놀기 위해서 일해야 해 아니면 일하기 위해서 놀아야 해 이 개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생계와 연관 지어서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고무신을 호명하는 정체성이 ‘놀이’보다는 ‘노동자’에 대한 비중이 커 보이거든요. 노동자 고무신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를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밥줄이죠. 서브잡 또는 알바로 일하는 분들과의 변별성을 찾으려는 결연한 의지랄까요. 처음엔 저도 예술과 놀이가 혼재되어 있었거든요. 그때는 놀이 기획자, 놀이 예술가 같은 이름을 쓰곤 했어요. 그런데, 놀이가 예술이 될 수는 없다고 봐요. 예술 작업의 치열함과 놀이의 몰입과정이 유사할 수는 있지만, 놀이는 만나는 방식에서 관계성으로 물꼬를 여는 거고, 예술은 깊어짐에 대한 것이라 개별적이거든요. 다른 측면으로는 저한테 아이들은 사장님이거든요. 아이들은 부탁하는 존재가 아니라 요구하는 분들이예요. 아이들은 생각이 마구 날아다니지만, 손끝은 무딘 상태라서 어느 순간 멈춰있거든요. 그때 저 같은 종업원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높은 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고 싶어서 아등바등할 때 다가가서 무등 태워 드릴께요~ 하는 거예요. 그러면 놀이 전문가는 아니고 놀이 노동자가 맞는 거죠.”
  • 사진_구지원
아이들이 부르는 이름 고무고무
아이들과 함께 놀 때 어떻게 홀리느냐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핵심이죠. 홀리는 것과 바람 잡는 것으로 쓰~윽 따라오게 만드는 게 최고수죠. 그래서 고무신이라는 이름을 쓸 때 러버슈즈 고무신도 있지만, 저의 속뜻은 ‘북 고(鼓)’ 자에다가 ‘춤출 무(舞)’ 자를 쓰거든요. 북 치고 춤추면서 남들을 고무시킨다, 이게 바람잡이인 거잖아요. 아이들의 놀이판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끝까지 책임지는 게 아니라 바람만 잡아주고 내가 쓱 빠져나갔을 때 빈자리에서 생겨난 바람으로 그 자체에서 뭔가가 이루어질 때 제일 보기 좋고 뿌듯한 풍경이죠.”
아니, 저도 여태까지 슬리퍼인 줄 알았잖아요. 이렇게 사람의 안목을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말이죠. 속았네, 속았어!
“실제로 처음엔 러버슈즈 고무신이었다가 고무시키는 ‘치어업’(cheer up)으로 내가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고무신의 제일 큰 이슈는 ‘쓸모’였거든요. 우리 어렸을 때 고무신 가지고 별짓 다 했잖아요. 물고기도 잡고, 배도 되고, 트럭도 되고…. 자유자재로 트랜스포머가 되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몸에 근육도 빠지고 에너지도 있어야 되는데 하다 보니까 형질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바람이나 잡지, 뭐~”
변화가 일어났다. 놀이 근육의 생체 호르몬이 바뀐 것이다. 놀이판에 숨결을 불어 넣는 고무신(鼓舞神)으로의 승화. 이건 추앙해야 한다. 나는 다시 고무신의 활동을 압축적으로 그려본다. 사명감에 깃든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 도심을 활보하던 고무신이 아이들과 뒤섞여 놀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자기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내려놓고 슬쩍 물러난다. 마땅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 무엇에서 하고 싶은 대로 노는 아이들의 자발성을 독려하고 있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몸 씀 그리고 맘 씀으로. 너무나 니체적인 변화가 아닌가.
영업 비밀
저쪽 구석에서 아우라 뿜뿜하는 철가방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건 영업 비밀인데 여기 있는 나무 블록들을 애들 앞에 잔뜩 갖다 놓으면, 내가 입 뗄 일이 없어요. 손댈 일도 없고요. 애들은 그냥 그대로 뭐라도 하고 놀아요. 그럼 나는 어떻게 노나만 지켜보면서 애들이 잘 노는 거 쏙쏙쏙 빼먹으면서 다른 곳에 가서 전파하면 되거든요. 이건 놀이 배달통인데, 이전에는 놀이 보따리를 한 번 한 적 있었어요. 그런데 보따리는 평면적이어서 시선을 못 끌더라고요. 짜장면 시키신 분 하는 느낌으로 놀이 배달통이 된 거죠. 특이한 것은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저런 도구들을 넣었는데, 뚜껑을 연 아이들은 그냥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요. 배달통 외관도 그림 그리라는 소리 안 했는데 매직이 안에 있으니까 그냥 그리고 노는 거야~”
통 안에 뭐가 이렇게 많아요?
“별거 없어요. 당근마켓에서 오천 원 주고 산 낙하산, 아이들이 올라타면 끌고 다니는 거죠. 바닥 축축하면 깔개도 되고, 이건 베트남 아이들이 노는 고무밴드를 연결하여 만든 고무줄인데 줄넘기도 하고 나무에 매달기도 하고, 공기 알, 나무토막, 팽이도 있고, 콩주머니에 줄을 달아 놓으니까 돌팔매도 되고 맞아도 안 아프게, 이쪽 낚싯대는 대형 비눗방울 만드는 용도고, 요건 이렇게 하면 제기가 되고, 그리고 꼭 빠지지 않는 게 이 그림이에요. 브뤼겔의 <아이들 놀이> 그림을 어딘가에 펼쳐서 걸어놓는 거죠. 뭐 하고 놀아야 되는지 묻지 마! 이 그림 보면 다 있어요. 그래서 이 한통에 쏙 들어가 있어요.
오~ 좋다. 한통속! 어감은 한통쏙이 더 좋겠는데요? 마법의 램프처럼 전부 빠져나와서 신나게 놀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쏙 들어가서 숨어버리는 거죠. 함께 논 아이들만 비밀을 공유하는 한통속도 되고요.
코로나 심할 때 키트 배송사업들이 엄청나게 퍼져나갔잖아요? 놀잇감을 만들고 전달해주는 과정은 <한통쏙>과도 닮은 구조인데, 고무신이 생각하는 키트의 고질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한 가지 물건이 한 가지로 끝나는 건 장난감이고, 한 가지인데 이게 계속 확장되는 건 놀잇감이라고, 저는 좀 구분해서 쓰거든요. 아이들 손에서 검증받은 놀잇감은 오래가요. 스스로 만든 것들은 생명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키트는 짜고 치는 거라서 놀이가 될 수 없어요. 그건 그냥 아이들을 놀리는 거지. 자유도가 없는 놀이 급식 코스 같다고나 할까…. 다른 사건이 발생할 여지가 없잖아요.”
어찌어찌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손수 깎은 나무망치 선물을 동석한 모두에게 안겨주며 신영복 선생의 전언을 덧붙여준다.
“생각을 깨보라고 주는 거지, 뭐~”
하지만, 사진작가는 토르의 망치처럼 기울여 세팅해 놓겠다며 득템의 기쁨에 취해있다. 놀이 여우한테 홀린 찐찐한 하루 이틀의 인터뷰를 마친다.
  • 사진_ (좌) 이승준, (우) 필자
고무신
고무신

아이들과 노는 것을 일로 하고 있는 놀이노동자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논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노는 것 보다 현장 상황에 따라 그저 논다. 흙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에서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노는 아이들의 알록달록함을 배운다.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피어나, 그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 주워 아이에게 건네주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유아문화예술교육,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역아동센터 문화예술교육, 누리과정 놀이 연수 현장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저서로는 『자연에서 노는 아이』 『전래 어린이놀이의 분류와 활용프로그램 연구』 『고무신학교 놀이논술』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 『놀이보따리 놀궁리』가 있다.
페이스북 @gomsin
브런치 @gomusin
임상빈(임체스)
임상빈(임체스)
[아르떼365]에서 스스로 예술강사 노조위원장의 탈을 쓰고 편집회의 테이블에 앉는 투덜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교육예술연구팀 ‘잔꾀’로 활동하며, 요즘 에너지를 쏟고 있는 작업은 <말랑말랑하고 단단한 ⓁⒶⓂⓅ 시즌 2>가 있고, 영도에서 해양예술교육랩 <보물섬>의 출항을 준비 중이다.
홈페이지 zanque.modoo.at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