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와 자이납은 이집트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섰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에 쫓기고 고문을 당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목숨을 지키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안전한 곳을 찾아 함께 고국을 떠났다. 군부를 몰아내고 민주 정부를 세운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난민법을 제정했고 전쟁과 피난을 경험한 이가 대통령인 한국에 정치적 망명을 하고 난민 신청을 했다. 해마다 수천 명이 한국에 찾아와 난민 신청을 하는데, 그중 난민 인정을 받는 사람은 고작 1% 남짓인 수십 명 정도인 걸 그들은 미처 몰랐다.
자이납과 아나스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그들은 전국적인 폭염으로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나들고,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극에 달했던 2018년 여름을 청와대 앞에서 보냈다. 아나스는 물과 소금만 먹으면서 20여 일을 버텼고, 만삭인 자이납이 배 속 아이와 함께 출산 직전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은 아이의 이름을 무으타심, ‘농성하는 자’라고 지었다.

가까스로 난민 인정을 받은 두 사람은 일자리를 얻지만 건강을 잃었다. 이집트 감옥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반쯤만 구부릴 수 있었던 아나스의 손가락은 한국 공장에서 당한 산업재해로 전혀 구부릴 수 없게 되었다. 자이납도 일하다 허리를 다쳤다. 허리를 구부리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날은 일터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돌아가야 했는데, 반나절을 일했어도 하루 일당을 고스란히 포기해야 하는 날이 늘어갔다.
아나스와 자이납은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이 모여 사는 인천 연수구에 작은 식료품점을 냈다. 한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이집트인을 대상으로 이집트 음식을 주문받아 만들어 보냈다.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해도 생계를 잇기 벅찼다. 그들에게 둘째가 생겼는데, 일하느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그들도 곯아떨어졌다. 다시 아침이 밝는 게 두려웠다. 잠에서 깨자마자 어서 힘든 하루가 끝나고 날이 저물어 침대에 지친 몸을 누이길 바랐다.

자이납과 아나스는 일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점점 고립되었다. 근처에 사는 이집트인 친구를 만날 겨를이 없었다. 이집트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많은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던 두 사람은 한국에 와서 말하는 법을 잊겠다는 생각을 들 만큼 다르게 살아간다. 이집트 감옥에서 탈출했는데 한국에 와서 기약 없는 노동의 감옥에 수감된 기분이다.

아나스와 자이납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서 광장에서 시위할 때도, 목숨을 걸고 이집트를 탈출해 한국에 와서 망명을 신청했을 때도, 찌는 듯한 더위에 청와대 앞에서 농성할 때도 함께였던 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한국에서 출구 없는 삶의 굴레였다. 아나스는 네 사람 몫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수록 곁에 있는 사람에게 피로를 느꼈다. 자이납은 아이들과 보낼 시간도 없이 일만 하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닌데, 갈수록 일에만 몰두하고 짜증을 내는 아나스가 야속했다. 두 사람은 평행선을 그으며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었다.

한국에서 스스로 ‘난민’이라 정체화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자이납과 아나스를 만났다. 이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아갈수록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이 오롯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스와 자이납에게 지역사회 공동체와 소통할 기회가 열리고, 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마련된다면 겪지 않아도 될 갈등이니 사회적으로 함께 다루어야 할 문제다.
자이납과 아나스가 살면서 겪은 고통을 말할 때 눈시울을 붉히고, 한국에 와서 외국인청 직원에게 멸시당한 경험을 토로하면서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을 공유하며 낯선 대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직접 만나는 경험이 큰 힘을 갖는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말하는 두 사람 입장에서도 경청하는 상대가 있는 걸 반겼다. 우리끼리만 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 영상을 완성해 지난겨울에 서울에서 단독 상영회를 열었고, 올봄에는 인천에서 열린 한 영화제에 초청받아 선보였다. 때마다 아나스와 자이납, 무으타심과 일리야스까지 온 가족을 초대하여 이들이 관객과 마주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아나스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뭘 하고 싶냐고. 장미를 가득 채운 꽃집을 열고 싶다고 했다.
“꽃이 우리가 당장 생존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건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꽃은 이야기해요. 모든 꽃은 저마다 색상과 형태 등으로 이야기해요.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벌이 이동할 때 꽃가루를 옮기잖아요. 어딘가에서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어요. 꽃이 없으면 이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은 없을 거예요.”
<암란의 버스 3 코멘터리북> 발췌, 박이랑 번역
9월에 자이납과 아나스가 사는 인천에 있는 문화공간 코스모40에서 일주일간 ‘장미다방’을 연다. 아나스가 좋아하는 장미꽃으로 가득 채운 공간에서 자이납이 끓인 잎차와 아나스가 만든 이집트식 과자 쿠나파와 바스부사를 선보인다. 누구나 이 공간을 안전하게 즐기고 새로움을 맛보고 아나스, 자이납과 마주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주선할 참이다. 자이납과 아나스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무으타심, 일리야스와 함께 살아갈 나날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있어도 안전하다는 경험에서 비롯한 공통감각이 필요하다. 이 감각이 사방으로 널리 퍼지면 곳곳에서 환대의 문화가 꽃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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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다방’에 아랍어 통역가와 아이 돌보미가 상주할 예정이니 안심하고 방문해주길 바란다.
제람(강영훈)
제람(강영훈)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시각예술활동가. 할머니 김옥화에게 성실함을, 어머니 신명화에게 성찰하는 힘을, 최희정과 최슬기에게 시각 디자인을, 애이드리언 쇼네시와 로라 고든에게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은유에게 글쓰기를, 암란과 야스민에게 ‘난민됨’을 배웠다. 배운 걸 나누려고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가르치고, 난민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문화예술 작업과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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