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에 속하는 우리 동네 뒷산은, 오래된 나무들과 새로 심은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작지만 제법 훌륭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은 산 임에도 불구하고, 평일 아침이면, 낯익은 조기축구회원들과 부지런한 동네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산을 즐기며 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반려동물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나들이 인파가 꽤 있는 편이다.
잘 발달한 숲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공간을 창조하여 그 안에서 생물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유지해준다. 폭염으로 고통받는 한여름이나 한파가 덮친 겨울철에도, 숲 안으로 들어가면 더위나 추위도 적당히 피할 수 있다. 심한 장마나 폭설에도 땅과 나무들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주어 숲 밖과는 다른 온화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 안에서 작은 동식물은 보호받고, 먹거리나 자양분도 얻으면서 사계절을 무사히 지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동네 뒷산으로 반려동물들과 산책 다닐 때마다 다양한 새-심지어 꿩도 있다-들과 설치류에게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커다란 나무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 제7회 비건 페스티벌
그저 한 그루일 뿐인가
그런데, 작년 이른 봄, 동네 뒷산 입구에 있던 두 팔로 다 안을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썩뚝 하니 베어져 나간 것을 목도 하게 되었다. 그 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그 크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해 마지않던 터라, 빈자리가 휑하니 눈물이 쏙 빠질 지경으로 안타까웠다. 이 일은 내게,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짐작게 하는 사건이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생물과 환경에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르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일이 없었다면 머리로만, 그저 어디 문헌으로 배우고 들은 대로만, ‘나무를 베는 것은 환경에 좋지 않다’라고만 기억했을 것이다.
나무가 베어지고 나니 거기 살던 동물들은 하루아침에 서식지를 잃었고, 날이 지날수록 그 그늘에 살던 이름 모를 식물이나 이끼도 서서히 말라 죽어갔다. 능선 언덕이 반 이상 나대지로 드러나 따가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 살던 고양이와 작은 설치류들, 가지에 앉아 울던 박새, 참새, 비둘기와 까마귀들도 그 공간을 떠나 다른 나무로 근거지를 옮겨갔다. 기후 이상으로 이르게 찾아온 장마철에는 빗물에 흙이 그대로 패여 흘러내리고, 산어귀 입구에는 물이 차서 통행도 불편해지고 말았다. 나무 한 그루를 베었을 뿐인데, 몇 달 동안 그 장소를 지나면서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는 심정이 무척 좋지 못했다. 그 나무를 벤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어디 지자체나 단체에서 요청을 받아 나무를 베어 간 것일 테니,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자세히 관찰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숲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 안의 생태계를 좀 더 확장해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지구 반대편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일어나는 무자비한 벌채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갑자기 길어진 장마나 관측 불가능했던 여러 기상이변에서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결코 사소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나비효과처럼 멀리 퍼져나가 기후변화의 일부로 존재하며, 또한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은 쉽게 통찰할 수 있다.
인간이 일으킨 재난의 징조들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징조들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의 기후재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2019년 호주에서 일어난 산불이다. 현지에서 보도된 뉴스들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온으로 화재가 산발적으로 발생해 예측도 불가능하고, 쉽게 불을 진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 서부에서도 화재가 몇 달에 걸쳐 반복되었다. 작년에는 시베리아 동토 지역에 발생한 기상이변으로 비키니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해외토픽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런 화재 사건들은 대단히 충격적인 규모였지만, 사실 인간들은 수십 년 전부터 이런 대규모의 화재를 브라질 열대우림에서 직접 일으켜 왔다. 공장식 축산에 사용될 GMO 사료를 재배하고, 초콜릿이나 아보카도, 아스파라거스 등을 대규모로 생산할 경작지를 마련하고, 핸드폰을 만들 재료를 얻기 위해서 직접 방화를 저지르고 숲을 태워, 그 안에 살아가는 생물 군락과 자연환경을 망가뜨려 온 것이다. 그 결과 지구의 기온은 올라가고, 전 세계 어디나 쉽게 화재가 일어나는 건조한 환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후변화의 직접적 원인이 공장식 축산 한 가지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해, 생물 다양성의 60%가 손실(지구 생물 다양성 전략 재고, 네덜란드 환경평가국, 2010) 되고, 열대우림의 90%가 파괴(UN FAO, 2006)되었다. 사료 공급을 위해 전 세계 농경지의 70%를 점유(축산업의 긴 그림자, UN FAO, 2006)하여 세계 기아의 80%를 발생(세계재난보고서, 국제적십자사연맹, 2011년)시키고, 이 과정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의 51%가 배출(Goodland, Anhang, 2009)되고 있다. 이 외에도 세계 사막화의 50%(호주 탄소 농업 컨퍼런스, John Crawford 발표자료), 사료로 쓰기 위한 어류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대형어류의 90%가 멸종(네이처저널, Myers&Worm, 달하우지대학교, 2003.5.15.), 인간 질병의 65%(유럽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 및 벡터 매개 감염, R.M.Vorou 외, 2007)가 공장식 축산업 또는 그 과정의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한다.
위에 열거한 원인과 연관되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폐해까지 따지다 보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다만, 우리가 좀 더 많은 사람이 채식하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속도로 문명을 유지해야만 기후변화의 진행을 늦추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시간과 자원을 더 많이 비축할 수 있다는 점은 여기에서 꼭 밝혀두고 싶다.
“우리의 식사 습관은 지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 마틴 젠킨스 보전생물학자
“육식이 훨씬 작은 규모로 행해졌더라면, 그것이 환경에 해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현대의 육류생산은 곡물과 물, 에너지와 방목지의 집중적인 사용과 오용을 수반합니다.” – 알란 더닝 시애틀 북서 환경보호대 감독
느릿한 방식으로 동참하기
기후변화 문제는 다양한 층위의 수많은 원인이 그물처럼 엮여 있기에 개인 한 명이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고, 다 같이 한 가지 방법만 지킨다고 해서 시원하게 종식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다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모두 연관되어 지금의 기후재난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플라스틱 봉투 대신 천 가방을 여러 개 들고 다니며 세탁해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낡은 물건을 고쳐서 오래 사용하는 즐거움을 나누며, 구멍 난 양말이나 장갑 따위를 촘촘히 꿰매 주시던 할머니의 다정함을 내 주변으로 돌리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매일 한 끼를 식물성 식단으로 바꾸는 것으로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돌볼 수도 있고, 새 물건을 사기 전에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물을 받아서 설거지하고, 손 씻은 물을 모아서 변기를 내리는데 한 번 더 쓰는 느릿한 방식으로 동참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린 중요한 것들을 어린 시절에 이미 다 배웠다. 어디서부터 실천하고, 얼마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느냐 하는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닳아서 해진 코트 주머니나 팔꿈치에 댄 패치들이 주는 오래된 옷의 정겨움 같은 것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금방 씻은 쌈 채소에 잘 구운 두부를 얹어 먹는 식사 자리도 좋을 것 같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어디서든 다정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다 보면, 성난 지구의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의 파도를 잘 넘어갈 기회가 인류에게 주어지리라 믿어본다.
강소양
강소양
올해로 27년 차 채식인. 반려동물들과 가족을 이루고 살다 보니, 모든 동물을 친구로 대하게 되었고, 흐름에 맞춰 살다 보니 어느덧 비건 페스티벌을 열고, 비건 카페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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