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생소했던 문화예술교육 그 긴장된 첫 발디딤을 했을 때 나는 몹시도 들떠있었다. 춤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고 유년 시절 학교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선생님이 되고 학생이 되는 역할놀이가 현실이라니 마냥 신기했다. 일과 놀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것에 흥분했고 사람들과 춤을 추어야 함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두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3년쯤 지난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나는 어떤 춤을 추고 있는가?
내 춤은 고급스럽다 / 배려 없이 출 수 없는 춤 / 경계가 모호한 수평적인 춤 / 인간 원초적 욕구를 대변하는 춤 / 콘크리트를 부수는 듯 거침없는 춤 /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몸만으로 끌어내는 춤 / 그 어디서라도 / 몸이 아니라도 / 춤을 가능하게 하는 것 / 그래서 나는 함께 춤추어야 한다
공연무대가 아닌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 내가 하는 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기에 답답한 마음을 종이에 끄적거리며 나와의 약속을 시로 썼고 이후에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묻고 또 묻고 찾고 찾아가며 쉼 없이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다시 유년 시절 학교 놀이를 하듯이 수업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졌다. 하지만, 늘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진짜 학교 선생님과의 불편하고 어색한 만남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 생. 님.
학교에서 무용 수업을 하면서 협력관계의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어려웠다. 학창 시절 무섭고 불편했던 선생님에 관한 기억 때문인지 변함없이 어색하고 경직된 관계에 그저 서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러던 내게 먼저 손 내민 것은 어느 교사였다. 그는 첫 수업을 보고 난 후 다음 수업에는 교실을 무용할 수 있게 공간 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마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그동안의 이야기했다.
“책상에 앉아 수업할 때는 몰랐어요. 다양한 움직임에서 그동안 못 봤던 아이의 모습이 보이네요. 우리 반 아이들 진짜 모습을 보았어요.”
그 대화를 시작으로 나는 교사와의 연구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고 했다. 예술가만의 연구 모임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교사와 예술가의 파트너십 강화의 필요성과 학생의 욕구 수집, 교육과정 이해 등을 조사하고 학생이 필요한 수업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되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매일 만나는 교사와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고 싶었고, 이를 위해 매년 회를 거듭하면서 많은 교사와 다양한 수업 개발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그 고민의 결과는 무용 수업 시작 전과 마치고 교실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까지도 고려하는 것이었다. 사소할 수 있지만, 연결되는 일체감은 크고 효과적이었다. 배움과 쉼을 구분하고 조화롭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함께 이어달리기를 완주하는 것처럼 서로의 존중이 있었다.
같은 팀으로 생각한 교사는 학교의 예술교육 기획에 실무적인 교류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초등 교사 무용 연구회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연결은 밀도 높은 욕구를 전달받는 기회였고, 우연한 인연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다. 그 이유는 예술강사로서 외로운 혼자가 아닌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믿음과 신뢰는 아이들에게 집중되었고 제대로 춤을 전달하기 위해 예술강사의 품격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과 삶 속으로 녹여내는 예술만의 낭만과 여유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만남, 다시 처음 같은 참맛
‘예술로 탐구생활’(주제중심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대구지역 중간 집중토론회에서 다른 팀의 교사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서로가 같은 고민과 생각이 있음을 알았고 반드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가 되어줌에 감사했다. 무용수업을 좋아하는 노현호 교사에게 “춤추는 교사”라고 말을 걸며 시작된 인연으로 이제는 진짜 선생님과도 학교 놀이를 하게 되었다. 춤에 대한 내적 공감을 이끌며 언젠가 함께 춤추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손잡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 연결의 상징은 나와 우리일 수도 있고 학교와 사회일 수도 있고 예술과 교육일 수도 있고 자연과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한다.
자율성이 주어진 ‘예술로 탐구생활’의 연구기획은 이전보다 나를 몰입으로 이끌었다. 아이들 자신의 춤을 추도록 열려있고, 기억 속 어렵게 느꼈던 생각이 새롭게 기억되는 깊이 있는 변화가 생겼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도 있고 변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바꾸는 생각만큼 할 수 있는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깨어있으면서 문제 인식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면 될 것이고 의식적으로라도 끝맺음을 할 때까지 서로에게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로젝트 이후 새로 만난 다른 교사들과 파트너가 되어 시작된 기획 역시 화끈하고 과감하였다. 예술로 탐구생활 프로젝트 ‘개짱이’ 팀을 함께 했던 이종일 어린이노래 작곡가와 대구지역 예술가, 교사는 올해 100주년 어린이날 ‘따로 또 같이’ 대구 랜선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지역 언론사의 기술 지원으로 30여 학교 학급을 연결하고 어린이는 자신의 소리를 외쳤다. 학교와 학교를 연결하고 서로가 같은 공간에서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되었다. 예술가가 문을 열고 아이들이 화답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비대면 세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실시간 영상으로 담긴 어린이의 외침에는 ‘개짱이’로 6월에 만날 학산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도 참여했고 우리는 랜선으로 미리 자연스럽게 춤과 노래로 인사했다. 이것이 교사들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들이다. 나에게 예술로 탐구생활 ‘개짱이’로 느낀 춤은 알고 있던 맛이 아니라 이제야 맛을 알게 된 ‘참맛’ 같은 것이다.
  • 100주년 어린이날 ‘따로 또 같이’ 랜선 행사
권혜영
권혜영
2004년 아동복지 무용을 시작으로 현재 무용 분야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아직은 춤을 사랑하고 앞으로 가늘고 길게 춤추며 살 것이다.
kwon756@hanmail.net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