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더위 속, 시드니의 하늘에 얼음 한 덩어리가 띄워졌다. 에어리얼(공중) 공연과 신체극 창작을 주로 하는 호주 ‘렉스 온 더 월(Legs On The Wall)’의 신작 <해빙(THAW)> 공연이다. 2022년 1월 시드니 항구 상공에는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2.7 톤의 얼음조각과 한 여성이 외롭게 매달려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그녀는 얼음 위에서 비바람과 산업용 크레인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얼음은 조금씩 녹아 아래로 흐른다. 관객들은 그녀가 직면한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몸부림을 바라보며 어떤 영감을 받게 될까? <해빙>은 기후 비상사태에 각자의 역할에 고심하고 미래에 대한 공동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해빙(THAW)
    [영상출처] Sydney Opera House 유튜브
도시 한 가운데서 녹아내리는 빙하
렉스 온 더 월은 최근에 시드니 릴리필드(Lilyfiled)에 있는 창작 거점인 레드박스(Red Box)의 사용 에너지를 탄소 중립 에너지 공급 장치로 전환하며, 탄소 중립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단체는 창작 과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추적해 배출량을 줄이고, 지역의 탄소 상쇄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빙>에 쓰인 얼음을 얼리고 리허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이 에너지를 사용했으며, 탄소 중립 인증을 받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협력해 초연했다. 이들은 현재 직면한 기후위기와 미래 지구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예술가의 의무와 책임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말을 인용하여 작품을 설명한다.
“미래 세대가 돌아보면 그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현시대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을 비난하겠지만,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정치인과 관료들만의 일이 아니기에, 예술가와 작가들에게도 동등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렉스 온 더 월은 공연 외에도 관객이 기후 정의를 향한 실질적인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며, 관객 스스로 발언권을 가지고 친환경적인 행동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참여하도록 제안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미래를 위한 역할이 있고, 한 번에 하나씩 가시적인 단계를 밟아 나가며 집합적인 행동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이야기하며,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 방법을 단체 웹사이트에 공유하고 있다. 또한 자연환경과 모든 생물과의 연결 및 관계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기후 정의가 인권 및 선주민(First Nation)의 정의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아래 작업하고 있다.
2019년 9월부터 장장 6개월간 이어졌던 호주의 산불은 역사상 대재난으로, 호주 전체 숲의 20%가 잿더미가 되고, 10억 마리의 야생 동물이 죽임을 당한 화재였다. 호주인에게 이 재난은 6만 년 이상 대륙을 보살피고 지켜온 선주민들과 자연과 야생과의 연결성에 관한 질문을 다시금 던져 준 시간이었으며, 기후 비상사태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000장의 포스터에 담긴 메시지
2022년 1월 시드니 상공에 얼음덩어리가 띄워지기 오래전인 2010년 멜버른 카페에 앉아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던 세 사람이 있다. 상업 갤러리 디렉터였던 가이 아브라함스(Guy Abrahams), 예술 활동가이자 작가인 데보라 하트(Deborah Hart) 그리고 공공 정책 전문가이자 작가인 피오나 암스트롱(Fiona Armstrong)이다. 이들은 예술의 힘으로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으로 ‘클라이마르테(CLIMARTE)’를 설립했다.
클라이마르테는 예술가, 활동가,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예술이 인류의 가장 강력한 만국 공통어라는 믿음 아래, 예술의 창조적 힘을 활용하여 인류 공통 위협인 기후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참여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영감을 주고자 했다. 예술가, 과학자, 활동가 등 여러 분야와 광범위한 연대를 맺고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클라이마르테 포스터 프로젝트’이다.
2016년에 시작해 2019년에 이어 2022년 세 번째 진행하는 포스터 프로젝트는 여전히 역동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는 포스터를 이용해 모든 세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영향을 미치며 영감을 만들고자 했다. 2016년에는 11명의 호주 예술가와 기후 변화 행동에 관한 지역사회 참여를 유도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힘에 관한 메시지가 담긴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2019년에는 현대 예술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가속하기 위해 대중과의 대화와 참여 유도를 목표로 하였다. 이후 1,000장 이상의 포스터가 멜버른 건물 안에 붙여졌다. 호주가 기후 비상사태 해결의 낙오자 수준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호주를 선도 세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올해 세 번째 프로젝트에 참여할 포스터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 2015년부터 2년마다 열린 ‘예술+기후=변화(ART+CLIMATE=CHANGE)’가 있다. 사회적 참여 축제로 2019년에는 멜버른과 빅토리아 지역의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30개 이상의 전시가 개최되었으며, 강연 및 포럼 등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 기후 수호자(Climate Guardians) 퍼포먼스
    [영상출처] ClimActs Media 유튜브
비상사태를 알리는 기후 수호자들
2013년에 클라이마르테와 공동 목표를 가지고 설립한 ‘클라임액츠(ClimActs)’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단체는 첫 번째 행동으로 기후위기의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해 천사가 등장하는 공연 <기후 수호자>(Climate Guardians)>를 선보였다. 2007년 영화 제작자이자 예술가 알라나 벨트란(Allana Beltran)이 호주 테즈메이니아의 원시림이 계속 파괴되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 만든 예술과 행동주의가 결합한 장소특정형 작품 <웰드 엔젤(Weld Angel)>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공연으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수호자의 역할과 이를 지탱하는 천연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환경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라트로브 계곡(Latrobe Valley)의 얄론(Yallourn) 발전소와 노천 탄광 등 호주 전역에서 천사들이 앞장선 퍼포먼스를 했으며, 2021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시간에 맞춰 멜버른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기후 수호자>에서는 2030년 이전에 인간 경제가 탄소 제로 전환에 실패하게 된다면 기후 파괴의 위협이 임박할 것임을 경고한다. 화석연료를 둘러싼 자원전쟁이 우리의 기후를 파괴하고 세계 평화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비상 상태를 선포할 것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지속하고 있다.
클라이마르테는 2021년 가을, 세계 최초로 기후위기 예술 대응 전용 공간인 클라이마르테 갤러리를 개관하였다. 멜버른에 있는 이 갤러리는 지역 사회가 기후 위기와 관련한 슬픔과 절망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첫 개관 전시로 호주 선주민 예술가들의 작업을 선택하며, 기후 비상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종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지선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jisunarts@yahoo.com
사진제공_필자