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넷째 주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발의한 ‘서울 어젠다’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세계에 선포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다. 지난 5월 23일 ‘2022 제11회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가 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매년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고,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올해 주간행사는 엔데믹으로 가는 길목에 근접하며 오랜만에 대면으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주간행사의 시작을 여는 첫 자리인 국제 심포지엄이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교육, 회복과 전환’을 주제로 열렸다. 오랜만에 대면 행사라서일까,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낯섦과 설렘이 교차하는 듯 했다.
서울 어젠다의 전환과 확장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현혜연 중부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사진영상 전공 교수는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미래 전환’을 주제로 팬데믹 위기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그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 그간 예술교육의 실천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를 짚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일어난 교육과 예술현장에서는 기존의 전제가 전환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팬데믹을 겪으며 예술의 힘과 사회적 역할에 관해 빠르게 합의가 이루어지며 예술가가 가진 사회적 실천, 예술가의 위상이 재정의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우리 문화예술교육 현장 곳곳에서 펼쳐진 비대면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탐험과 실험,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과 연구, 치유와 회복, 지구의 지속가능을 위한 관계 재설정, 국가와 예술교육가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 팬데믹을 통과한 문화예술교육의 모색과 실천은 사회 전반의 위기와 이에 따른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향후 방향과 과제로 예술, 예술의 힘, 예술의 가치가 예술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질문은 예술이 살아가는 소리”라며, 왜 예술가가 해야 하는지, 예술이 왜 핵심인지, 그리고 주제 안에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나 태도, 생각을 어떻게 변화하고 영향을 주는지 등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술가, 예술교육가의 행복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제되어야 함을 과제로 남겼다. 이 밖에도 기술과 자원독점으로 일어나는 격차와 고립에 지원하고 정당하게 요구해야 하며, 혐오를 넘어 미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친절함’을 중요한 역량으로 꼽았다. 현혜현 교수는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서울 어젠다를 중심으로 한 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이제는 문화예술교육 어젠다의 전환과 확장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에는 해외 4개국 발표자가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교육의 실천적 사례를 발표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기반을 둔 예술가이자 현재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바히아 쉐이브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4천 년의 역사를 가진 아랍 문자를 타이포그래피 관점으로 연구하는 ‘타이프 랩(Type Lab)’ 창립 이사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 프로젝트가 그렇듯 타이프 랩도 아랍 문자 서책을 수집하고 디자인 관점으로 문자를 연구하여 관련 수업이나 포럼, 학술대회 등을 통해 발표·공유하는 활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수업이 중단되고 연구 활동 진행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타이프 랩은 인스타그램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관계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학생, 연구자, 일반인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연구 관련 데이터는 아랍 문자에 관심 있는 모두와 공유하며 인스타그램 토크 등 다양한 온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여성, 아동문학을 조명하며 아랍 여성 캘리그래퍼를 소개하고, 역사학자, 아동문학 작가 등과 아동문학에 대한 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6,500여 명의 팔로워가 함께하고 있는데 팔로워들이 발견한 아랍 문자 자료를 공유받거나 타이포 디자인의 저작권 논의 등 자연스러운 교류와 담론의 장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아랍 서체를 연구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하여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 활동으로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여자가 주도하는 예술교육
말레이시아 ‘아츠 에드(Art-ED)’ 창립자이자 사회참여 예술 분야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자넷 필라이는 ‘지역사회 참여 예술은 지역을 어떻게 회복하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말레이시아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통해 장소기반형 예술교육과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에 관한 사례를 발표했다. 말레이시아는 급속한 도시화와 현대화 속에서 가족과 사회 구조의 붕괴, 문화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넷 필라이는 공교육 밖에서 사회활동가와 예술가들이 진행한 비형식적, 장소기반형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교육보다는 문화교육으로 참여자가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을 통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며 세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페낭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그중에서도 문화와 인종이 다수 간 교차하는 재래시장을 청소년들과 리서치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소년들은 리서치 과정에서 시장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경험한 것을 온라인 보드게임으로 제작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제작한 접근성이 높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인종, 문화적 배경을 포용하며 다양성에 관한 담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공공주택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재료를 전달하고 온라인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팬데믹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가정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 게임을 만들며 고립과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서류상으로 기록되지 않은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미혼모 자녀, 불법체류자 자녀 등 학교나 사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사진 활동과 전시, 무용 치료 등 예술 활동과 전문 상담을 진행했다. 참여한 아이들은 상담사, 무용치료사를 만난 것에 큰 안도감을 표현했으며, 안전하고 노출된 공간에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자넷 필라이는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는 지금,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며 공교육에서 예술이 실제 삶에 영향을 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만 모하메드 알 암리 술탄 카부스대학교 예술교육 전공 교수는 ‘오만의 문화예술교육 현황 및 향후 전망, 위기 속 예술교육의 역할과 힘’을 주제로 발표했다. 모하메드 알 암리 교수는 ‘예술교육 국제자문위원회’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로드맵’과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 목표’ 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문화예술은 인류의 근원이며 미적 추구뿐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며 오만의 문화예술 역사를 소개했다. 오만의 최초 정착민은 BC3000년 ‘마간’(Magan)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 역사만큼 여러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오만은 문화 다양성, 토착 예술 등 오만의 역사, 문화를 예술가들이 리서치, 연구하는 과정을 교육에 포함하여 예술가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예술 프로젝트를 국가가 지원하고 민간에서 진행하며 “문화가 예술을 만나고 예술이 문화로 만나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하메드 알 암리 교수는 오만에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교육 디지털 전환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며 이러한 상황이 여러 기회와 조정과정을 가져왔고 팬데믹 종식 후에도 문화예술교육의 강력한 힘이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커뮤니티와 함께 외로움을 해결하기
잉글랜드예술위원회 ‘참여와 청중’ 총괄 디렉터이자 노팅엄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방 지역 책임자 레베카 블랙만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실험’이라는 주제로 어려운 시기 문화예술로 지역사회를 지원한 ‘창의적 사람과 장소’(Creative People and Places) 프로그램 사례를 소개했다. 잉글랜드예술위원회가 지역별 문화예술 참여도를 조사한 결과 공적 지원이 닿지 않는 지역의 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곳에서도 사회 지식층이나 부유층 등 특정 집단만이 향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활동 참여도가 하위 20%인 지역을 대상으로 ‘창의적 사람과 장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는 지역 문화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지역의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장기적인 사고를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스포츠클럽, 푸드뱅크 등을 장소로 설정하고 모든 참여자의 동료학습, 또래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레베카 블랙만은 특히 “커뮤니티가 장소를 인지하고 참여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는 데 있어 비예술 분야와의 협력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외로움을 겪고 있는 70세 이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기업재단과 함께 요양원, 도서관, 치매 환자를 위한 취미활동 중심의 프로그램을 예술 처방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연수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기존에 참여자와 가깝게 작동하고 있던 시스템에 예술적 역량을 포함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커뮤니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주요해 보였다.
제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진행한 토론 및 질의응답에서는 심포지엄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전달한 다양한 질문과 의견을 공유했다. 미디어 환경의 균질화, 프로젝트 재원 마련부터 각 나라의 지원과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따른 대응,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 확대 방안 등 참여자들의 폭넓고 다양한 질문과 발제자들의 응답이 오갔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각국의 팬데믹 상황에서의 문화예술교육뿐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 등 다양한 차원의 시도와 전환을 위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살고 있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함께 겪고 있는 우리는 혐오, 배제와 소외, 외로움의 문제를 공통으로 안고 있었다. 또한 지난 2년간 예술의 힘은 그 문제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이들과 함께했으며, 이것이 앞으로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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