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을 통해 ‘한부모가족은 차별적 시선을 받을 거야, 그들로부터 차별적 시선을 극복하게 만들어줘야겠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프로그램 설계를 완전히 전환했어요. 원래는 편견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한 연극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했었는데, 사전연구 기간에 대상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피해자로서 규정 짓고, 동정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극단 신세계 부대표 김보경의 말이다. 당겨 말하면, 저 몇 문장이 이 긴 원고의 결론이다. 이 원고는 아마도 저 결론에 대한 각주가 될 듯하다.

자존감 회복? 인식개선?
인터뷰 전 작성한 질문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에 참여자들의 자존감 회복, 그리고 사회적으로 한(부모)가족에 대한 인식개선 등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성과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부끄럽지만, 편견 가득한 질문이었다. 저 질문에는 한부모가족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폭력적 시선이 스며있다. 1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몇 차례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감추어야 했다.
극단 신세계는 2021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가족여가 프로그램 ‘유연한 함께 살기’로 <한(부모)가족의 동행>을 6개월 동안 진행했다. 프로그램명에서 알 수 있듯, 이 프로그램은 대상에 특화되어 있다. 이 긴 여정은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극단 신세계는 ‘젠더 트러블 프로젝트’라는 주제 아래 일련의 작품을 창‧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부장제 가족을 벗어난 대안적 형태의 가족을 살피게 되었다. 여기서 이혼가정이 비정상 가족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했다. 고민은 자연스럽게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가르는 기준으로 번졌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했어요. 특히 이혼가정이 가장 대표적인 ‘비정상 가정’이잖아요. 그런데 이혼가정이 너무너무 많단 말이에요. 그리고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았을 뿐, 별거처럼 이혼으로 가는 가정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부모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 김보경 극단 신세계 부대표
참고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한부모가구 수는 전체 2,148만 5천 가구 중 153만 3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7.1%를 차지한다. 여기서 한부모가구는 한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로, 자녀가 없는 이혼 가구는 포함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사전연구 기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성찰한 게 있어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왜 나누냐? 그런 차별과 편견이 문제이니 나누지 말자고 하면서도, 교육대상에 대해서 도움을 주어야 할 시혜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게 그분들에게 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달으면서 프로그램의 내용을 완전히 바꿨어요.”
– 고용선 극단 신세계 배우, 참여 예술가
본래 준비했던 프로그램은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테라피 성격이 있었다면, 사전연구를 거치며 보통의 연극교육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그들을 특별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편해하는 진실들을 자유롭게
더 늦기 전에, 극단 신세계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설명을 옮기면, 극단 신세계는 ‘새로운 세계, 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나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극단 신세계는 연출가 김수정이 2015년에 창단한 극단으로, 극단명은 영화 <신세계>에서 따왔다. 제목을 극단명으로 쓸 정도라면, 영화에 대한 깊은 오마주라도 있을 듯 보이나, 지원서를 쓸 때 보았던 영화가 <신세계>라 그 영화 제목을 극단명으로 쓰게 되었다는 게 김수정의 변이다. 각설하고. 극단 신세계는 창단 직후 혜화동1번지 동인으로 선정되고, 이후 거의 매년 각종 연극제를 석권하는 등 전문가에게 인정받는 동시 확고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창작집단이다.
최근작 순으로 대표작을 꼽으면 이렇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과 라이따이한 문제를 고발한 <별들의 전쟁>,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님비현상을 묘사한 <생활풍경>, 일제강점기 위안부부터 N번방까지 한국 여성들의 수난사를 다룬 <공주들> 시리즈, 미러링 전략을 통해 남녀 간 젠더 문제를 통쾌하게 전복한 <이갈리아의 딸들>,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집단주의 광기를 표출한 <파란나라>, 그리고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망각댄스’ 시리즈 등. 이렇듯 내놓는 작품마다 극단 신세계는 우리 사회가, ‘이 시대가 불편해하는 진실들을 공연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해왔다. <한(부모)가족의 동행>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또 하나 극단 신세계의 특징은 공동창작 방식에 있다. 우선 스터디 과정부터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서 작품의 키워드를 도출하고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모든 구성원이 장면을 써 와서 발표한다. 작품당 장면이 80개에서 100개까지 나오기도 하는데 회의를 거쳐 각 장면에서 채택할 요소를 정하고 작품의 플롯을 함께 구상한다. 그걸 바탕으로 작가가 초고를 완성하면 리딩-피드백-수정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한다. ([경향신문] 2021.6.28.) 이러한 공동창작 방식은 연극교육 프로그램에도 접목된다.
“저희가 2018년도부터 <공주들>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개인의 서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기록되지 못한 역사들, 알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이런 질문을 계속해왔어요. 이런 질문들을 교육프로그램에 적용해서 그들이 못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게 교육 진행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과정 드라마’를 통해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의외의 지점들이 나타나는 순간이 생기는 것 같아요.”
– 김보경
화술을 이용한 라포 형성과 과정 드라마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창작의 관건은 참여자들이 내밀한 속내를 꺼내놓는가 아닌가에 있을 듯하다. 라포 형성은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다.
“라포를 형성할 때 화술을 이용했어요. 규칙을 정하거나 분위기를 잡을 때는 선생님 화술을 썼어요. 그리고 수업에 몰입해 아이들이 이야기기를 적극적으로 꺼낼 때가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맞는 화술로 바꿨어요. 결과 보고 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화술 톤을 맞추는 게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데 유효했던 것 같다”고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 앞으로도 이런 화술들을 더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고용선
또 하나 흥미로운 교육방식이 있다. ‘과정 드라마’다. 과정 드라마란 한 마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개념들을 재고하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거를 당연하지 않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서사가 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보는 거다. “그런데 토끼가 왜 그때 낮잠을 잤을까요? 혹시 밤새 일을 하다 온 건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부모가족이라는 사실에 위축이 되어 있던 참여자들은 위축되지 않아도 된다고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이 긴 원고가 지향하는 궁극의 결론이다. 두 사람의 말을 짧게 인용한다.
“과정 드라마는 참여자가 자기가 원래 정의하고 있던 개념들을 뒤트는 과정이에요. 그러면서 한부모가정이라는 사실에 위축되었던 아이들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 고용선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라보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그러지(위축되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요.” – 김보경
이제 그들은 한부모가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폭넓은 비정상 가족을 위한 연극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아니,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자체를 무위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표현함이 옳을 듯하다. 미혼, 비혼, 동거 가족을 넘어서는 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찾아, 우리 시대의 가족을 재정의할 그 프로그램 또한 기대할 만할 듯하다.
김일송
김일송
칼럼니스트이자 이안재 대표소사이다.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과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편집장을 지냈다.
www.facebook.com/ianjae
사진제공_극단 신세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