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흘러나온다. “오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7만 명을 넘어섰고, 다음 달에는 많으면 28만 명까지 나올 것으로 방역 당국은 내다봤습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보다는 시민들 스스로 하는 방역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또다시 시작인가. 더워죽겠는데 마음까지 콱 막힌다. 코로나 이후와 코로나의 재확산을 함께 걱정해야 하는 7월의 어느 날, 장위동 김중업건축문화의집에서 ‘개구장위들’의 박종원 프로젝트 매니저를 만났다.
성북의 지역문화 생태계에는 현재 7개의 예술마을이 활동하고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박종원 매니저와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 성북지역의 ‘예술마을 연석회의’에서 마을별 담당자로 만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만날 수도 안 만날 수도 없었던’ 지난 3년, 마을 활동과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모두가 우려했던 ‘거리두기’는 어떤 의미와 결과로 다가왔는지, 코로나 이후 혹은 코로나 재확산을 우려해야 하는 지금은 또 어떤 어려움과 기대를 마주하고 있는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내일에 대해 마을 모임 담당자, 동네 친구로서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누고 싶었다.
  • 별걸다해 프로젝트
우리의 관심사를 모아 작당모의
‘개구장위들’은 2017년부터 장위동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시작해 지역주민과 예술가, 기획자, 청년이 함께 모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는 예술마을 커뮤니티다. 올해로 6년차인 개구장위들의 시작은 ‘장위부마축제’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제 프로젝트 그룹에서 일종(박종원 매니저의 동네 별명)은 장위도시재생센터 활동가로,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역연계 전공자로, 성북문화재단 담당자는 장위지역 담당자로 만남이 시작되었다. ‘축제’라는 명확한 목적 아래 각자의 역할이 있었던 그들은 축제 이후 한동안 이름도 없이 지역에 남아 무언가를 상상하고 작당 모의하는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지은 이름이 ‘개구장위들’이다. ‘장위’동 예술마을 커뮤니티의 이름이라니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작명이다.
“장위도시재생센터 근무하면서 축제이름을 지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개구장이’까지 나왔고 ‘장이’를 ‘장위’로만 바꾸면 입에 딱 붙겠다 싶어 ‘개구장위축제’가 되었습니다. 동네 축제에서 많은 사람과 만났는데 축제 후 함께했던 동료들이 각자의 이유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이후 장위도시재생센터가 없어지기도 했고, 2018년에 여기에 남은 동료들이랑 자연스럽게 ‘개구장위들’이 되었어요.”
– 박종원(일종) 개구장위들 프로젝트 매니저
마을 활동에서 주축이 되는 사람은 개별 참여자나 구성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마을의 대표성을 부여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여느 마을 활동처럼 ‘개구장위들’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 역시 이 활동을 통해 경제적인 수익을 얻진 못한다. 그래서 이 활동을 통해 먹고 사는 방법을 모색해보기 위해 협동조합도 만들어 보고,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 활동하게 되면 혹여나 짜인 계획안에서 움직이는 게 답답할까 봐 하반기 계획은 유연하게 여지를 남겨두기도 한다.
개구장위들의 대표 프로젝트인 ‘별걸다해’는 활동하는 구성원들의 관심사를 모두 담아서 정말로 별 걸 다하려고 만든 활동이다. 주민들이 가져오는 중고물품을 나누는 ‘플리마켓’,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어린이 예술놀이터’,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만든 마을창작연극 등 2018년부터 연 4회씩 매해 진행하고 있는 개구장위들의 축제다. 특히 플리마켓은 판매보다 참여에 중점을 두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주민 마켓으로 운영된다.
해마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별걸다해’ 축제에 녹여 왔는데, 최근 관심사는 ‘환경’으로 모였다. 즐거운 축제 뒤에 버려지는 엄청난 쓰레기를 마주하고 나서 말이다. 환경 관련 유튜브도 보고, 쓰레기 박사님을 초대해 재활용에 관한 강의도 들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좋은 주제지만 지금 개구장위들의 상황으로는 너무 전문적으로 나아가는 데 현실적인 한계도 느꼈다. 그래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고 연결해보자는 대안을 생각했다. 지역에서 나오는 자투리 천을 활용한 활동을 시작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환경에 대한 고민과 관심사를 이어갔다. 서로에게 “작년보다 좀 나아진 것 같다”라고 격려하며 규모와 방향을 바꿔보면서 마을 활동이 일상과 균형이 맞도록 ‘라이트’한 것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활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라이트’ 함의 다양한 정의를 공감하면서 말이다.
“별걸다해 프로젝트를 인근 공원에서 진행한 적이 있어요. 참가자가 2,500명이 넘었는데 10명도 안 되는 멤버들이 감당하자니 너무 벅찼어요. 지원금을 받은 것도 있어서 계획을 좀 크게 잡았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마을 활동이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재미라도 있어야지…. 게다가 코로나가 규모를 축소하는데 시발점이 되었어요.”
  • 불편하게 길 찾기
  • 불편하게 요리하기
불편하게 놀며 디지털 디톡스
동네에서 재미있게 만나자고 시작했는데, 매주 수요일 정기모임에서조차 별걸다해 프로젝트 회의만 하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참가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임도 좋지만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닐까’ ‘우리도 좀 즐거워야 하지 않겠나’ 이런 고민이 생겼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비대면, 온라인 만남이 숙제처럼 무겁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활동 주제를 세분화하고 규모를 축소하면서 예약을 받고 소규모라도 대면으로 만나는 방법을 계속 찾아보았다.
‘불편하게 놀기’ 시리즈는 그런 상황에서 발전된 프로젝트다. ‘불편하게 놀기’, 한마디로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이다. 지도 없이 길 찾기,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현상된 사진은 도서관에서 찾아가기), 스페인어 사전을 주고 스페인어로 적힌 요리 레시피를 해독하며 요리하기, 오븐 없이 친환경 밀가루로 과자 만들기 등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노는, 불편함을 전제로 하는 놀이를 통해 어떤 이에게는 잊힌 감각을,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감각을 공유하면서 ‘개구장위들’은 안전한 워크숍에 대한 도전을 계속했다.
코로나 기간에 이런 활동을 통해 동네 사람들과 특별한 경험을 나누기도 하였다. 대규모 행사로 운영했을 때는 참가자들과의 대화라고는 “화장실이 어디예요?”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일부 참가자들에게는) 무슨 행사인지도 모른 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라고만 인식되기도 했었다. 반면 코로나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된 소규모 밀착형 활동을 통해 개구장위들이 뭔지, 장위동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참가자들이 원하는 동네 프로그램이 뭔지 촘촘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민들과 호흡할 기회가 생겼다.
새로운 만남을 담을 빈집
지난 6월, 개구장위들의 ‘빈집’ 집들이가 있었다. 장위동 빈집(서울시 성북구 장위로15길 80-24)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빈집을 매입한 공간으로, 성북문화재단과 ‘개구장위들’이 운영하는 지역 내 문화‧예술 아지트다. ‘빈집 집들이’ 홍보물에 “진짜 빈집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매주 수요일 7시, 주마다 나와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이디어 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적힌 문구들이 흥미롭다. 도대체 어떤 집이기에…. 빈집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는다.
“공간이 생겼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고, 모든 걸 다 새로 시작해야 해서 오히려 이런 상황인데 괜찮겠냐고 솔직히 물어본 거였어요. 이제 겨우 바닥만 수리한 상황이라 창문도, 도배도, 에어컨도, 화장실까지도 새로 고쳐야 하거든요. 공간 상태가 만족스럽진 않아도 어쨌든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해요”
자투리 천을 활용한 활동을 준비하며 재봉틀도 3대 들였다. 개구장위들 중 세 명이 작년부터 재봉 기술을 배우고 가방도 디자인하며 직접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맨날 행사만 고민하지 말고 구성원들도 발전해야 하지 않겠냐 싶어서다. 제작 가방엔 ‘개구장위들’ 마스코트인 개구리도 넣어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홍보해 볼 참이다. 하반기에는 동선동 문화예술공간 ‘미인도’에서 진행하는 전시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런 활동이 하나둘 모여 빈집을 채우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활동 중인 핵심 구성원들이 장위지역 인근보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이 많은 편이어서 이번 모집을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멤버를 구해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공유공간으로 문을 활짝 열어놓으려 한다. 마스코트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개구리만 있으니 쓸쓸하다 싶어 연못과 함께 가재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고 한다. 개구리 옆에 항상 가재가 있게 되었듯이 개구장위들에게는 옆에 있을, 함께할 동료들이 필연적이다. 개구장위들의 연못(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빈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해보고 싶은 개구리와 가재들을 상상하니 어느새 웃음이 났다.
만나고 싶은, 만나야 할 동네 사람들
일종은 최근 도봉구에서 영등포구로 직장을 옮겼다. 퇴근 시간이 7시인데 매주 수요일 7시 개구장위들 정기모임 참석을 위해 다른 날 한 시간을 더 일하는 것으로 회사에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일상의 환경이 달라지며 마을 활동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 어느 멤버 하나 대체할 수 없는 개구장위들의 상황을 잘 알기에 쉬기도 빠지기도 어렵다.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도 한두 명이라도 어떻게든 개구장위들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거예요. 코로나 이후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의지와 의무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곁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끈끈한 마음이에요. 앞으로 동네에서 더 많은 사람과 깊이 있게 만날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삶의 거리두기를 요구받는 요즘, 촘촘한 관계를 찾아가는 개구장위들의 이야기는 마을 활동을 하는 나에게 은근한 안심을 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상황이지만 우리 모두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끊임없이 서로의 안부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개구장위들의 ‘빈집’이 별걸 다 하는 사람들과 별의별 상상력으로 빼곡하게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황지원(육끼)
황지원(육끼)
문화기획자, 마을활동가, 이야기청 디렉터. 공유성북원탁회의와 성북동예술마을커뮤니티 <모모모>에서 활동 중이며 삼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햇살이 환히 비추는 곳에서 산다.
인스타그램 @memory.talk.house
사진제공 _ 개구장위들 @gaegujangw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