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문화예술교육 예술강사로 활동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어르신들과 어떤 내용으로 활동을 만들어 갈 것인가? 그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이끌어야하나? 수업하면서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연구하며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어르신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뜨겁기에 몰입도가 좋고 밀도 있는 수업이 진행되지만 노인 문화예술교육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 또한 있다. 지난 경험 안에서 내가 마주했던 힘든 순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보고 그리기 너머에 있는 예술교육
큰 기대와 설렘으로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였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큰 부딪침이 있었다. 근대적 교육을 받으셨던 어르신들에게 예술교육이란 선생님이 하는 것을 잘 따라 하는 것, 시키는 것을 잘 하는 것이었고, 정확하게 똑같이 잘 그려내는 것이 좋은 작품이었다. 많이 경직되어 있었기에 내면에 집중하기,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매 수업에서 무언가를 보고 그리는 것을 원했다. 답답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내재되어 있는 고유한 성향에 맞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교육을 해 왔던 나는 참여하는 20명 어르신들의 개성과 고유성이 잘 드러나고 그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편하게 보고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불평불만은 컸다. “보고 그리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서 그리느냐?” 이 말은 처음 노인 수업을 했을 때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하지만 첫해의 열정과 용감함은 수업 분위기를 바꾸어 가는데 큰 에너지로 작용했다. 어렵게 꺼내어 자신만의 표현으로 이미지 하나를 그릴 때, 색을 썼을 때 많은 칭찬을 해드렸다. “오! 좋아요” “멋져요!” 이 추임새는 어르신들에게 큰 흥이 되었다. “선생님은 뭘 해도 잘했대” 강사를 향한 핀잔 같은 말이었지만 어르신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무엇을 해도 인정을 해 드리니 어르신들은 신이 나고 흥이 났다. 직접 생각하고 구상해서 그려보자는 말을 하면 아우성이었던 분들이 조금씩 변화하셨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 느낌,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내셨다. 어렵다던 그림에는 자신만의 필체와 색, 드로잉기법이 보였고 개성이 담겨있는 완성작으로 연결이 되었다.
당시 어르신들은 잘 그린 그림도 좋지만 그 이면의 다양성에 대해 알아 가시는 것 같았다. 과감한 터치는 그 모습대로 조심스러운 터치는 그 모습대로의 좋음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함께 했다. 좋아진 수업 분위기와 적극적이신 어르신들의 모습 덕분에 더 많은 시도를 하였고 재미있는 창작 활동을 이어낼 수 있었다. 결과전시를 준비하며 어르신의 작품을 크리스마스트리로 크게 세우는 작업을 늦은 시간까지 하게 되었는데 ‘내 전시’라는 사명으로 끝까지 함께 해주신 어르신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첫해를 함께 한 어르신들과 2년의 수업을 정리하며 한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남겼다. “선생님 덕분에 자신감 있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정말 기분 좋았던 순간이었다.
‘어려움’에 맞서 수업을 창작하자
새로운 기관에 배정받고 수업을 시작하며 기관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름을 알았고,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첫해 만났던 어르신들과 다르게 자신이 생각한 수업이 아니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선생님만 보면 심장이 떨려, 잘 못하는 것을 시켜서 긴장하게 돼”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신 분이 계셨다. 사실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어르신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미명아래 감동과 기쁨이 아닌 고충을 드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대상에 맞춘 수업의 재구성이 필요했다. ‘줄탁동시’가 이루어질 수 있게 참여자와 강사가와 함께 노력하면서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강사의 모습이 필요했다. 쉽게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 나만의 이야기와 색, 터치, 이미지를 담아낼 방법을 만들어 표현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수업 안에 좀 더 친절함을 가미했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편하게 접근하고 표현할 수 있는 활동주제와 재료, 표현기법으로 활동의 만족감을 드려야 했다. 그래서 수업 과정을 많이 쪼개어 들여다보았다. 어디까지 강사의 개입이 들어가고 어디부터 어르신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하나씩 만들어갔다. 쪼개진 수업 안에는 충분한 재료와 기법에 대한 탐색 이후 다양한 연상과 표현으로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미션과 활동을 나눠 단계적으로 함께 하다보면 나만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시각적 만족감도 같이 가져올 수 있으면 어르신의 반응은 더 좋았다. ‘나 너무 기뻐~!’ ‘너무 뿌듯해’ 활동과 작품에 만족감이 있을 때 이러한 표현을 하신다. 그래서 ‘균형’을 생각한다. 표현방법과 내용이 잘 맞으면 좋은 수업이 된다. 양 날개가 잘 장착되면 그날의 수업 비행은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다. 표현에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는 것에 익숙함을 느끼게 되면 그 이후 표현의 자율성으로 변화하고 확장된다. 이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는 내 수업 연구의 과제이다.

온라인 수다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2020년 코로나로 복지관이 문을 닫고 대면 수업은 모두 멈추게 되었다. 비대면 교육이 활성화되었지만 대면에 익숙한 나에게는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져 있기는 싫었기에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비대면만의 장점은 컸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온라인으로 어디서든 연결이 될 수 있었다. 평소 물리적 거리로 인해 연락을 자주하지 않았던 세 강사가 저녁 시간에 줌(Zoom)에서 모여 일상이야기가 더해진 수다와 함께 수업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세 강사의 개성도 뚜렷했고 서로 다른 지역의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오갔다. 이러한 대화에서 비대면 시대에 맞는 우리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지금 상황에 맞는 신박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세 강사의 성을 따서 ‘신박한 김이네’가 만들어지게 된다.
신박한 김이네는 문화예술교육사 기획공모전을 계기로 새롭고 실험적인 교육을 기획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세 지역 어르신들이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하고 함께 연결을 해내는 수업 내용이었다.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내용은 달라질 수 있고 어떠한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없는 활동이었다. 이 활동을 계기로 복지기관 창작실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이상진 강사의 영향으로 노인을 위한 미술과 영화를 융합한 수업을 기획했다.
세 지역에 떨어져 있는 강사들에게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것을 새로운 무기로 수업을 만들어 내었다. 리더십과 추진력이 있는 이상진 강사 미술, 지식으로 풍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신재옥 강사, 주변을 두루 살피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나, 이렇게 셋이 모여 혼자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신박한 김이네는 이 시대에 맞는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며 풍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김윤하
김윤하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형예술(서양화)과 미술교육을 전공하였다. 2014년부터 어린이날다협동조합에서 캠프, 축제, 교육, 전시 활동을 함께 해 왔고 2018년부터 노인 문화예술교육 미술 부분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threelady1579@gmail.com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