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를 보고 만들고 공부한 이유는 즐거워서다. 우리가 예술을 교육하는 이유도 문화로 그들의 삶이 즐겁기를, 예술로 다채로워지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나는 수업 시작과 끝인사를 “반갑습니다”와 “또 만나요”로 한다. 이는 교육 참여자들이 조금이나마 영화 수업을 반겨주고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약속한 인사이다. 영화 예술강사로서 영화교육을 연구하고 실행하면서 ‘예술을 즐기는 문화시민’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참여자뿐만 아니라 예술강사도 포함하는 목표다. ‘교육과 강의장’을 넘어서 영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만들고 즐기는 ‘작업실과 공론장’이 되기를, 나와 함께하는 참여자가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해왔다.
수업 기획의 첫걸음, 다시 생각하기
처음 영화 수업을 시작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경계가 모호했다. 대학에서 영화 교직 관련 수업을 수강했기에 학교교육은 교과 위주의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했다. 하지만 이는 예술교과수업과 문화예술교육의 간극과 차이를 구분하기 애매한 수업이 되었고, 결국 반복과 재생산에 머물며 교육만 남고 문화예술교육은 사라지는 양상이 보였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수업은 더욱 그러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신념이 없다면 프로그램 구성부터 진행까지 난항과 고충의 연속이 된다. 장애인 참여자들에게 학교 교과 형식과 내용의 교육은 무의미했고 목적부터 진행 방법까지 전부 재설정하고 설계해야 했다.
영화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와 현대사회에서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하며 영화의 다양한 요소를 함께 즐기며 표현해보는 것, 그 안에서 교육보다는 문화형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달장애인 교육은 올바른 성장과 문화형성을 기반으로 한다. 아르떼 아카데미 장애예술연수 중 배운 [감각 일깨우기]를 기반으로 영화예술요소를 분해하여 배치한 ‘감각 수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영화의 그림과 스토리보드는 시각, 사운드는 청각 그리고 연기와 표현을 촉각과 공감각으로 설정하고 나만의 표현법으로 영화감상법을 발현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설계했다. 또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른 아웃풋(말하고, 행동하고, 쓰는)을 잡아내기 위해 ‘관찰과 개별소통’을 하며 참여자별 표현법을 구상했다. 활동보조 선생님들과는 수업에서 역할을 나누어 배치했다. 사실 그 안에서도 모든 참여자가 영화 수업을 온전히 체득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장애 참여자의 경우 특히, 천천히 그리고 오랜 기간(다년간)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장애인 참여자 한명 한명을 천천히 오래 보고 소통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밀감을 형성하며 공감하고 표현하게 되면 교육 참여도나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같은 복지관에서 다년간 참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변화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에서 영화로 변화하거나, 좋아하는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고 똑같이 연기하거나, 수업시간에는 조용하다가 기억에 남았던 장면과 비슷한 상황을 주변에서 찾아 촬영해서 보여주는 참여자도 있었다. 자신만의 예술적 표현이 늘어나고 문화예술시민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운이 좋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안에서도 영화교육에 대한 방법과 이유를 고민하게 하는 필연적인 고충이 계속 발생한다.
함께 허들넘기
2020년과 2021년은 그 고민의 시간이 더없이 깊고 많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감각의 장이 열릴 수 없게 되었고,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던 작업실은 문을 닫아걸었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오프라인에서 언택트로 수업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애인 참여자들 앞에 놓인 허들은 너무 높았고 기관 담당자와 강사는 높은 강도의 업무와 활동을 요구받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한 사회 시스템과 예산 그리고 참여자의 높은 스마트기기 활용도로 손쉽게 언택트로 전환하는 상황과 다르게 장애인복지관에서의 교육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수업을 내용을 전부 온라인 영상으로 제작해야 했고, 이를 참여자와 공유하기 위해서는 보호자 혹은 본인의 스마트기기가 필요했다. 복지관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참여자들을 일일이 만나 스마트기기를 확인하고 온라인 만남이 가능하도록 도와야 했다. 장애인 참여자는 불가능할 거라고 낙담하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고 실제로도 참여자 전원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장애인 대상 영화 문화예술교육, 특히 언택트 수업은 이제 막 시작한 과정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고 전부 가능할 거라는 자체가 설정 오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문화예술교육 시스템도 천천히 변화하고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간과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앞장서고 발맞추며 연구하기
2021년이 되면서 언택트 수업에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온라인 수업을 영상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과 실시간 화상 수업을 병행하던 것에서 모든 수업이 화상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콘셉트의 변화가 필요했다. 화상 수업으로 ‘감각’의 자극을 줄 수는 있지만 효과적이지 못했고 프로그램의 목표달성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영화교육이 변화해야 했다. ‘최초의 영화 이후 약 120년간 시대가 변화하면서 영화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진보한 기술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발맞추기도 하며 영화는 발전했다. 교육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최초의 영화가 탄생한 계기에 초점을 맞추고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했다. 예술의 탄생 중 하나는 유희이며 미술과 사진 그리고 영화의 탄생은 기록과 기술의 발전으로 본다. 이에 영화 수업을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참여자들의 기록을 들춰보기도 하고, 지금의 모습을 기록했다.
기기 설치 및 사용방법을 아예 수업에 배치하여 진행했다. 카메라를 켜고 끄고, 카메라의 위치를 설정하고 조명과 창문에 맞춰 수업공간을 이동하고 유선 마이크와 이어폰을 사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 등을 참여자들이 직접 느끼고 경험하게 하며 이를 영화에 빗대어 설명하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수업 또한 기록하기로 했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카메라가 넘어지기도 하고, 후면 카메라로 전환되어 참여자 부모님의 식사장면을 보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안돼요, ○○ 씨!” “가지마세요” “소리를 켜주세요” 강사와 복지관 담당자의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지도 했다.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참여자 세 명은 모두 소리를 끄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해 수업이 정지되기도 했다. 몇 개월에 걸쳐 방법을 익히고 주변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고, 공유한 것을 하나의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던 중 복지관에서 ‘예울림 페스티벌’ 참여를 제안했다.
‘영화를 찍을 수 있나?’ 영화에 대한 편견이 아직 예술강사에게 존재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시작할 때 참여자, 기관 담당자 모두 영화와 영화교육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고민을 거치며 이제는 영화라는 매체는 우리 삶을 재현하는 과정이며 지금 우리의 일상 또한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출품하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다큐멘터리 <우리 만나요>가 제작되었다. 올해는 지금까지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내용 중 일부를 활용해 발달장애인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단편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영화 예술강사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업에 관한 생각이 널뛰기한다. 한 해 한 해 불안함을 느끼며 고민하고 연구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조금 더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장상구
장상구
영화와 영상미디어를 공부하고 영화분야 학교·사회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대안 영화상영, 시민의 영화 문화 활동의 접근과 참여 권리 향상을 위한 ‘모두를위한극장’ 교육문화분과에서 영화교육 기획 및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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