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서울 대학로에 사무실을 둔 시민단체 ‘나와우리’로 직장을 옮기자마자, 좋아하는 책을 살 수 있는 서점이 어디 없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큰 통행로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이음아트’가 나왔다. 지하 1층으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브람스 교향곡 3번이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십 걸음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책방의 서가마다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막 나온 새 책뿐만 아니라 중고 책도 있었고, 턴테이블에 LP가 돌아가고 있었다. 주인은 손님 온 것도 모르고 책에 심취해 있었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급히 나왔지만, 지하에서 펼쳐지고 있던 고요하면서도 황홀한 풍경에 이내 마음을 뺏겼다.
고요하고 황홀했던 예술책방
살 것이 없는데도 괜히 한 번 걸음하고 점심 먹고서 차 한잔하듯이 들르고 퇴근 후에도 찾아가서 두어 시간을 보내고서 러시아워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매일이다시피 방문했고 서점에 없는 책을 몇 번 주문하니, 책방 주인은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사 나눈 뒤 며칠 되지 않아서, 늦은 시간까지 책 구경하고서 술집으로 동행했다. 주인은 서점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일 숫자와 씨름하는 지겨운 직장 생활을 명예롭게 끝내고서 퇴직금과 지인들의 후원으로 책방을 연 지 3년 되었다고.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습작을 계속하였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고. 시작할 때 수입이 얼마 안 되었는데 몇 해가 흐르니 단골이 생겨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해 가을, 나는 서점 행사에 초대받았다. 찾아온 이들 중 소설가 한강이 있었고, 김재엽 연출을 비롯한 여러 연출가와 배우 등 서점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와서 이음아트와의 인연을 얘기하며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작품을 낭독했다. 이음아트 주인은 재정이 어려워서 마련한 행사에 참석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금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소진되었다. 2009년 봄, 임대료와 도서비 결제와 생활비에 더해 지인들의 대출금 상환까지 겹쳐 서점의 어려움은 나날이 가중되었다. 많은 사람이 갖가지 방안을 마련해서 서점을 살리고 싶었는데, 빚이 많고 채무 관계가 복잡해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음아트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12월에 문을 닫고 말았다.
  • 연극 <외로움도 반짝이면 별이 된다>
  • 독서 모임
만들고 모으고, 다시 시작하기
이음아트가 문을 닫는 걸 참으로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 4년 동안 이음아트는 서점을 무대로 한 연극 <책, 갈피>(연출 이양구)의 초연 무대였고,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의 낭독 장소였고, 연극배우와 연출가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또 육명심, 구본창을 비롯한 많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책을 소개하는 장이었다. 이음아트가 자리한 곳에서 ‘책방이음’을 새로 시작하면서 왜 이음아트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 파악부터 시작했다.
서점을 아끼는 사람은 많았지만, 책을 사고 공간을 쓰는데 비용을 지급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대부분 무임으로 이용하거나 실제의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값을 치르고 사용하였다. 책방이음을 열자마자, 이음아트를 아끼는 분들에게 다시금 문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도서를 세 권씩 사주길 부탁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또 공간 이용비를 책정해서 전시와 행사 때 비용을 지급하도록 공지했다. 재방문율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했다.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회원 제도를 만들었다. 독자가 공간을 아끼고 가꾸는 데 참여하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자원봉사제도를 만들었다. 독자 모임이 없었다. [시사인] 읽는 모임, 고전 읽는 모임, 소설 읽는 모임 등 독서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정 확충 방안의 변화만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비영리 공익서점으로의 탈바꿈을 꾀했다.
  • 고등학생 직업 체험 교육
  • 자원봉사자의 책 홍보
아끼는 이들과 함께, 새로 이어가기
우선 ‘나와우리’에서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회원 혜택 중 도서 구매 특별 혜택 등을 주는 조건으로 인건비 전액을 나와우리에서 지원받고 임대료와 부대 비용만 서점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유지 비용을 줄이고 매달 100만 원의 기금을 조성해서 공익사업에 기부하는 변화를 주었다. 학교 도서관 짓는 사업을 하고, 북스타트코리아 영유아 책 선물 사업, 플라톤전집 발간을 지원하였고, 예술가의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고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장애인 단체를 지원하고 환경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서점을 교육 공간으로 바꾸었다. 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와 짧게는 2주부터 6개월까지 직업 체험 협약을 맺고 10대와 만나기 시작했다. 직업 체험으로 온 학생들이 출판사를 방문해서 출판의 기획부터 도서의 제작 및 마케팅 과정을 배우고, 출판사와 서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에게 학기별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서점에서 일하는 것을 배우는 인턴십 과정을 개설해서 출판과 서점 운영을 이해하고 시민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기 시작했다. 외국인 대학원생에게는 한국의 지식 사회를 이해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학술 연구비를 지원하고 시민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 및 외국어를 가르치는 과정을 만들었다. 박사 학위 논문 집필 연구자에게 매달 연구에 필요한 도서를 매달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해서, 학위 받은 연구자를 두 명 배출했다.
마을 속의 책방으로 만들어나갔다. 마을 주민이 쉴 수 있도록 기증받은 헌 소파를 두었더니 연애하고, 시장 보러 다녀온 분이 잠시 잠을 청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서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동안 엄마가 쉬기도 했다. 임신한 한 외국인 여성이 첫째 아이와 함께 소파에서 자주 쉬어 가곤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엔 아이를 안고서 찾아왔다. 얼마 뒤 아이가 기어서 서점을 누비기 시작했고, 처음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곳도 뜀박질을 익힌 곳도 이곳이었다. 아이의 돌잔치를 책방에서 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이 참으로 반가웠다. 엄마와 아빠, 아이와 부모의 친구, 동네 주민과 책방 단골이 둘러앉아 돌잔치를 열었다. 그날, 아이의 앞날을 한마음으로 축원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환자가 책방이음 근처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2월 1일 작가와 만남을 신청한 분이 들려주었다. 곧 취소 연락이 이어졌다. 2021년 나도 감염되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환자 발생은 멈추지 않고 있다. 사람을 직접 만나기 두려운 시대가 왔다. 책방이음은 그사이 온라인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공간은 혜화동에서 동숭동으로 옮겼다가 작년 3월 사립도서관과 공생을 꿈꾸며 누하동으로 옮겼는데, 작년 9월 공연장이 있는 창신동 아트브릿지로 이사했다. 한편,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자 책방이음 제주 레지던스를 개관했다. 레지던스 초대작가인 문도연은 『걸어요』에서 제주 자연 속으로 여행 떠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작가 자신이 어려움에 봉착해서 답을 찾지 못했을 때,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을 그림책 속에 담았다. 책 읽은 독자와 이야기 나누고 작가와 같이 걷고 드로잉하는 수업을 통해서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어떤 바람’ 서점과 함께 열었다.
책방이음의 추천: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강 작가는 제주 4·3의 숱하게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죽임과 잊을 수 없는 고통과 대면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아픔과 화해하고, 영혼을 달랠 수 있는지 경하와 인선, 인선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다. 작가가 나지막이 들려준 이야기를 독자와 한 장씩 나누어 낭독하면서 절절한 아픔을 같이 나누었다.
앞으로도 책방이음은 책과 독자를 잇는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할 것이다.
조진석
조진석
2009년부터 책방이음 대표로 일하고 있다. 2018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준비위원장을 맡아서 전국 동네책방의 연대체를 발족했다. 서울도서관 서점 활성화 추진 자문회의 자문위원과 지역 서점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종로구 구립공공도서관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한국출판유공자상, 서울특별시 서점인 표창, 환경정의 한우물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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