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앞에 놓여 있었을지라도 사적모임 인원제한 기준에 따라 삼삼오오 모였던 현장의 밀도가 좋았습니다. 공간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자유롭지 않았지만, 동네 안에서의 삶이 이전보다 풍성해지기도 했습니다. 고립감과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마음들이 연결되어 비정형적이고 비공식적인 만남이 작게 이어졌습니다. 작은 모임은 질문을 낳고 문제의식을 연결하여 학습하는 모임으로 변화했습니다. 수개월 간 매 주 한번 씩 만나던 모임은 일정정도의 학습 목표를 달성하고 해체되었지만, 생태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동료로 서로를 살피며 간간히 안부를 묻습니다.
급격하게 변하는 기술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쫄기도 했습니다. 덮쳐오는 기술에 대한 요구,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 체할 것 같아 머릿기름을 바른 바늘로 열손가락을 따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재빠르게 생산되어 나오는 문화예술교육 키트들이 택배로 도착했고 미안함을 덜어낼 정도의 기간 동안 쌓여 있다가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교육 현장의 본질적인 고민을 두고 그에 따라 필요를 이야기하고 적절한 선택을 위한 숙고의 과정은 부족했습니다.
“요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안부를 묻습니다. 대면의 시간이 많아졌고 현장 활동이 분주합니다. 타인과의 거리가 이전보다는 바짝 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꽤 오랜만에 땀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외부 일정이 많아지고 장거리 이동이 많아진 탓입니다. 그러나 마스크는 얼굴의 일부가 되어 33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더위 중에 줌(Zoom)으로 만나자는 제의는 오히려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 현장에 나오지 못한다는 동료의 연락을 받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느꼈던 불안과 공포, 줌의 효율성에 기대면서도 효과성 측면에서 미심쩍고 불만족스러웠던 것을 떠올려 보면 지금은 비교적 무던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학교는 무엇인가요?”
“여긴, 어디야?”
2022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는 동네의 초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학령기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빈교실이 생겨나고 있어 그에 대한 상상과 기획을 하는 <빈교실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학교는 등교하지 않고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등교하지 않고도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음을 확인하며 학교의 해체를 경험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일상적이었던 저학년 학생들은 공동생활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확인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공간의 실질적 사용자인 학생들과 함께 학교 질서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을 만들면서 온몸으로 마주하고자 했습니다.
“학교는 말이야, 여긴 말이야~”
아이들이 화답합니다. 아이들에게 힐링 공간, 멍 때릴 수 있는 공간, 쉼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공간이 학교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그득했습니다. 왠지 학교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노래방을 만들고 함께 모이고 섞이고 떠드는 광장과 학교에 꼭 있기를 바라는 매점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나눌 수 있는 작은 또래상담 공간과 은밀한 고민인형 자판기도 설치되었습니다.
지구의 문제부터 친구와의 관계, 강아지 산책을 시키며 생기는 소소한 문제들까지 스스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궁리하는 아이들, 친구를 초대하고 자신이 붙들고 구현해 낸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하고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통해 배웁니다. 그런 노력을 하는 ‘나’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과 삶의 모습을 만나야 할 용기도 얻습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상상하는 대면 방식과 비대면 방식은 무엇일까요?”
요즘 참견쟁이로 관여하고 있는 일 중에서 ‘블랜디드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이 있습니다. 대면학습과 비대면 학습의 장점을 결합한 학습 방식을 일컫는 말로, 이제는 혼합형 학습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 판단을 전제로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을 탐구해보기 위한 사업입니다. 대부분이 동영상 제작 배포, 키트 및 워크시트 제작 배포, 줌 활용과 현장 수업을 혼합하여 기획되어 있습니다. 지난 3년 간,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시도해본 일이 총망라 되어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생성된 질문과 기획자, 예술가가 말하고자 하는 언어는 희미한 채 말입니다.
요즘의 활기는 ‘드디어 마침내’(!) 맞이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잠시 멈춤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든 변이하고 급증하여 세상을 멈추게 할 바이러스와 함께하고 있음을 공동으로 경험했고 여전히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남긴, 아직 풀지 못한 과제는 시간 내에 해치워야 할 것이 아닌, 시간을 두고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자 내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일이겠지요. 밀린 과제를 마주하며 멈춰 설 용기가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충분히 혼란스러워 해보자고 다짐도 해봅니다. 불확실하지만, 미래라는 것을 위해서 어쩌면 안부를 물으며 질문을 나누고 이야기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위로도 하면서요.
민경은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 2010년 부천시 원미동에 여러가지연구소를 열고, 지금까지 대표이자 마담을 맡고 있다.도시 개발에 따른 장소 상실로 새로히 여러가지연구소 공간을 조성하자마자, 코로나 19를 맞이했다. 비정형적인 커뮤니티의 실험을 즐기며 질문을 생산하고 실천과 연결하는 소소하고도 밀밀한 만남을 갖는 것을 즐기고 있다. 연결되는 문화예술현장의 관찰자이자 참견쟁이로 활동하고 있다.
dayodayo798@gmail.com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